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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빈 Aug 27. 2022

워킹맘의 고단한 굴레




출처: 픽사베이




세일즈 책에서는 고객을 소개받으면 영업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일면식도 없는 고객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만나게 되는 사람이 수월한 건 사실이니까. 신기하게도 이 업계에 오래 있다 보면 하면 가끔은 고객이 알아서 찾아올 때가 있는 것 같다. 그 분도 그랬었다. 나는 잘한 게 없는데 알아서 찾아온 선물 같은 고객이었다. 


영업이 인사만 잘해도 기본은 해서 간호사 분들한테 메모지랑 볼펜도 갖다드리고 인사를 잘하곤 했는데 어느 날은 어떤 간호사 분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OOO 담당자분 저희 O과 원장님 좀 만나 보실래요? 이번에 새로 오신 분이라서 만나보시면 좋은 점이 많으실 거에요.”

“아 진짜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너무 신기했던 것은, 소개시켜주신 그 분이 기억은 잘 못했지만, 내가 예전에 담당했던 지역과 꽤 자주 갔던 병원의 간호사 분이었다. 너무 신기하게도 말이다. 저도 그 병원 담당한적 있어요 하고 말하고 친하게 지냈었다. 그리고 소개받은 원장님도 너무나 괜찮은 분이었다. 논문도 몇 편 발표하시고 박학다식하시고 환자 진료도 잘 보시는 분이었고, 성격도 시원시원하신 편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원예정이라는 점, 그리고 그분이 개원할 지역 또한 내가 담당한다는 것이 제일 중요한 포인트였다. 병원에서 하는 소소한 행사에는 내가 거의 다 참여했고, 원장님이랑 친해서 거의 매주 가서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 난다.


결혼한다고 하니 신혼여행 가서 재미있게 놀라며 축의금도 따로 챙겨 주시고, 임신해서 애를 낳는다고 하니 육아 선물도 챙겨 주시고 정말 최고였던 것 같다. 그리고 한동안 병원이 정말 잘되다가, 점점 환자가 시나브로 줄기 시작했다. 


거래처도 인생주기가 있다고 할까? 그렇게 잘되던 병원은 왠지 모르게 조금씩 줄고 있었다. 환자들이 생각하기에 그 병원보다 다른 병원이 좋았을 수도 있고, 그 원장님이 진료가 별로 안 좋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그건 뭐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점점 내 매출도 조금씩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병원의 인생 주기와 함께 말이다. 백만원대가 넘는 매출은 십만원대로, 점점 몇만원대로 추락하고 있었다.


어느 날 보니 원장님께서 영어를 배우고 계셨다. 왜 영어를 배우시냐고 질문을 드렸더니, 아이들과 같이 외국을 가려고 한다고, 남편은 따로 놓고 그냥 자기가 아이들을 데리고 가려고 한다고 했다. 그리고 병원을 그만 둘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이들이 많이 어렸을 때 개원해서 아침 일찍 부터 저녁 늦게까지 진료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육아는 친정 엄마에게 의지하게 시작했다고 했다. 어쩌면 근무 시간이 많다 보니 그 시간을 채우려면 다른 사람의 손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모든 워킹맘이 그렇듯, 일을 하려면 도우미를 잘 쓰거나, 친정엄마나 시부모님한테 기대거나, 근로시간을 줄여서 라도 육아를 도맡아 하거나 등등 선택지가 별로 없는 것도 사실이니까. 


그런데 그 친정 엄마가 육아 우울증이 온 거다. 그것도 심하게… 20대 30대도 애 키우기 힘든데 조부모의 황혼 육아가 그리 쉬울 일이 없었지만, 그래서 화풀이로 손주들을 때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눈치가 있어서 좀 덜 맞은 아이, 눈치가 없이 대들어서 더 맞은 아이… 이렇게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원장님은 병원을 접고 외국을 가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그동안 받은 상처도 많고, 일도 그만하고 싶고 말이다. 결국 어느날 보니 병원 그만두시고 외국으로 가셨다.


그 원장님은 잘 지내고 있을까? 아마 전화번호를 바꾸신 것 같은데 나중 되면 정말 만나 뵙고 싶다. 그래도 영업하면서 좋은 추억 남겨 주셔서 고맙다고, 밥이라도 사드리고 싶을 때가 있다. 가끔은 잘 지내고 계시냐고 안부문자도 남기고 싶은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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