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워홀 일기] 다시 0. Epilogue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어릴 적 불렀던 노래에서 기차는 길고 빠름의 상징이었다. 살면서 기차를 꽤 자주 이용했음에도 그 "빠름"을 이토록 여실히 느껴본 적은 없었다. 기차는 정말, 빨랐다.
푸르비에르 언덕에서 몇 번이고 내려다보았던 리옹의 두 빌딩이 빠르게 멀어져갔다. 이내 기차는 풀숲에 들어섰고 장대한 잎사귀들을 헤치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다시 창밖이 밝아졌을 때 리옹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윽고 마냥 초록빛의 너른 들판과 풀을 먹는 양떼들이 나타났고, 나는 도시를 이렇게 빠르게 떠날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소름이 돋았다.
Laissez-vous rêver.
떼제베의 창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꿈을 꾸시라." 가는 동안 편히 주무시라는 말로도, 여전히 꿈을 꾸라는 말로도 들렸다. 돌이켜보면 나의 워홀은 꿈을 찾기 위한 방황의 길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 그건 내 인생 최대의 난제였고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마음은 언제나 흘러간다는 것. 나에게 흘러들어오는 마음들과 자유롭게 흘러가는 나의 마음을 따라 인생도 유유히 흘러갈 것이다.
프랑스가 그리울 때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에 걸쳐 천천히, 생각날 때마다 썼다. 어떤 기억은 일기장을 들춰보고 나서야 떠오르기도 했다. 글을 쓰면서 소중했던 기억은 소중한 대로, 아팠던 기억은 아팠던 대로 마음 속에 잘 묻어둘 수 있었다.
이제 리옹에서 들었던 노래가 우연히 흘러나와도 눈물짓지 않는다. 아끼던 기억이 조금 희미해져도 괜찮다. 새로운 기억들을 덧입혀가며 프랑스는 여전히 내 안에 머물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