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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Jul 23. 2021

블루베리에 집중!

블루베리 딸 땐 조심하세요

  사진 촬영 기법 중에 아웃포커스라는 것이 있다. 촬영 기법 같은 걸 몰라도 스마트폰 카메라에서 그 기능을 선택하면 누구든 사용할 수 있다. 주변을 흐릿하게 만들어 원하는 대상을 또렷하게 부각시키는 기법. 그동안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숱하게 찍었으면서도 그것을 최근에야 사용해 보았다. 마당의 블루베리가 첫 대상이었다. 아침마다 만나는 검푸른 열매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순간의 기쁨을 생생하게 남겨놓고 싶어진 것이다.  

 

칠월의 블루베리

  올해는 유난히 블루베리가 탐스럽게 열렸다. 꽃이 필 때부터 굉장하더니 열매도 그만큼 풍성했다. 오월 초순부터 가지마다 작은 방울 같은 꽃이 초롱초롱 맺혔다. 흰색에 연두와 분홍빛이 살짝 스며든 색. 꽃이 진 자리 귀여운 열매가 차올랐다. 열매도 꽃 모양과 닮아 맑은 방울 소리가 날 것 같았다. 살짝 잡았다 놓은 듯 주름이 있어 앙증맞은 복주머니 같기도 했다. 열매는 연두에서 분홍, 짙은 보랏빛으로 변하며 통통하게 익어갔다. 열흘 남짓 아침마다 블루베리를 딸 수 있었다. 나무에 바짝 붙어 서서 살짝 건드리면 톡 하고 열매가 따졌다. 탱탱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을 손끝에 느끼며 바구니에 던져 넣는 재미가 블루베리 맛의 반은 되었다. 맛도 좋고 몸에 이로운 성분이 많다고 알려진 블루베리. 특히 눈에 도움을 주는 영양분이 듬뿍 들었다는데, 하루 서른 개 이상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한다. 복잡한 정보를 대충 훑어 내리고 검색 화면을 끄는 순간 간단히 정리했다.

     

  몸에 좋은 블루베리, 적정량은 하루에 서른 개.

     

하루 적정량을 담아 보았다

  정보의 진위 여부야 어떻든, 과한 건 조심할 일이다. 서른 개. 많은 것 같아도 한입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막 따온 블루베리를 씻으며 유난히 탐스러운 것들을 입에 넣다 보면 이내 적정량에 도달했다. 아! 아쉽네. 그릇에 예쁘게 담아 천천히 음미해 볼 것도 없었다. 나머지는 어떡한다? 여러 정보에 의하면 냉동을 하는 게 가장 좋은 저장법이라 했다.

     

  늦장마가 싱겁게 물러가고 뜨거운 볕이 쏟아지는 나날. 블루베리 익는 속도가 빨라져 한동안은 저장하느라 바빴다. 작은 통에 담아 냉동실에 층층이 얼려두고, 블루베리 술도 한 병 담아 놓았다. 동생과 단둘이 즐기는 산골 연말 파티엔 포도주 대신 블루베리 술을 맛보게 생겼다. 참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올해 블루베리가 풍성히 열리는 대신 포도는 아예 꽃도 맺지 않았다. 꽃 필 무렵 기온이 너무 낮았던 때문인지, 가지치기를 지나치게 해 버려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볼품없는 마른 몸피로 겨울을 난 뒤, 여름이면 놀랄 정도로 무성해져 열매를 탐스럽게 맺었던 포도나무. 한 해 정도는 그냥 푹 쉬고 싶은 것일까.  

 

  "포도가 없어 물까치들이 섭섭하겠네."

  얼마 전 포도나무 주변 웃자란 풀을 뽑아내던 동생이 말했다. 해마다 포도향이 달콤해지는 시기엔 물까치들이 잔뜩 몰려들었다. 안개 자욱한 새벽에 수십 마리가 날아와 포도나무에 주렁주렁 기이하게 매달려 있기도 했다. 순간의 장면으로는 신비롭게도 보이지만, 이내 끽끽 괴상한 소리를 질러 대며 요란한 날갯짓으로 마당 곳곳을 누비는 꼴은 난장판을 떠올리게 다.       

  "글쎄 말이야. 덕분에 올여름은 좀 조용하겠어."

  내가 말했다. 까치보다 약간 작은 연회색 몸체에, 날개와 긴 꼬리엔 맑은 하늘빛이 도는 물까치. 이름처럼 물빛을 띠어 청초한 것이 예쁘게 생겼다. 생김새는 그렇다지만 떼 지어 몰려다니며 괴성을 지르는 행태는 마을 골치 아픈 패거리와 다름없다. 나뭇가지가 휘도록 매달려 잘 익은 열매만 골라 먹어치우고는 우르르 또 몰려간다. 유난히 긴 꼬리가 거추장스러운 건지 퍼덕퍼덕 날아가는 모양새는 어째 어설프다. 까마귓과의 텃새라는데 근래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개체수가 많아졌다. 이제 포도가 열린다 해도 우리 몫은 거의 기대하기 힘들게 생겼다. 나무 열매는 물론 토마토에 옥수수, 곤충, 개구리까지 가리지 않는 식성을 가졌다는 녀석들.

     

    그런데 걔네들 블루베리는 어째 안 건드리네. 글쎄 말이야. 다행이다. 한 줌씩 따던 블루베리를 작은 바구니 가득  흡족히 따게 된 날, 동생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 며칠 지나지 않아 결국 녀석들이 몰려왔다. 역시나 검푸르게 잘 익은 블루베리는 그날로 몽땅 사라졌다. 산기슭 가까이 늘어져 손이 안 닿던 농익은 블루베리까지 싹 먹어치웠다. 깔끔하게 청소라도 하고 간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블루베리는 더 이상 딸 일이 없어지고 말았다. 이틀 전 아침엔 녀석들이 나타나기 전 몇 알이라도 건져볼까 하여 나갔다가 막 마당에 날아든  녀석들과 마주치고 말았다. 얼핏 봐도 스무 마리는 넘어 보였다. 나무를 오르내리며 마당 곳곳을 점령하고 있었다. 인간이 나타나자 끽-끽끽, 특유의 금속성 괴성이 더 요란해졌다. 나는 재빨리 돌아서 집으로 들어왔다.  가까이 가는 건 위험했다. 머리가 상당히 뛰어나고 가족애가 유별난 것으로 알려진 녀석들이다. 한 번 찍히면 지속적 공격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심한 경우 밖에 나설 때마다 따라다니며 온 일가친척까지 동원해 쪼아댄다고 했다. '물까치 공격'이라는 제목의 뉴스 기사와 블로그에서 본 내용이다. 새들의 집단 공격이라니, 생각만 해도 무섭다. 어릴 때 본 공포 영화에 히치콕 감독의 '새(The birds)'가 있었다. 내가 본 공포 영화 중 가장 인상에 깊이, 오래도록 남아 있다. 공포 영화를 병적으로 못 보는 사람이라 '새' 말고는 거의 본 것이 없어 비교 대상은 없지만 하여튼 그 정도로 강렬했다. 안전한 집안의 통창에서 나는 녀석들을 내다보며 녹슨 철문 같은 그 웃음을 흉내 냈다. 끽-끽끽, 그래 봤자 블루베리는 이미 우리가 충분히 차지했다! 아직도 덜 익은 블루베리가 얼마간 남아 있지만 이젠 깨끗이 양보하기로 했다.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는 물까치. 내년 블루베리는 일찌감치 녀석들의 차지가 될지도 모른다. 미리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당장 내일 일도 잘 생각하지 않는다. 아침에 동생과 의논해 오늘 할 일만 간단히 정한 뒤 나머지는 내키는 대로 한다. 이상 기후에 팬데믹, 때때로 어쩔 수 없는 불안증에 싸이기도 하지만 되도록 의식하지 않는다. 시야가 흐릿해진다 해도 보이는 것만큼만 보겠다 생각한다. 주변이 모호해지면 어느 부분은 렷해지기도 할 것이다. 올 칠월 가장 렷한 건 블루베리였다. 블루베리에 집중! 덕분에 날씨는 무더워도 진보랏빛 상큼함을 즐길 수 있었다. 텃밭에도 나날의 삶에도 그렇게 가끔 아웃포커스 버튼을 누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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