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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머리 Apr 22. 2021

여우와 두루미-시댁이 불편한 이유

여자, 엄마, 아줌마로 잘 사는 이야기

내가 시댁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처럼 배려 없음에서 생기는 서운함때문이었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입덧이 심한 시기에 시댁에 가게 되었다. 물에서도 비린 맛이 올라와서 물 한잔도 못 먹을 정도로 입덧이 심했다. 저녁 먹을 때가 되었는데 옥상에 숯불과 고기 구울 판이 준비되고 돼지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돼지고기의 누린내와 연기의 매캐한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했다. 도저히 근처에 앉아 있을 수도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배는 고픈데 고기는 한 점도 못 먹겠고 내내 굶고 있다가 빵집에서 파는 작은 컵 빙수를 사다가 방에서 혼자 먹었다.


입덧이 심한 며느리에게 뭐가 먹고 싶은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물어보나 마나지 잘 먹으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저 고기가 최고지. 그런 분위기였다. 불 피우고 연기 앞에서 힘들게 고기를 구워서 대령했는데도 입맛 까다로운 며느리는 여우 집에 초대받은 두루미처럼 먹지도 못하는 음식 앞에서 불편함을, 서운함을 내색조차 못했다. 친정이라면 고기를 굽기 전에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은지 물어봤을 것이다. 아니 물어보기도 전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이미 알고 있고, 그 음식이 입덧을 하면서도 먹을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보았을 것이다.     


어떤 책에서는 여우가 두루미를 골탕 먹이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고 되어 있는 책도 있긴 하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자신이 늘 사용하던 그릇에 자신이 생각할 때는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서 대접하려던 의도였을 거다. 하지만 상대방 입장이 되어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배려는 전혀 없었다. 여우는 혼란스럽다.‘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는데 맛있게 먹지도 않고 깨작거리고 있네?’ 뭐 하는 거지? 내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준비했는데……’


배려받지 못한 두루미도 혼란스럽다. ‘여우는 나를 왜 초대했을까? 내가 불편해할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까? 이게 뭐냐고, 불편하다고 여우에게 말해야 하는 건가?’     


결국 두루미는 여우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대접하는 방법을 택한다. 하지만 여우는 자신이 불편한 상황이 되어서도 자신이 두루미를 어떻게 대접했는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채로 손님 대접을 이런 식으로 하는 두루미를 탓한다.


배려 없는 관계는 이런 악순환을 하게 되고 결국 좋은 사이가 될 수 없다. 물론 어느 한쪽이 늘 참고, 불편한 걸 내색하지 않음으로써 관계가 지속될 수도 있다. 끊어낼 수 없는 가족 같은 관계는 더더욱 그렇게 불편한 상태로 유지될 수 있다. 만약 여우가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깨닫고, 두루미를 배려하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 이후의 관계는 달라질 수 있을까? 또는 두루미가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솔직히 얘기하고 여우를 배려한 식사를 대접했다면 배려 없는 관계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었을까?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생각하게 되는 건 상대방을 존중하는 배려에 대한 것이다.      

배려는 존중에서 나온다. 나는 좋지만 상대방은 싫을 수 있고 나와 상대방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존중할 수 있고, 거기에서부터 배려가 시작된다. 예전보다 물질적으로 더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관계는 더 멀어지고 외로운 시대이기 때문에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타인을 위해 조금씩의 배려가 더 필요한 세상이다.     


여우와 두루미처럼 배려 없는 관계의 서운함, 불편함이 우리 마음을 날카롭게 만드는 것처럼 사소하고 작은 배려가 관계를,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은 더 좋게, 동글동글하게 만들어 줄거라 믿는다.


그러니 여우와 두루미 같은 관계는 이제 그만~

여우와 두루미처럼 배려 없는 불편한 관계보다 배려로 소통할 수 있는 관계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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