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워홀 일기] 21. 이별
프랑스에 입국하고난 후, 파리에서는 딱 하루밖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 하루마저 유심칩을 사고 치즈버거를 먹고(바게트도 아니고!) 오후에는 여독이 채 가시지 않아 숙소로 들어와 낮잠을 잤다. 사랑과 낭만의 도시 파리를 보고 설레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다. 분명 파리는 나를 흥분시켰다. 오래되어 더 빛나는 골목길을 걷다 보면 모아온 돈으로 워홀 대신 한 달 동안 유럽여행이나 할까 잠시 고민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프랑스에서 1년이라는 시간을 보장받은 사람이었다. 여행보다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들뜨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고 지금은 여행할 때가 아니라고 자신을 타일렀다. 에펠탑은 주말마다 보러오면 되지. 프랑스에서 1년간 펼쳐질 삶을 그리며 나는 한 치의 아쉬움도 느끼지 않고 숙소로 들어가 잤다. 그때는 상상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에펠탑을 한 번도 못 보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리란 것을.
5월이 되어서야 통행금지령이 풀렸다. 귀국까지는 딱 일주일의 시간이 있었다. 그 일주일 동안 리옹에서 날씨가 좋으면, 덜 피곤하면, 기분이 내키면 가려고 아껴두었던 곳들을 부랴부랴 방문했다. 그 동안 왜 그리도 게을렀을까. 나중을 기약했을 때의 나중은 언제 올 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은 바이러스가 일깨워준 교훈이었다. 아, 그래서 프랑스인들이 그리도 햇빛을 만끽했나 싶다.
제일 좋아했던 론 강 앞에서 하염없이 윤슬을 바라보고, 브레이크타임에 즐겨 갔던 리옹 시내를 구석구석 걷고, 마지막으로 푸르비에르 성당을 오르는 푸니큘라를 탔다. 해가 서서히 잠들어 완전히 사라지고 도시의 불빛만이 일렁일 때까지 한참을 서서 야경을 바라봤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도무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내려가는 푸니큘라의 막차는 타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막차에 탄 손님은 나밖에 없었다. 내릴 때 기사님이 문을 열어주고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기사님은 한국어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깜짝 놀라 한국어를 할 줄 아시냐고 물었다. 그는 한국인 아내와 함께 리옹 시내에서 한인마트를 운영한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내리고나서도 30분 동안 서서 그와 이야기했다. 진기하고 진귀한 인연이 떠나기 직전 이렇게 불쑥 찾아오기도 한다.
리옹에서 만난 몇 없는 친구들과도 마지막 인사를 했다. 프랑스까지 와서 여행도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만 하고 간다고 푸념하자 직장동료 졸란은 말했다.
네가 프랑스에서 경험한 게 이미 여행이야.
듣고 보니 그랬다. 꼭 여행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여행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클로에는 떠나게 되어 슬퍼하는 것보다 떠나올 수 있었음에 기뻐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해주었다. 친구들의 말을 듣고, 아쉬운 마음을 씻은 듯 없앨 수는 없어도 이미 겪은 것들에 감사하고 행복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쉽고 슬픈 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친구들 또한 한순간에 나를 떠나보내야 하는 입장이 되었을 텐데, 왜 위로를 받을 생각만 했을까. 마지막까지 나를 배웅해준 그 따뜻한 마음들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절대로 잊지 말아야지 생각했던 순간들도 결국엔 잊히게 된다. 내가 바라봤던 론 강의 풍경이 언제 어떻게 희미해질지는 모르지만,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어떻게든 내 안에 남아 있으리라 믿는다.
비행기 창밖으로 해가 지는 모습이 프랑스 생활의 끝을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안녕, 프랑스. 다음 번에는 떠날 때조차 아쉽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