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학교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야간 타임 아르바이트 였던 나는 밤10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총 10시간을 근무했는데, 그 때의 일이다.
새벽 시간에 마이비 충전을 하러오는 손님은 거의 없어서 알바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마이비 충전을 하러 온 손님이 있었는데, 외국인이였다. 마이비를 건네받고 만원 충전을 누르고 카드로 결제를 하려고 하는데, 이럴수가. 마이비는 현금으로만 결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하지만 마이비는 이미 충전을 누르는 순간 충전이 되어버렸고 어떻게든 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필 외국인은 현금이 없는 상태.
멘붕에 빠진 나는 우선 되도 않는 영어로 최대한 상황을 설명하려고 했으나 당황하니까 영어가 평소보다 더 안되서 내 말을 못알아듣는 외국인을 보고 더 당황하고 영어는 더 생각안나고 이 사태를 어찌 해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어찌됐든 내 실수니까 내가 만원을 채워 놓을테니 이만 가도 된다고 외국인을 보내려 했다. 그때 당시 시간이 5시 55분쯤이였고, 우리학교는 한번 버스를 놓치면 배차간격이 길기 때문에 아침에 어디 갈일이 있는 모양이던데 더 시간을 지체하면 안될 것 같았다. 편의점 바깥에는 ATM기계가 있지만 밤이 되면 꺼지고 언제 켜지는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외국인은 아무리 그래도 자기 카드에 충전이 된건데 돈을 자기가 내야 한다고 하길래 우선 내 계좌번호를 적어주었다. 혹시 몰라 핸드폰 번호로 된 계좌번호를 적어주면서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보냈다.
나의 절망스러운 영어 실력에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는데 그 외국인이 다시 와서는 ATM기계 이제 된다고 만원을 건네주고 갔다. 가는 길에 혹시나 해서 들렀다는데, ATM기계가 아침 6시부터 작동하나 보다. 다행이였다. 알바하다보니 이런 헤프닝도 있구나 하고 넘겼는데, 그 다음날.
외국인에게 카톡이 왔다. 혹시 자기를 기억하냐고. 어제 아침에 편의점에 갔었다고. 내가 부담스럽지 않으면 자기가 내 영어공부를 좀 도와주겠다는 것이였다. 그렇게 영어로 카톡을 좀 주고 받다가 만날 약속을 잡았고, 일주일 쯤 뒤에 만나러 갔다.
연락하는 내내 굳이 본인 시간을 내서 영어공부를 왜 도와준다는걸까 궁금했던 나는 왜 그러는 거냐고 물어봤고, 마이비 충전을 했던 그날 저녁에 학생회관에 있는 편의점에 갔는데 거기 알바생은 영어를 잘하던데, 내가 너무 그날 nervous해 보여서 도와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랑 카톡을 해보니 카톡으로는 영어를 잘하던데 왜 말은 못하는건지 안타까웠다면서.
나는 고맙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한국은 원래 듣기 읽기 위주의 영어공부를 시킨다고. 말할 기회가 거의 없다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 받았다. 자기는 우리학교를 다닌지는 2년 정도 되었고 생명과학과인데 졸업 후에 의대 진학을 준비하고 있으며, 현재 학원에서 영어강사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라고. 더불어 본인도 한국어 공부를 하는 중인데 서로 도와주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약 2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었고 꽤나 재밌었다.
그렇게 나는 외국인 친구가 생겼고, 그 이후로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