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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궁리 Oct 24. 2021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연결고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아이는 물갈이를 했다. 지금껏 아무렇지도 않았던 아이의 등과 목 부근에 오돌토돌 뾰루지가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에서도 수돗물 질이 안 좋기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인터넷 검색 후에 알게 되었다. 현지인들도 세수와 양치질을 할 때 여러 번 정수한 수돗물을 사용하거나 생수를 쓰는 경우가 있다고. 석회질이 많아서 그냥 마시면 장염으로 고생할 수도 있다는 중요한 정보를, 아이 피부에 반응이 오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가져간 약이라고는 소화제와 해열제 따위의 먹는 약뿐이라 순한 크림을 바르고 또 발라줬다. 간지러움을 느낀 아이는 계속해서 제 몸을 긁었고 손톱자국이 선명히 드러나 붉게 부어오른 부분을 볼 때마다 미안했다. 섬세하게 챙기지 못해 아이가 아픈 것만 같았다.


 가우디의 나라에서, 가우디의 자식이라 할 수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아주 느리고 섬세하게 보호받고 있었다. 아직도 미완성인, 짓고 있는 성당에 갔을 때 가톨릭 신자도 아니지만 느껴지는 숭고함이 있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잇고 있는 건축물의 위대함이 아닐까 생각했다. 성당은 1883년부터 40년간 가우디가 직접 설계하고 건설을 맡았다. 1926년 가우디가 사망한 후 미완성 건물 일부와 성당 모형이 스페인 내전 와중에 부서지기도 했다. 1935년 스페인 내전으로 건축이 중단되었다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 재개되었다고 한다. 그 역사적인 사건을 견디고 살아남아 지금까지 현대의 건축 기술을 총동원해 건축되고 있는 실재 현장을 두 눈으로 보니 감격스러웠다.

 예배당 내부로 들어가자마자 햇빛에 반사된 스테인드글라스의 오색 찬란한 빛을 바라보고 있으니 저절로 마음이 경건해졌다. 동쪽의 푸른색은 희망과 탄생을, 서쪽의 붉은색은 죽음과 순교를 의미했다. 절묘한 어우러짐에 고개를 들어 끝없이 올라가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곳곳에 반사되는 빛의 아름다운 색깔에 시선을 뺏겼다. 예배당만 둘러보고 나오려던 차에 관람객들에게 입장 가능한 파사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를 때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올라가지만 내려올 때는 좁고 가파른 첨탑을 걸어 내려와야 했다. 아이는 당연히 동반할 수 없었기에 우리는 철저한 분업 태세로 돌변했다. 신랑을 혼자 먼저 올려 보냈다. 나는 졸린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빙빙 돌며 예배당의 빛깔을 더 만끽했다. 


 

 얼마나 움직였을까, 유모차를 멈춰도 아이가 깰 것 같지 않아서 신랑이 올라간 입구 근처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런데 바로 옆 틈에서 문이 열리더니 신랑이 나타났다.


‘으악, 뭐야? 왜 거기서 나와?’


 출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철문에서 나온 그는 흥분 상태로 ‘일단 올라가 봐’라며 ‘눈으로 직접 봐야만 이 느낌을 안다’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사실 별 흥미가 생기지 않아 가지 않으려 했는데 등 떠밀려 홀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첨탑이 완공되면 170m 높이가 된다는데 당시에도 워낙 높은 곳이라 곳곳에 그물로 안전장치를 해놓았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바라볼 때 느낄 수 있는 탁 트인 시원함을 기대했는데 초록색 그물이 시야를 가렸다. 즐길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앞서가는 외국인 커플을 보고 있자니 풍경을 함께 공유할 사람이 없어서 감흥이 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그 커플과도 멀어지면 덩그러니 혼자 남는 외로움이 들어 간격을 두고 따라붙었다.


 

 내려가는 계단을 보자 신랑이 왜 호들갑을 떨 수밖에 없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첨탑의 꼭대기보다, 내려오는 길이 어마 무시했다. 나선형 계단이 아래로 끝없이 이어져 있는데 그 계단의 폭이 성인 한 명이 겨우 걸어 내려갈 수 있을 정도였다. 중간에 안전바도 없는 그 계단은 발을 잘 못 헛디뎠다가는 정말 저세상으로 갈 것만 같았다. 호기심에 슬쩍 바라본 아래는 블랙홀처럼 까만 어둠만이 존재했다. 거기서 무언가가 나타나 끌어당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겁이 났다. 어두운 조명, 가파른 계단, 안전장치 하나 없는 좁은 공간.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마주한 듯이, 손에 땀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앞에 커플이 잠깐 사진을 찍으려는 듯이 비켜서서 나에게 먼저 내려가라고 손짓을 하는데 제발 같이 가자고 애원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어중간하게 웃어 보이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계단을 천천히 돌아 돌아 내려갔다. 그러고 마주한 출구를 열자마자 비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온화한 빛깔들이 천국에 발을 디딘 것 같은 느낌을 줬다. 사랑하는 이들을 무사히 만난 이곳은 빗대자면 천국이 맞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에 성당에서 현재에 머물며 과거를 만났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래를 기대했다. 우리가 물려받은 위대한 구조물을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 세대에 물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음에 대한 답이 자연스럽게 지구로 이어지면서 얼마 전에 봤던 환경스페셜 기후변화 특집 두 편이 생각났다. 온난화 시대에 지구가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를 강렬하게 담아놓은 영상이었다. 책 「6도의 멸종」을 100인의 리더들이 읽어 내려간다. 지구 온도가 1도에서 6도까지 올라가면서 변화하는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1편이 지구가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였다면, 2편에서는 우리 인간을 질타하는 게 아니라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환경 문제에 직면하면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나는 뭘 할 수 있는 거지?”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다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아서 절망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사소한 것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실천해야 한다고.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는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구부터 지키고 봐야겠다는 확신이 섰다. 칼 세이건의 책 「코스모스」에서도 분명히 언급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우리와 다른 바깥세상이 어떠한지 알아내는 것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개선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우리의 행성 지구가 우주에서 중요한 존재로 남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지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그들의 영역에서 지구의 변화를 끊임없이 추측하고 기술로 보완하려 노력하고 있다. 일부 예술가들도 재활용품을 이용한 작품을 만들어 관객에게 선보이기도 한다. 작가들은 자신이 쓰는 글에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며 독자에게 관심을 유발하고, 환경 운동가는 지금도 남모르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각기 다른 영역이 아니라 과학, 예술, 문학, 사회 모두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각자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지구를 위해 무엇을 실천할 수 있을까? 아주 사소한 것들부터 시작이다. 쓰레기 줄이기, 물과 전기를 아끼기, 일회용품 줄이기, 쓸모없는 소비를 하지 않기. 나아가 친환경 물품들을 찾고 친환경 소재를 이용해서 물건을 만드는 기업을 찾아 이용하기, 환경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일말의 관심을 부여해주고 도움 되는 방법을 공유하는 것까지. 아주 작아서 티도 안 날 것 같은 것들이, 순간에는 티가 나지 않더라도 쌓이고 쌓여서 눈에 보일 것이다. 인지하고 행동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마치 독립 운동가들이 그들의 ‘신념’으로 대한민국을 지켜냈듯이 나는 개인적인 신념을 소신껏 ‘실천’함으로써 지구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위대한 건축물을 보호하고 재건하듯이 지구를 최대한 좋은 모습으로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다.

 오돌토돌 올라왔던 아이의 피부가 가라앉고 있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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