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맛집이야
파리에서 꼭 해야 할 일정을 끝내고 난 뒤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마침 아이는 유모차에서 한참을 떠들다가 잠들었고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하늘을 보니 배를 타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이제 바토 뮤슈 타러 가자~"
"바토 뮤슈? 그게 뭐야? 빵이야?"
"아니~ 타러 가야 한다니까! 배말이야, 배!"
장시간 사진을 찍어 허기졌던 걸까, 아니면 여행 계획에 일절 관여를 하지 않았던 탓이었을까, 신랑은 전혀 모르겠다는 듯한 말을 했다. 코웃음이라도 웃어넘길 마음이 없었던 나는 앞장서서 선착장을 향해 걸었다.
두 블록 정도 걷다 보니 저 멀리 하얀 글자에 빨간색 테두리를 두른 간판이 보였다. 아무리 읽어도 바톽스 무체스 (Bateaux Mouches) 정도로 읽히는 스펠링에 바토무슈 선착장이 맞을까 기웃거렸다. 강변에 커다란 배가 정착되어 있는 걸 확인한 뒤에야 표를 사서 배로 향했다.
관광객들은 한참 광광할 시간이어서인지 우리는 바토무슈의 첫 탑승객이 되어 배에 올랐다. 넓고 기다란 바게트같이 생긴 배는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1층 앞쪽은 서서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텅 빈 구조였고 중간부분과 2층에는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빼곡하게 박혀있었다. 1층을 지나 2층 계단을 오르며 센강을 제일 잘 볼 수 있는 앞자리에 앉으며 빈 공간에 유모차를 세웠다. 배의 큰 크기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우리 뒤로 몇 분이나 승객을 태우더니 그 많은 의자에 사람들이 꽉 찬 뒤에야 바토무슈는 출발했다.
황토색 센강을 미끄러지듯이 가로지르는 바토무슈 위에서 우리 부부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뉘엿뉘엿 저물어가던 해는 맑고 청명하던 하늘을 순식간에 핑크빛 노을로 뒤덮었다. 오묘한 하늘빛, 중세시대 건물을 배경으로 강변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파리지앵들의 모습이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영화를 보듯이 멍하니 바라보다가 오목한 다리 밑을 닿을 듯 말 듯 지나가는 바람에 현실로 돌아왔다.
"너무 좋다, 사람들이 어쩜 이렇게 여유롭지?"
"그러게~ 다들 서로 할 말이 많나 봐?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우리 문화랑 정말 다르다~"
"대화가 중요한 사람들인가 보지~ 우리도 이야기 많이 하자~"
"그래~ 애 키운다고 수고 많았어~ 앞으로도 같이 잘 키우자"
분위기에 취해 연애시절의 기분을 느끼며 앞으로의 우리를 다짐하다 보니 주변에 어둠이 깔리고 에펠탑에 불이 켜져 반짝이고 있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 따뜻한 석양과 반짝이는 에펠탑까지 봤으니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랑의 무지했던 말이 조금은 일리 있는 말이었다. 바토무슈는 분위기 맛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