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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궁리 Oct 24. 2021

세비야에서 휴양을

세비야

 세비야는 플라멩코로 유명한 열정의 도시답게 날씨마저 강렬했다. 저가항공기의 흔들림으로 지끈거렸던 두통을 한순간에 날려버릴 정도였다. 시내까지 들어가는 버스에서 내려 숙소를 가기 위해 트램을 탔다. 미끈한 앞머리에 다섯 개의 열차 칸이 구불구불한 지렁이 관절처럼 연결어 있었는데 외국에 도착했음을 실감 나게 하는 교통수단이었다. 우리 앞에 스르르 멈춰 선 트램은 유모차도, 여행용 가방도 힘들이지 않고 끌어넣을 수 있게 편편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 이거지! 이거야! 내가 생각했던 외국은 이런 거라고!”


 신랑은 들떠서 외쳤다. 풍경과 여유, 분위기가 모두 마음에 든다고 했다. 숙소는 에어 비앤비로 예약을 했는데 집 앞에 도착해서 주인에게 전화나 문자를 하면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형식이었다. 낯선 외국에서 길 찾기도 어려웠는데 도착해서 전화를 걸어 대화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에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뜨거운 햇살을 등으로 받아 내며 숙소를 찾기 위해 내비게이션을 따라 길을 찾았다. 

 일단 세비야의 골목길은 예리하게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이어져 있었다. 옆에서 옆으로 풀쩍 뛰기만 하면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폭으로 촘촘히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건물들 사이에 난 길을 내비게이션에 의지해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쪽도 저쪽도 다 똑같아 보이는 건물과 길은 외국인인 나에게 미로 찾기보다 어려운 과제였다. 핸드폰 속의 빨간 점을 따라 걷다가 양 갈래 길이 나오면 몇 번이고 다시 돌아와 그 옆의 다른 길로 가기를 반복했다. 내비게이션은 12시 방향과 1시 방향의 미세한 갈림길을 단번에 찾아내지 못했다. 그렇게 내가 지나온 길이 어느 길인지 기억하기도 힘들기 시작할 무렵, ‘여기라고?’ 할 정도로 어중간한 길목에서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뜬다. 워낙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들 때문에 어느 건물인지 이름을 확인할 길이 없다. 초인종이 달린 벽 쪽을 샅샅이 훑었다. 에어비앤비라 당연히 숙박을 알리는 간판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흔한 건물 이름도 찾기 어려움에 탄식이 나온다. 이게 스페인의 방식인가. 어렵게 찾은 그 대문 앞에서 조심스레 전화를 건다.

 

 뚜두두두두. 할로.  


 다소 투박한 연결음 뒤에 영어도 스페인어도 아닌듯한 발음의 여자 주인이 아파트 비밀번호와 수칙 같은 것들을 안내해줬다. 알려주는 대로 공동 현관문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와 엘리베이터로 2층을 올라갔다. 현관 비밀번호까지 치고 들어와서야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낯선 나라, 낯선 방에 들어왔는데도 편안함이 느껴지는 것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난생처음 들어와 보는 집인데도 공간이 주는 안락함에 매번 안도를 느낀다.    


 

 세비야는 조금만 걸어도 유명하다는 관광지를 걸어서 만날 수 있었는데 날씨 때문인지 우리는 휴양에 가까운 일정을 보냈다. 세비야 대성당을 지나 알카사르 궁전에 갔을 때는 바다만 없었지 휴양지와 맞먹는 분위기에 무장해제되었다. 알카사르 궁전은 원래는 요새였다가 궁전으로 개조된 이슬람과 스페인 양식이 결합된 무데하르 양식의 건축물이다. 건축 양식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슬람 양식이 합쳐진 거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다. 말발굽 모양의 아치들과 화려하고 정교한 무늬의 타일들이 건물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다. 계단과 벽면은 물론이고 걸어 다니는 바닥까지 화려한 타일이 정갈하게 깔려있다.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을 통과해 뒤뜰로 가면 상당히 높은 키의 야자수 나무와 분수, 나무를 네모반듯하게 정돈해 놓은 정원이 펼쳐진다. 햇볕은 뜨겁고 그늘은 시원한, 우리나라 가을과 같은 날씨에 정원에서 한참이나 머물렀다.



 궁전 탐색하느라 아이도 지쳤는지 보채기 시작했다. 마음껏 뛰어도 부딪힐 위험이 없는 스페인 광장으로 향했다. 김태희가 광고한 핸드폰 촬영 장소로 유명했는데 TV에는 담기지 않을 만큼 넓었다. 반달 모양으로 광장을 둘러싼 웅장한 건물이 모든 것을 포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듯했다. 

 건물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스페인 광장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듬성듬성 보이는 관광객들이 개미처럼 작아 보였다. 광장 테두리를 따라 진한 갈색 말이 마부가 끄는 방향으로 관광객을 태운 마차를 끌고 있었다. 건물과 이어져 있는 운하에는 곤돌라를 타고 뱃놀이를 즐기는 관광객들이 보였다. 각자의 방법으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곳에서 해가 질 때까지 머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흘려보내는 시간도 필요하다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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