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만나는 하천이 있습니다. 갑천입니다. 하천 중에 으뜸이라는 뜻입니다. 넓은 하천 폭과 늘 찰랑거리며 흘러가는 물줄기는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대전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강입니다. 나는 요즘 자주 갑천길을 걷습니다. 하천가를 뒤덮은 갈대숲이 찬바람에 서걱대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 게 상쾌하고 무엇보다 겨울철새를 구경하는 게 재미있습니다.
유속이 세지 않은 곳은 얼어서 눈으로 덮여 있습니다. 꽝꽝 얼어붙은 강에 누군가 깨지나 안 깨지나 보려고 힘껏 던진 돌이 매끈한 얼음 결에 희끗한 생채기를 낸 채 나동그라져 있습니다. 그 얼음장을 오리들이 뒤뚱거리며 강 가운데의 섬으로 걸어갑니다. 주황색 다리와 맨발로 아장아장 걷는 오리들이 눈 쌓인 하얀 강에 물갈퀴 발자국을 냈습니다. 오리들은 마른 수풀 사이를 넓은 부리로 쪼아댑니다. 갯가의 풀이 바람에 흔들려 씨앗을 땅 위에 쏟아놓았나 봅니다. 청동색 매끈한 머리, 노란색 부리, 흰 목걸이를 한 듯 목에 두른 하얀 띠, 주황색 물갈퀴가 이어진 발가락, 청둥오리입니다.
오리의 머리 깃은 햇볕에 반사되어 까맣게 보였다가 자세를 바꿀 때면 청록색으로 보입니다. 커다란 몸통을 뒤뚱거리고 걷는 거 하며 꽥꽥 거리는 소리는 정말 저 새가 오리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물살에 통통한 몸을 맡기고 둥실둥실 떠내려가다가 물속에 머리는 물론 가슴까지 처박고 엉덩이와 다리만 동동 물밖에 내놓은 채 먹이를 찾는 모습을 보면 너무 귀엽습니다. 청둥오리가 놀라서 도망가지만 않는다면 가까이 가서 한번 안아보고 싶어 집니다.
갑천에서 겨울철새를 찍는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대포만 한 카메라를 두 손으로 받쳐 든 야전잠바에 장화를 신은 사람이 묻습니다.
“이쪽에서 참매 나는 거 못 봤어요?”
“여기에 참매가 온다고요?”
“그럼요, 저쪽 아파트 굴뚝에 앉아서 정탐하다가 이쪽 개펄에 와서 오리사냥을 하는걸요.”
“와우, 참매 찍은 거 있어요?”
야전잠바 아저씨는 나에게 참매 사진을 보여줍니다. 아래로 휘어진 날카로운 부리, 매서운 눈매에 사나운 발톱은 영락없이 맹금류의 모습입니다. 새들은 이빨이 없습니다. 새의 부리와 발톱을 보면 먹이가 무엇인지 짐작이 갑니다. 참매는 오리나 작은 새, 쥐 같은 동물을 잡아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로 찢고 뜯어먹는 맹금 조류입니다. 그 모습을 상상하자니 지금도 엉덩이와 발만 물 위로 내놓은 채 동동거리며 넓적한 부리로 물풀을 걸러먹는 순한 초식 오리들이 불쌍해집니다. 나쁜 참매 시끼 같으니! 하다가, 아니지 매는 고기를 먹고사는 동물이잖아...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먹어야 사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먹고사는 일은 참 가혹하고 숭고한 것 같습니다.
갑천에는 청둥오리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오리들도 많습니다. 처음 오리를 보러 다녔을 때는 흰뺨검둥오리와 청둥오리만 알았습니다. 그마저도 암컷과 수컷의 생김이 아주 달라서 화려한 청둥오리 수컷만 알아볼 수 있었지요. 내가 본 오리들이 무슨 새인지 궁금해져서 새 도감을 샀습니다. 흰뺨검둥오리 암컷과 청둥오리 암컷은 비슷하게 생겨서 헷갈렸는데 도감을 찾아보니 흰뺨검둥오리는 뺨에 흰 줄이 있지만 청둥오리 암컷은 흰 줄이 없고 수수한 갈색 얼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리를 만나고 집에 오면 도감을 찾습니다. 야생조류도감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책이 되었습니다.
핸드폰으로 찍어온 사진을 도감에서 찾아보고 조그맣고 못생긴 오리가 논병아리라는 이름이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작아서 논병아리인지 그 새는 물 위를 헤엄쳐 다니다가 어느 순간 물아래로 쏙 들어가 버리곤 합니다. 한참이 지나도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던 논병아리가 잠수한 지점에서 한참 떨어진 데서 쑥 올라와 깜짝 놀랐습니다. 찾아보니 논병아리는 잠수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지닌 새였습니다. 물고기를 잡는데도 천재인 논병아리는 잠수는 잘하지만 나는 데에는 서툴러서 물을 박차고 금방 날아오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참매 같은 천적이 나타나면 날아서 도망가기보다 물속으로 잠수해버립니다. 날아야 할 때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수면 위를 비행기 활주로처럼 한참을 달리다가 겨우 납니다. 잠수는 잘하는데 나는 데는 서툰 새라니 뭐든지 백 프로는 없나 봅니다. 한 가지 뛰어난 능력이 있다는 건 논병아리에게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새에 대해 알아갈수록 더 잘 알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서 카메라를 샀습니다. 새는 생각보다 꽤 먼 곳에 있어서 배율이 좋은 망원렌즈가 필요합니다. 그런 카메라들은 매우 비싸고 이제 새를 좋아하기 시작한 내겐 과한 것 같아서 중고로 구입했습니다. 강변 산책길에서 망원렌즈로 새 사진을 찍고 있으면 사람들이 뭐 하는 거지 하고 힐끗 쳐다보곤 합니다. 내가 잘 못 찍는 건지, 새가 너무 멀리 있어서인지 조금 아쉬운 면이 있긴 하지만 카메라는 핸드폰보단 훨씬 훌륭해서 새를 동정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온몸이 까맣고 부리 위에 커다란 흰점이 있는 물닭도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물닭이 헤엄쳐 다니면서 쉴 새 없이 고개를 앞뒤로 끄덕거리고 다니는 게 우스워 보입니다. 커다란 돌들이 있는 곳으로 올라온 물닭은 반쯤 잠긴 돌 아래를 부리로 긁기 시작합니다. 저 물속에 무언가 긁어먹을 것이 있나 봅니다. 원앙이 버드나무가 쓰러져있는 모래펄에 화려한 깃털을 곧추세우고 앉아있는 것도 보입니다. 새들은 아침 일찍 먹이활동을 마치고 모래펄이나, 수풀 주변에, 바위 위나 강가에 서서 부리를 뒷날개에 파묻고 졸거나 깃털을 고르고 있습니다. 이제 아침 식사를 마친 오리들의 휴식시간인가 봅니다.
새들은 이곳에서 겨울을 지내고 봄이 되면 다시 자기들이 사는 곳으로 돌아갑니다. 겨울엔 풀도, 꽃도 없고 나무에 나뭇잎도 다 떨어져 빈 가지만 있어서 삭막하다, 볼 거 없다고 했는데 하천의 오리들을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가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오리들이 헤엄치네, 물속에 몸을 다 집어넣고 무얼 하지, 사냥하나? 풀 뜯어먹나? 저 아이들은 물속에 들어가서 안 나오는데? 어떻게 된 걸까? 하면서 보다 보면 시간이 훅 지나가버립니다. 새를 보다 보면 내가 아는 세상이 갑천의 너비만큼은 넓어진 것 같고 무언가 마음이 따뜻해져 옴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