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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하다'는 인문대학으로 진학한 딸에 대한 생각

직업의 이면

'문송하다'는 인문대학으로 진학한 딸에 대한 생각


<1> '문송합니다'가 현실로?

인문대로 진학이 확정된 딸에게 '문송하다'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는지 물었다.

거침없이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문과라서 당연히 알고 있었다나?


나는 사회과학대를 나왔지만 역시 문과 출신이다. 물론 내 대학시절엔 '문송하다' 따위의 표현은 없었다.

가끔 공대를 '단무지'로 까는 표현 같은 것은 있었지만 문과라서 죄송할 만큼의 사회적 분위기는 아니었다.

언젠가 나이가 훨씬 들어 아이를 낳고 사회생활을 하며 '문송합니다'라는 표현을 들었다.

'아, 이제는 확실이 이공계가 우대받는 시대인가 보구나'라는 생각과 '문과가 취업이 좀 힘든가 보군' 정도의 생각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단어가 생각보다 오래가고 있고, 적어도 지금의 분위기라면 훨씬 심해지고 있는 분위기인 듯 하다.


 주변에서 아이의 대학입학결과를 물을 때마다 이중적인 동작(?)이 나오는 듯 하다.

그나마 학교가 인서울이라 좀 축하를 하는 듯 하다가도 문과라는 사실에 '주춤'하는 것처럼 보인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아마도 그분들은 딸의 미래 취업을 걱정했나 보다.


이토록 다양한 세상에 어느 한 쪽으로의 쏠림은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가?


<2> 왜 인문학을 전공하는 것이 죄송한 얘기인가?

사실 인문대 진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진로를 논의하는데 일조한 것은 나이기도 했다.

고교 3년 내내 언뜻 보기에도 '스스로 즐거워하지 않는 공부'를 억지로 하는 딸을 보며 마음이 불편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딸은 열심히 했다. 내 기준에서 보면 자기 틀을 깨는 정도의 노력은 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나는 딸이 대학에서라도 좀 더 재미있는 공부를 하기 바랬다. 성적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범위에서는 그래도 딸이 자신감과 재미를 갖고 임할 만한 학과였으면 했다. 다행히도 합격을 했고, 나는 그거면 만족을 한다.

문과는 내 관점에선 '인간과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류가 살아 있는 한 필요한 테마인 것이다.


대학이 취업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의 하나인 것 역시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그전에 대학은 뭔가 학생들이 즐겁고, 한편으로는 세상이 보탬이 될 학문을 공부하고 세상을 익히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문과 예찬까지 할 건 아니지만 하나의 학문으로서 배우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고, 세상에 도움이 될 부분이 있다면 나는 그걸로 족하다고 본다.

'문송'이라는 이야기는 내게 과도한 위트고, 한편으로는 '쏠림'에 대한 풍자일지언정 그것 자체가 정말로 문송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문송합니다'는 말도 안되는 폭력일 수 있다. 잘 맞지 않는 분야로 취업을 위해서 억지로 밀어넣고 공부를 했어야 한다는 말일까? 나는 그저 딸이 대학에서 고교시절보단 훨씬 즐겁게 재미를 느끼며 공부하길 바랄 뿐이다.


딸에겐 또 그 아이만의 길이 보일 것이다. 모든 인간은 각자의 길을 찾기 위해 그저 자신만의 노력을 하면서 간다


<3> 취업은 어떻게 할려구요?

한 지인이 아주 직접적으로 물었다. "취업은 어떻게 하실려구요?"


요즘은 조금 줄었지만 나도 몇 년간 대학생들의 취업을 봐주기도 했다. 그들의 고민과 시장의 분위기, 문과생들의 취업에 대한 호소를 접했었다.

그러나 내 기준에서 취업이 어려운 것은 회사가 매력적으로 느낄 만큼 매력적인 자원으로 성장하지 못한 것이 문제이지 반드시 학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상대적으로 요즘의 흐름에선 이공계가 유리한 것일 뿐.

인재를 뽑는 기준은 언제나 같다.
'조직에 도움이 될 만한 자원인가?'이다.


그런 자질은 얼마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키울 수 있다. 재미있게 공부하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딸아이가 세상에 나갈 무렵엔 직업시장도 훨씬 더 다양한 형태로 변화해 가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딸의 아버지인 나도 정상출근을 하지 않고, 다양한 일을 하며, 규정하기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딸의 시대에는 이런 형태들이 훨씬 더 심해질 것이다.


딸에게 한 가지만 부탁했다. 1학년 때는 열심히 놀아도 좋으니 가고 싶은 방향만 한번 정리해 보라고 했다.

대개의 경우 '가고 싶은 방향'만 정해지면 준비는 얼마든지 재미있게, 창의적으로 할 수 있다.

취업? 딸보다 형편없는 학창시절을 보낸 나도 멀쩡한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살고 있다. 딸에겐 딸의 길이 또 있을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너무 구체적으로 걱정하는 것도 효율적인 것은 아니다.


이렇게 전의를 다지는데 들려오는 딸의 한 마디, "그래도 동생은 이공계로 가라고 해~" ㅡ.ㅡ;;

이래서 시대의 흐름이 무섭다고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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