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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궁리 Oct 24. 2021

둘이 갔던 오키나와를 셋이서 다시 갔다

오키나와

 2019년, 여름, 오키나와. 네 살 아이와 두 번째 가족 여행을 갔다. 아이는 옹알이 시절보다는 훨씬 같이 다니기가 훨씬 수월했다. 성수기 여름휴가를 피해서 6월에 비행기를 탔다.

 오키나와는 신랑과 연애하던 시절 둘이서 먼저 가봤던 여행지다. 아이랑 오면 참 좋겠다 싶었던 그곳을 진짜 아이가 태어나고 셋이서 오다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와 똑같이 차량 렌트를 하고 숙소를 잡고 관광을 계획했다. 달라진 건 아이의 몫이 늘었다는 것. 렌터카 뒷좌석에 아이의 카시트를 추가해 장착하고 유모차를 챙겼다. 일본도 쌀을 먹는 식문화라 서구권 여행 때보다 부담은 덜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가 먹을 김자반과 햇반을 챙겼다. 호텔 숙소에는 더블 침대를 붙여서 넓게 만들고 다리 쪽으로 아이가 떨어지지 않게 가드를 붙여달라고 요청했다. 아이 한 명이 늘었을 뿐인데 성인 두 명이 갔던 여행과는 다르게 추가되고 확인해야 할 항목들이 늘어났다. 거뜬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키나와는 동양의 하와이라고 불릴 만큼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그만큼 일본인들의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 있었는데 아이와 동행하다 보니 공기가 깨끗하다는 사실이 전보다 더 눈에 띄었다. 제주도의 2/3 정도 크기밖에 되지 않는 이 섬에는 렌터카는 물론이고 현지인들의 자동차도 거의 전기차였다. 간혹 보이는 1톤도 안 되는 작은 트럭만이 휘발유 차량이었다. 매연이 없어서 그런지 거리의 차들은 이렇게 깨끗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먼지가 없었다. 신호를 받아 자동차가 멈춰 섰을 때 그 투명한 창문을 통해 옆 차의 운전자와 눈이 마주칠 정도의 민망함이 생길 정도였다. 뜨거운 햇살에도 ‘썬팅은 무슨, 햇볕은 쬐는 거지.’라는 듯이 썬팅을 한 차량도 없었다. 신랑과 나는 그 투명함에 감탄했다. 

 렌터카는 신랑이 운전했는데,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나였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일본은 오른쪽이 운전석이라는 거다. 익숙했던 왼쪽 운전을 오른쪽에서 하기란 여간 헷갈리는 일이 아닐 텐데 강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건지 남편은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너스레를 떨었다. 


“아, 너무 오랜만에 오른쪽 운전하는데, 저번처럼 하면 되겠지?”


 익숙하지 않은, 완전히 반대로 운전을 해야 하는 운전자도 긴장의 연속이겠지만, 그 옆에 타고 있던 나 또한 긴장감을 놓을 수는 없었다. 옆에 앉은 사람이 호들갑을 떨면 운전자는 더 불안할 수 있으니 티 나지 않게 내내 손잡이를 꽉 쥐었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뒷자리 카시트에서 앵앵거리는 아이의 수발까지 들어가면서 미숙한 운전자의 내비게이션을 봐주기란 나에게도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다행인 건 운전 초반에 감을 잡기 전까지는 아이도 차 안의 분위기를 느꼈는지 운전 연습의 시간을 잠자코 기다려 주었다.

 느린 속도로 복잡한 시내를 진입해서 고속도로로 빠지기까지 내 눈은 내내 내비게이션에 고정되어 있었다. 고속도로에 들어가서야 속도를 조금 높여 달릴 수 있었고 그때야 창밖의 풍경을 볼 여유가 생겼다. 청명한 날씨였다. 높은 하늘에 한가로운 구름만이 두둥실 떠 있었다. 낮은 높이에 듬성듬성 모여있는 집들과 도로변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들꽃들이 하늘거리며 흔들렸다. 그 옆으로 바다가 끝없이 펼쳐졌다. 그렇게 달려서 도착한 숙소는 중부 지방에 있는 아메리칸 빌리지였다. 미군 비행장으로 쓰이던 부지를 반환받아 미국 샌디에이고의 시 포트 빌리지를 본떠 만든 마을인데 우뚝 선 대관람차가 느린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짐은 방에 넣어두고 잘 참고 기다려 준 아이를 위해 모래 놀이를 꺼내 밖으로 나갔다. 아이는 바다 가까이 가서 도구로 흙을 파기 시작했다. 마침 떨어지는 해를 보러 사람들은 방파제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 틈에 끼어 나도 셀카봉을 꺼내 들었다. 이국적인 풍경에 인생 사진을 건져보려 생글거리는 웃음을 지었다. 누군가가 찍어주는 듯한 각도로 연신 셀카를 찍어댔다. 아이와 남편은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모래를 통에 퍼담았다. 같이 찍자고 카메라를 들이밀어도 비협조적이었다. 포기를 모르는 나는 셀카봉을 들고 얼핏 보면 셀카인 듯 보이는 화면 귀퉁이에 아이와 신랑의 모습을 담았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 엄마는 왜 그렇게 사진을 찍어대나 싶었다. 어딜 가든 여기 서봐라, 저기 서봐라, 사진을 찍어댔는데 이젠 내가 그러는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사진에 대한 집착은 필시 엄마들의 역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변을 둘러봐도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은 거의 나와 같은 엄마들이었다. 사진에 대한 집착은 모성과 비슷한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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