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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숲 Jan 03. 2022

언제예!어데예!

   

교실엔 앞자리 두 자리만 남아있었다. 오전 기본과정 시간이 끝나고 내가 듣는 간이과정인 오후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간이과정은 수강시간이 적다고 신청했는데 시험평가는 기본과정 전 과목을 쳐야한다는 말을 듣고 ‘쉬운 게 없군.’ 한숨이 나왔다. 옆자리 선생님에게 고개를 기울여 물어보았다.
 “저기요, 진도 많이 나갔어요?”
 “아니라예, 마이 안 했심더.”

“죄송하지만 앞 과목 노트 필기 좀 보여주실래요?” 

“마카예?”
 “네?”

‘마카? 마카라니? 그게 뭐지? 칠판에 쓰는 마카로 설명해주겠다는 건가?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친절한 사람인가보다.’

나는 ‘마카’라는 말을 이렇게 이해해보려고 했다.

“하하하, 어데서 오셨어예?”
 “대전에서 왔어요.”
 “마카라는 말은 ‘모두’, ‘전부’ 라는 뜻이라예.”

그 분은 이렇게 설명하면서 엄청 재미나다는 듯이 웃었다. 대전에서 왔다는 말을 들은 주변의 선생님들은 그렇게 멀리서 왔냐, 몇 시간이나 걸리냐, 힘들겠다, 간이과정이라 좋겠다, 어려울 게 없겠다.. 이런 말들을 경주사투리, 경상도 사투리 같은 말들로 물어보았다. 외국어도 아니고  못 알아들을 거는 없지만 조금은 신경을 써서 들어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이해 못하는 말들도 있지만 그냥 앞 뒤 맥락으로 넘겨짚으려 애썼다.   


 

쉬는 시간에 노트필기를 옮겨 적고 나서 그냥 돌려주려니 미안했다. 아무리 간이 과정이라 해도  놀다가 늦게 들어와서 다른 사람 애써 공부한 걸 공으로 얻으려니 염치없는 기분이 든다. 그날 수강생들은 자유주제로 발표할 기획안을 만드느라 바빴는데 노트를 돌려드리면서
 “제가 뭐 도와드릴까요?”

“언제예!”
 “음, 지금 괜찮으시면...”

아, 뭔가가 이상하다. 옆자리의 선생님들은 킥킥킥 수상한 웃음을 참으며 입꼬리를 슬쩍 올린다.
 “어데예!”

“네? 여기서요...”

대화가 뭐 이럴까. 내가 뭘 못 알아듣는 것 같긴 하다. 분명 한국어인데 다른 뜻이 있는 것 같다. 어리둥절한 나를 제외하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웃겨죽겠다고 난리다. 그분은 방금 한 ‘언제예, 어데예’는 경상도 사투리로 ‘괜찮다’라는 뜻이라면서 웃음기 가득한 표정을 거두지 않는다. 아, 그랬구나, 내가 뭐 잘났다고 남을 도와준다고 했을까. 내가 한발 앞서 출발했다고 잘난 체한 건 아닐까. 좀 부끄러워졌다.   


 

“저 쫌 도와주시겠습니까?”

라고 말한 분은 웃음기어린 사투리 이해소동에서 좀 떨어져 있던 은발의 아저씨였다. 경상도 억양이 섞인 말을 들으면 왜인지 그 말이 더 진지하게 들린다. 경상도 사투리는 말끝을 ‘~까? ~예, ~니더, 니껴.’ 등으로 끝내고 억양을 반음 올리는데 말하는 사람이 자신 있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교실엔 20대 젊은 여자 분들이 있었는데 그녀들이 그렇게 말할 땐 왠지 무척 귀여웠다. 내 고향은 대전이고 태어나고 자라 잠깐 고향을 떠나있었던 적도 있었지만, 오랜 세월 대전에서 살아왔으니 내가 모르는 충청도 사투리와 억양이 나의 말에 스몄을 것이다. 고향에서 편한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말투가 느려지는 것 말고는 특별한 충청도 사투리를 쓰지는 않는다. 쉬는 시간 짬짬이 은발 선생님의 기획안 작성을 도와드리고 그날의 수업은 빠르게 지나갔다.    



다음 날 오전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어제 그 언제예 선생님이 ‘밥 먹으러 같이 갈낀교?’ 했다. ‘네! 갈래요.’ 자신 있고 활기차 보이는 경주 선생님들 속에 섞여서 한차에 타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쌤요. 쌤은 대전에서 왔는데 충청도 사투리 안쓰는교?”

“왜요, 쓰지요. 제 말투에 충청도 억양 있어요.”

그녀는 잘 모르겠다면서 내 말투가 친절하고 부드러워서 부럽다고 했다. 나는 오히려 여자분들 경상도 사투리가 귀엽다고 했다. 자신 있어 보이는 반음절 올리는 억양이 무척 인상적이라고 했더니 정말이냐고, 자기는 드세 보이는 거 같은데 좋게 말해준다고 좋아했다. 대전 사투리 중에 재밌는 거 알려달라고 해서 나는 한참 생각했다. ‘뭐가 있지?’
 “아, 대전에서는 부추를 정구지라고 해요.”
 “호호 여기서도 정구지라고 해예.”

“‘겨’랑 ‘안겨’가 있어요.”

그러니? 안 그러니?를 줄인 ‘겨?’, ‘안겨?’는 경주선생님들도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고 재미있어 했다.   


  

점심시간에 좁고 수상쩍은 터널을 지나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일주일에 한번 있는 수업이지만 주말동안 하루 종일 같이 수업 듣고 밥 먹으러 식당에 가고 하면서 가끔 경주사투리가 나도 모르게 나오기도 했다. 은발선생님이 도와줘서 고맙다고 수구레 국밥을 사주셨는데 시장의 허름한 국밥집이었다. 자주 오는 곳이라고 기대를 잔뜩 하면서 내가 먹는 것을 지켜보시는데 숙주와 고사리 사이에 비계 같은 고기 덩어리가 섞여 있고 먹음직스러웠다. 경주의 향토음식이었던 것 같다. 비계 식감을 안 좋아 하는지라 숟가락으로 비계기름을 저어 그릇가장자리로 보내면서 떠먹었다. 구수하고 시원했다. 호의를 가지고 밥을 사준 분을 실망시키지 않고 밥을 맛있게 먹었다.     


온 도시가 보물 천지인 경주의 칼국수집

두 달간 교육과정이 끝나고 세 번의 평가 시험을 모두 마치고 먼저 나온 선생님들이 바깥에서 돌아가지 않고 마지막 나온 사람들을 기다려주었다. 두 달간 힘든 일정을 함께 하면서 정이 들어 그냥 돌아서기가 아쉬웠던 것이다. 우리는 그간의 고생을 위로하고 모두 합격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그간 정들었던 경주 학우들과 헤어지려니 무척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 후 필기와 실기에 모두 합격 통보를 받았다. 내가 기획안 작성을 도와드린 몇 분 선생님들이 합격했다고 덕분에 감사했다고 경주에 한번 놀러 오시라고 소식을 알려왔다. 이 길을 걷는 동안 우리는 언젠가 만나지게 될 거라고 답 문자를 보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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