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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궁리 Oct 24. 2021

허공에 떠 있는 마을

론다

 세비야에서 론다로 가는 버스는 2시간 가까이 이동을 해야 했다. 아이를 데리고 무리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가 어렸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이동하는 동안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는데 안정감이 들었는지 내내 잠을 잤다. 지금 생각해보면, 관광객으로 꽉 찬 버스 안에서 울음 한 번 터뜨리지 않고 땀을 삐질 흘리며 가준 아이가, 너무 고맙고 대견할 따름이었다. 

 오전 일찍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점심때였고 허기짐을 느꼈다.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불어 치는 돌풍에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바로 보이는 추로스 가게로 들어갔다. 초코 소스를 찍어 먹는 추로스와 따뜻한 커피로 몸을 녹였다. 먹고 있자니 다음 차에 실려 온 관광객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 타이밍에 우리도 이동을 시작했다. 관광객들이 가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같이 걸었다. 가게들이 즐비한 골목을 따라 쭉 걷다 보면 델타호 공원이 보이는데 전망대에서 누에보 다리와 건너편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높이가 아찔했다. 어떻게 저렇게 가파른 절벽 위에 하얗고 예쁜 집들이 지어졌을까. 자연의 광활함과 인간의 적응력에 놀랐다. 론다의 마을은 무분별한 개발로 자연의 주인인 척하는 요즘과는 다르게, 자연이 내어주는 공간 내에서만 머물기로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야말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바람직한 현장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찔하게 깎아 내려간 절벽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에 난간을 꽉 붙잡고 누에보 다리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누에보 다리가 드러내는 위엄은 어마어마했다. 이 건축물을 만들어 냈다는 인간이 위대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론다의 엘 타호 협곡에 놓인 누에보 다리는 론다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잇고 있는데 무려 40년간의 공사를 거쳐 1793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120m 깊이의 튼튼한 다리로 건재한데, 처음에 지어질 때는 다리가 무너져 90여 명의 마을 사람들이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에 긴 시간에 걸쳐 튼튼하게 재건했다고 한다. 위대한 건축물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다는 점이 아쉽기도 한 사연이었다. 다리를 건너 마리아 광장으로 내려가면 고르지 못한 돌들이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흙길을 볼 수 있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 누에보 다리를 아래에서 위를 바라볼 수 있는데 아래에서 바라보면 협곡의 장엄함이 더 크게 와닿는다. 왕복 4시간에 고작 2시간 관광이었지만 먼 거리를 달려와 볼 만큼 충분히 가치 있는 경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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