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나무 Jan 26. 2024

꼭 한 번은 꼬치 어묵탕

겨울 음식

  올겨울은 정말 눈이 자주 내린다. 거의 이삼일에 한 번꼴로 내리는 것 같다. 겨우 다닐만하게 눈을 치웠다 싶으면 어느새 슬그머니 또 눈발이 떠다닌다. 지나가는 눈이겠지, 대수롭지 않은 척 보고 있는 중 눈발은 점점 부풀고 길은 다시 하얗게 변해간다. 동생과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마당 아래 비탈길이 황홀해진다. 산골에 살다 보니 집 울타리 안에 그 황홀한 비탈길이 속해 있다. 작은 산도 울타리 안에 있다. 겨우내 눈 치우느라 힘겹기도 하지만 길과 산을 소유한다는 건 꽤 멋진 일이다. 이게 웬 호사일까 하는 마음으로 사계절 그 길을 오간다. 계절마다 만나는 풀과 꽃, 새로 만나는 어린 나무들. 풀숲이 우거지고, 새들이 날아들고, 하루 볕 길이가 달라지고, 바람은 산마루를 빗으며 달리고, 하얀 눈꽃이 무수히 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인가 산골에 온 지 11년 차에 접어들도록 어딘가로 떠나 볼 마음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 마을 길 산책 말고는 웬만하면 집을 벗어나는 일도 없다.

   

  긴 외출이라야 한 달에 두어 번 차를 몰고 읍내 마트에 다녀오는 정도인데, 겨울엔 길 사정이 좋지 않아 그조차 자제하게 된다. 올겨울도 지난 연말 이후 비탈길이 눈에 덮인 뒤, 차를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겨울 초입에 식품을 잔뜩 쟁여 두기에 생존에 곤란할 일은 없었다. 그래도 갑자기 색다른 음식이 생각나거나 하면 갈등이 생긴다. 예전 어디서 먹어 봤음직한 음식이 난데없이 떠올라 눈앞에 오락가락하는 일 말이다. 자주는 아니고 겨울의 긴 고립 중 주로 생기는 현상이다. 뻔한 일상이나 음식에 그리 불만은 없다고 여기나, 역시 한 번쯤은 일탈이 필요한 모양이다. 이번 오락가락은 어묵탕이었다. 두툼하게 썬 무와 함께 길쭉한 막대 어묵을 부들부들해지도록 푹 끓여낸 꼬치 어묵탕. 평소 먹던 것이 아니어서 온갖 것이 저장된 냉동고에 어묵은 들어 있지 않았다. 겨울이 가기 전 꼭 한 번 먹지 않으면 서운한 음식이 어묵탕이라고, 누가 내 귓가에 속살대는 것만 같았다. 사흘이나 어묵탕이 눈앞에 오락가락하니 어쩔 것인가.

  

  "읍내에 갔다 오자."

  동생에게 말했다. 세상 그런 이상한 말은 처음 들어본다는 얼굴로 동생이 나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날아갈래?"

  말을 참 이쁘게도 하는 동생이다.

  "걸어갔다 오면 되지."

  배짱을 부려보았다. 말이 그렇지, 읍내까지 걸어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산골에서 살기 시작한 초기엔 읍내까지 걸어가 본 적도 있었다. 도시를 떠나 드디어 산골살이를 시작한 게 어찌나 좋던지, 그땐 주변 마을 곳곳 꽤 멀리까지 걸으며 기쁨을 누렸다. 읍내까지는 집에서 세 시간가량 걸렸다. 중간에 쉬는 시간까지 더하면 왕복 일곱 시간이 걸리는 코스. 육 년 전인가 두 번째로 다녀온 게 마지막이었다. 이젠 그렇게 오래 걸을 신명도 없고 체력도 따라주질 않는다.

  "나갈 결심만 하면 방법이야 있지."

  이왕 말을 꺼냈으니 밀어붙였다. 당연히 방법이야 있다. 마을 길을 한 시간 정도 걸어가 국도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탈 수도 있고, 아주 간단하게는 택시를 불러도 된다. 문제는 우리가 이 고장에 온 뒤 한 번도 버스나 택시를 타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안 해 본 짓을 하려면 꽤 심란해지는 것이 우리 자매 공통점이다. 내가 제시한 두 가지 방법을 듣고 잠시 고민하던 동생이 절충안을 내놓았다.

  "갈 때는 버스 타고 올 때는 택시를 타자."

  ", 좋은 생각이야. 이왕이면 골고루 체험도 하고 올 땐 짐이 있으니 택시를 타는 거지."

  쉽게 합의해 준 것에 고무되어 동생을 마구 치켜주었다. 당장 실행에 옮기기로 하고 모든 준비를 갖춰 30분 뒤 출발하기로 했다. 어찌나 바쁘던지. 나는 버스비와 택시비 지불 방법을 검색해 예상 금액에 맞춰 지폐와 동전을 찾아 놓았다. 가방엔 비상약과 물, 천으로 된 장바구니를 챙겼다. 그 사이 동생은 새삼 집 안팎 고양이들 집을 죄다 청소하고 물통과 사료통을 꽉꽉 채워 놓느라 난리였다. 누가 보면 며칠 집을 비우는 줄 알았을 것이다.   

  

  출발은 어수선했으나 마을 도로를 한 시간여 걸어가는 동안 차분해졌다. 도로를 걷다 보면 간혹 아는 사람이 지나가다 차 속도를 늦추고 인사를 건넬 때가 있다. 대부분 읍내행일 테니 차를 얻어 탈까도 고민해 보았다. "아니, 우리 힘으로 해내자." 동생이 반대했다.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 복잡 미묘한 상황을 벌일 바에야 안 나가는 게 낫다. 역시 우린 마음이 잘 맞는다. 그깟 마음 하나 맞추고 둘 다 의기양양 국도변 버스정류장까지 기세 좋게 도착했다. 정류장 표지판은 영업을 안 한 지 오래된 상점 마당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과연 버스가 설까 싶게 낡은 표지판 밑에서 우리는 고개를 빼 들고 버스를 기다렸다. 먼지와 바람을 일으키며 2차선 도로를 휙휙 지나가는 건 주로 승용차와 트럭들이었다. 20분이 넘도록 버스는 오지 않았다.

  "마을버스 있다는 거 맞아?"

  동생이 물었다.

  "본 거 같은데."

  나는 대답했다. 소형 승합차 마을버스를 분명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한 것이 그새 운행이 중단됐을지도 몰라 확신할 수는 없었다. 읍내 버스터미널과 동서울을 오가는 시외버스가 정류장을 지나가는 건 확실하지만 배차간격이 뜸해서 언제까지 기다려야 올지 알 수 없었다.

   "택시라도 지나가면 타겠는데."

  나는 중얼거렸다. 찬 바람을 맞으며 가만히 서 있자니 점점 추워졌다. 무엇보다 제설 흔적이 질척하게 남은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 소음과 배기가스 냄새가 괴로웠다.

  ", 저것도 버스인가?"

  동생이 말했다. 나도 보았다. 흔히 봉고라고 부르는 진회색 승합차가 앞 유리 상단에 <희망버스>라고 쓴 안내판을 붙인 채 지나가고 있었다. 버스라고 보기엔 애매하고 수상쩍었다. 하여튼 이미 꽁무니를 보이며 저만치 훌쩍 가버렸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모바일 데이터를 on 상태로 전환했다. 읍내 택시를 검색해 부를 생각이었다. 그때 동생이 말했다.

  ", 다시 오는 거 같은데."

  동생 눈길을 따라가 보니 저만치 삼거리에서 진회색 봉고가 유톤 해서 돌아오고 있었다. 설마 우리한테 오는 건 아니겠지, 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설마 우리한테 오는 거였다. 맞은편 도로에서 속도를 줄인 봉고가 차선을 무시하고 휙 꺾어지더니 상점 마당에 들어와 정차했다. 우리는 놀라서 둘이 손을 꼭 잡은 채 물러섰다. 오래전 문 닫은 상점엔 사람 사는 기척이라곤 없었다. 우리가 봉고에 태워져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것이었다. 봉고차 문이 열렸다. 운전석이 아닌 차 중간에 있는 문이었다.

   "안 타요?"

  머리가 희끗한 할머니가 상체를 내밀며 물었다.

  "저희 읍내 가는데 타도 돼요?"

  내가 미심쩍어하며 말했다.

  ", 그럼. 타라고 온 거죠."

  할머니가 대답하며 몸을 뒤로 뺐다.

  엉겁결에 나는 동생과 봉고에 올랐다. 할머니는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었고 다른 승객은 없었다. 운전자는 6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동생을 뒷좌석에 들여보내고 차 문을 닫았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뒷자리로 가려던 나는 아, 하며 옆 좌석에 기대 지갑을 꺼냈다. 변속기 뒤에 돈이 든 납작한 바구니가 보였다. 천 원권 지폐 몇 장과 동전이 얼마간 들어 있었다. "얼마 드려야 돼요?" 물으니 "3,400원이요", 운전자가 대답했다. "한 사람이요?" 뒤에서 동생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니, 두 사람이지." 할머니가 운전자 대신 대답했다.

  

  뒷좌석에 가서 동생과 마주 앉자 좀 안심이 되었다. 이거 마을버스 같은 건가 봐. 동생 눈을 보며 말 없는 대화를 했다. 차비를 냈으니 우리를 목적지까지 운반해 줄 버스인 게 맞을 거였다.

   "내 말이 맞잖아.  기다리는 거라고 했죠?"

  앞자리 할머니가 운전자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돌리라고 했지. 추운데 계속 있겠다 싶어서."

  뒷말은 나를 돌아보며 했다. , 우리 얘기였다.

  "저희 말이에요?"

  "그럼. 손을 들어야지. 이렇게 번쩍. 그래야 차가 서."

  할머니가 오른팔을 힘 있게 들어 보이며 웃었다. 손으로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버스가 그냥 지나간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와 운전기사를 향해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차를 돌려서까지 우리를 태우러 와 준 것이 그제야 마음에 와닿았다.

  "오늘은 어디 가세요?"

  운전자가 말하고 있었다.

  "미장원에. 파마가 풀려서."

  할머니가 대답했다. 서로 잘 아는 사이인지 친숙한 대화가 얼마간 더 이어졌다. 우리 목적지인 읍내 면사무소 앞에 도착할 때까지 다른 승객은 더 없었다.  

   

  "힘들게 왔는데 도서관이라도 들를래?"

  면사무소에서 길을 건너 마트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던 중 동생이 선심 쓰듯 말했다. , 하고 나는 대꾸했다. 책을 빌리면 좋겠지만 언제 다시 나올지 모르니 반납 기일 지키는 게 부담이 되었다.

  "넌 어디 가고 싶은데 없어? 빵집이나 ."

  이번엔 내가 동생이 좋아할 만한 것을 권했.

  ". 그냥 장만 봐서 가자."

  동생이 말했다. 내 마음도 그랬다. 역시 우린 잘 맞았다. 둘 다 이미 지쳐 있는 것이다. 마트에 도착한 뒤 각자 바구니를 들고 물건을 샀다. 내가 어묵과 배추, , 콩나물, 파 한 단을 사서 계산대로 가자 동생이 먼저 와 있었다. 동생 바구니엔 두부, 라면, 치즈, 요거트 등이 들어 있었다.

  택시를 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마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택시 정류장이 있고, 그곳엔 늘 택시가 몇 대씩 대기하고 있었다. 맨 앞 택시에 기사가 없어 뒤쪽 택시로 다가가니 "전화 걸어줄게요. 앞 거 타세요." 남자 기사가 차창을 내리며 말했다. 잠시 서 있자 긴 머리를 틀어 올리고 흰색 인조 모피를 입은, 어딘가 화려한 여인이 나타나 택시 운전석에 올랐다. 택시에도 여인과 닮은 향수 냄새가 배어 있었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스타일에 왕언니 같은 포스. 행선지를 말하자 수월하게 마을로 돌아오게 되었다. 숲길 같은 우리 마을 도로에 들어섰을 때 " 좋은 곳에 사시네요." 한마디를 했을 뿐 말이 없는 기사분이었다. 뭔가 좀 멋져 보였다.

  "여기까지 와 달라고 전화하면 오시나요?"

  택시에서 내리기 전 물어보았다.

  "그럼요. 거기 문 위쪽에 명함 있어요."

  택시비는 13,400원이 나왔다. 묵직한 장바구니를 동생과 나눠 들고 눈 덮인 내리막길을 조심조심 걸어 집 울타리를 통과하고 오르막길을 올라 마당에 도착했다. 역시나 집은 반가웠다. 고작 두 시간 반 만에 다녀온 읍내 나들이지만 우리에겐 낯선 모험이었다. 여독이 풀리지 않아 어묵탕은 다음날 만들어 먹었다.     



 

어묵은 애벌 끓여 기름기를 걷어내고 다시 무와 함께 푹 끓였다.


마트에서 사온 배추로 겉절이도 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떠올린 꼬치 어묵탕은 언젠가(거의 20년 전) 춘천 오봉산 등산로 입구에서 먹었던 것이었다. 그때도 꽤 추운 날이었는데 김이 오르는 어묵 꼬치를 친구와 하나씩 들고 먹으며 좋았던 기억. 산을 오를 생각에 마냥 설레었던 것일까.


집마당


동생과 내가 사랑하는 마당 아래 비탈길



기껏 치웠는데 다음날 또 이렇게 푸짐한 눈이...



집 울타리. 여기서부터 150여 미터 가야 마당이 나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해 떡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