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 년 중 빵을 가장 자주 굽는 시기가 있다면 이월에서 삼월까지가 아닐까. 아침마다 먹던 따끈한 국물과 밥이 슬며시 물릴 때다. 가볍고 산뜻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고, 식욕보다는 기분을 채우고 싶어 진다. 추위는 여전한데 두터운 겨울 점퍼도 입기 싫어진다.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어디에도 갈 수 없고,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야릇한 시기.
자주 굽는 치아바타. 올리브오일 넣고 소금만으로 간을 한 담백한 빵이다.
빵은 살아온 모든 날의 허기로 부푸는 것 같다.
바람도 볕도 길을 잃었다. 잠시 환한 볕이 나다가도 바람이 달려오기 시작하면 이내 기후가 바뀐다. 바람은 애꿎은 비닐 자락을 휘어잡으며 유랑 무리 같은 구름을 불러들인다. 불현듯 길을 잃고 싶어지는 겨울의 끝자락. 밤새 바람소리를 듣다 깨어난 새벽엔 젊은 날 읽었던 릴케의 연가 한 줄이 발치에 밀려와 있었다. “나는 당신이 바닷가 마지막 집에 살면 좋겠어요.” 릴케는 연인 루 살로메에게 연가를 바쳤지만, 나의 연가는 자신에게로 향한다.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그곳엔, 모든 소리가 잦아들지요.” 바다가 가깝지 않아도 이월의 바람은 파도 소리를 연신 실어 나른다.
눈이 내릴 때마다 신기하게 구경하는 고양이들
어제는 아침부터 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산골에 산 뒤 이처럼 눈이 잦은 겨울은 처음이다. 고집스런 한파도 연일 지속되고 있다. 남쪽 마을엔 제비꽃도 피었다지. 남쪽 도시를 다녀온 친구가 어제 아침 전화로 들려주었다. 하얀 눈 풍경을 보며 연보랏빛 제비꽃을 떠올리는데, 말간 햇살이 창가에 모래펄처럼 펼쳐졌다. 내 상상이 불러온 힘인가 했다. 상상이 아니라 바람의 힘이었다. 소담히 내리던 눈을 밀쳐내고 어느새 햇살을 끌어다 놓았다. 밝음과 어둑함이 오락가락, 종잡을 수 없는 날씨. 바람은 이따금 허공을 뒤집을 듯 하얗게 눈보라를 일으키며 달려가다 이내 반짝이는 햇살을 끌고 돌아왔다. 날이 저물 때에야 바람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듯, 하루의 마지막 빛에 소담스러운 눈송이를 조용히 풀어놓았다.
이월의 끝자락. 눈은 늘 마지막처럼 내린다. 마지막이라 여기며 바라보는 눈은 입자 하나하나가 생생하다. 여행지에서 맞닥뜨리는 낯선 모퉁이처럼 번번이 달라지는 풍경. 이월에서 삼월로 향해가는 길목은 날씨만으로 낯선 여행이 된다. 나는 이제 막 도착해 짐도 풀지 않은 기분으로 창가에 서 있다. 이제 막 도착했으므로 다른 목적지도 긴히 할 일도 없다. 그저 바닥을 고스란히 드러낸 황황한 숲이었다가, 머리를 흩트리며 달려가는 바람이었다가, 살아온 모든 날 위로 휘날리는 눈보라가 된다.
뚜껑 있는 냄비에 모두 섞어 반나절 정도 두면 기포가 몽글몽글 올라온다. 몇 차례 주걱으로 반죽을 길게 늘여 위아래를 북돋워주는 과정을 거치면 찰랑찰랑 탄력 있게 흔들리는 반죽이 된다. 그것을 그대로 떠서 살살 그릇에 옮겨 오븐에 넣어 190도에 20분 굽는다. 구운 빵은 철망에 올려 한 김 식힌 후 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