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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마 Apr 12. 2023

10까지만 세어봐!

엄마가 나에게 한 말, 내가 이제 초롱이에게 하는 말


"10까지만 세어봐"

  엄마는 목욕탕의 뜨거운 탕 안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너무 뜨거움에 한 발을 담그지도 못했다. 몇 번의 도전으로 물 안에 발을 넣다 뺐다를 계속하는 나를 보면서, 탕 안에 계신 엄마와 다른 아주머니들은 웃음을 지었다.  정말 크게 숨을 들이 마신 후에, 나는 발 하나를 물 안으로 집어 넣었다.  물 안에 넣은 발이 따끔따끔 너무 뜨거워서 다시 얼른 빼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발을 뺀다면 다시 탕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찌 어찌 발 두개를 다 넣고나니 이젠 종아리까지 찰랑거리는 뜨거운 온탕 물이 나를 또 흔들었다. 

"탕 안에 쑥 들어와서 10까지만 세어봐, 그러면 괜찮아질거야." 

라고 말하는 엄마의 말에 의심이 가득했지만, 나는 도전해 보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탕 안에 몸을 담그고 10까지 세어 보았더니, 몸  전체에 따끔 거리는 듯한 느낌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숨도 잘 쉬어지는 게 신기했다. 

  엄마는 유달리 목욕탕을 좋아하셨고, 우리는 주말이면 의례껏 엄마와 목욕탕을 자주 다니곤 했다. 그렇게 청소년기의 주말을 엄마와 함께 목욕탕을 다녔던 우리는 어느새 성인이 되었고, 엄마는 바쁜 척했던 그 시절의 우리에겐 서운하셨겠지만 혼자서 목욕탕에 다녀오시는 날이 많아졌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왜 그 때 엄마와 더 자주 시간을 보내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의 나는 친구와 노는 것이 더 즐거웠었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던 것같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다시 그 시간으로 시간여행을 해서 돌아가게 된다면, 나는 무조건 엄마와의 시간이 우선일 것 같다. 몇 해 전 시간을 되돌아가는 타임슬립 드라마 중 하나인 '고백부부'에서 10여년 전으로 되돌아간 여주인공 장나라가 느꼈던 그 순간의 감정은 마치 내가 주인공이라도 된 듯이 그대로 내 마음속에 느껴졌다. 그 이후 매일 나도 10년전으로 돌아가서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매일 밤 기도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극복하게 해 준 것은, '고백부부' 드라마에서도 그렇고, 현실의 나에서도 그렇듯이 아이들이었다. 아이들 덕분에 나는 엄마가 돌아가신 슬픔과 그리움에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중이고, 마음이 조금씩 단단해 지고 있는 중이다. 물론, 엄마에 대한 감정이 유달리 각별했던 나는 엄마가 돌아가신 지 7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마음이 먹먹하다. 날이 맑은날에도, 흐린날 뿐만 아니라, 평소에는 스쳐 지나갔을만한 구름의 모양까지도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날들이 있다. 유독 마음이 힘든 날 엄마 생각이 더 나는 나는 지인들에게 더 전화를 걸어서 다른 즐거운 대화를 하곤 하는 것 같다. 이렇게 조금씩 천천히 내 마음 속에 엄마를 단단하게 만드는 중이다.

  엄마와 딸은 하나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내가 엄마에게 들었던 "10까지만 세어봐" 란 소리를 갑자기 기억하게 된 것은, 바로 얼마전의 여행에서였다. 워터파크에서 신나게 놀고난 후 초롱이와 나, 남편과 초콩이가 각각 샤워하려고 목욕탕으로 씻으러 들어갔다. 초롱이와 가볍게 샤워를 하고 나서, 약간의 뜨거운 목욕탕의 온탕 앞에 앉아서 발만 담그고 있는 초롱이에게 내가 신나게 놀고난 후의 피로감을 씻어내고자 몸을 담그면서 말한다.

"초롱아, 들어와서 10까지만 세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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