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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실궁리 Nov 23. 2021

마음은 김치를 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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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쿵 쿵쿵쿵 쿵쿵쿵 쿵쿵쿵'


 희미하게 들리던 진동 소리가 점점 또렷하게 들어왔다. 소리가 사라지나 싶더니 다시 일정한 간격으로 쿵쿵거린다. 포근한 이불속에서 나오기 싫은 주말 아침이라 귀를 닫고 다시 잠을 청하려 했지만 한번 깬 잠은 멀리 달아나버렸다. 방을 나와 시계를 보니 7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다. 이불속에서 버틴 시간도 있으니 새벽 6시 30분부터는 쿵쿵거렸던 샘이다. 전날 밤에도 쿵쿵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진동이 이렇게 울릴지 모르고 있는 듯했다.

 경비실을 통해 호출을 층간 소음을 전달해달라고 했다. 확인을 마친 경비아저씨는 위층에서 바로 미안하다고, 그만하겠다고 했단다. 무얼 그만하는지도 모른 채, 소음이 그치길 기다렸는데, 아직도 남은 듯한 진동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잠시 후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


'띵동~ 띵동~'


 인터폰 화면에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아침부터 찾아올 사람은 없고 경비실에서 답변을 받았는데 위층에서 내려온 건가, 하는 의구심으로 인터폰을 켰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위층에 저희 부모님이 사시는데 제가 딸이거든요. 아침부터 조금 시끄러웠죠~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오늘 김장을 해서요~ 쉬는 날이라 아침부터 기분 언짢으셨을 거 같은데 조금만 양해해주십사 부탁드리려고요~"

"아~ 김장하시는군요. 어젯밤부터 쿵쿵거려서 의아했는데 새벽에도 그래서 뭔가 했어요. 그런 사정이 있으셨군요. 알겠습니다~"

"네~ 조금만 양해 부탁드려요~"

"네~"


 윗집에서 내려온 여자의 말에 따르면 김장을 새벽부터  예정은 아니었는데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오후에 병원을 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서둘러 김장을 시작했는데 이런 불편이 생길지 몰랐다고 미안해하며 양해를 구했다.  집을 울리는 진동소리가 김장에 쓰일 양념을 만들기  마늘이나 생강 같은 부자재를 빻는 소리였다. 정확한 설명을 들으니 이해를 못 할 부분도 니었다. 오전 내도록 소음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러려니 넘어갈  있었다.



 이전에 살던 집에서도 이런 층간 소음이 있었다. 저녁 8시부터 12시가 넘도록 발도 장소리가 났다. 그들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발도장 소리로 알 수 있었고 쾅쾅 닫아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곤 했다. 

 오래 참다가 그들에게 편지로 불편을 호소했는데 그 반응에 입을 다물수 없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맞벌이에 아이도 없고 내도록 집이 비어있다가 저녁에만 사람이 있다는 거였다. 사정은 알겠으나 저녁시간이니 소리가 더 크게 울려 양해해달라고 하니 되려 아파트 구조상의 문제를  자기들에게 불평하냐는 답변만 받았다. 그리고 보란 듯이 더 쿵쾅거렸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지만 그들의 태도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보게 만들었다.


 자기네들의 잘못은 없으니 상관하지 말란 식의 대응은, 우리 집의 천장이 그들의 바닥이 되는 공동 주택에 살면서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과는 멀어 보였다. 후로 그들이 쿵쾅거릴 때마다 우리도 천장을 두드리는 식으로 보복을 하곤 했다. 어쩌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불편한 만남은 그들이 이사를 떠나고 난 후에야 끝날수 있었다.



 '띵동 띵동'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 다시 한번 현관 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위층에 사는 할머니로 보이는 분이 인터폰에 비쳤다. 잠깐 나와달라는 말에 문을 열었더니 문틈 사이로 미안한 목소리가 흘러 들어온다.   


"아요~ 오늘 너무 시끄러웠죠~? 김장을 하느라고~ 아니, 너무 미안해서~ 우리 집에 원래 아저씨랑 나랑 둘이 살아서 평일에는 종일 집에 사람도 없고 그런데~ 가끔 이렇게 손자들 놀러 오고 그래서 시끄럽고 그래요~ 자꾸 조심시키고 하는데도  안되네~ 이해해줘요~~"


 그러면서 홍시 네 개가 담긴 플라스틱 상자와 쇼핑백 하나를 건넨다.


 "이거 금방 버무린 김치랑 감인데~ 미안해서 그래~ 요거 조금 먹어보라고~"

"아침에 따님분이 이야기하고 가서 이해하고 있었는데요~  이런 걸 다요~~"


 쇼핑백에 담긴 김치와 홍시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이제는 엘리베이터가 윗층에 멈췄다 내려오는 상황이 반갑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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