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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나무 Jul 04. 2021

자장면 시키신 분

짜장 국수

  자장면 시키신 분~        

  언제 들어도 귀가 솔깃해지는 외침이다. 주문한 사람이 아니어도 슬며시 돌아보게 되는 반가움. 일상의 나날에도, 이삿날 짐짝을 비집고도 흔히 들려온다. 오래전 텔레비전 광고엔 나룻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자장면을 배달하는 장면이 있었다. 광고의 주체인 이동 통신사보다는 배경이 된 마라도가 더 유명해졌다. 마라도엔 '자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간판을 단 음식점까지 여럿 생겨났다고 한다.       

   더욱 인상적으로 자장면이 등장하는 영화도 있다. <김씨 표류기>. 영화에서도 배를 타고 섬으로 자장면을 배달하는 장면이 나온다. 배는 오리배, 섬은 서울 한강에 있는 작은 무인도.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도심의 빌딩과 차도가 지척이지만, 남자 김 씨는 철저히 섬에 고립되어 있다. 건너편 도심 방 한 칸 오래도록 자신을 가둔 또 다른 존재가 있다. 스스로 섬이 된 여자 김 씨다. 명의 그늘 아래 세상과 단절하고 류하는 두 김 씨. 에게 자장면은 희망의 상징이 된다. 무인도에 밀려온 쓰레기처럼 자칫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이 한 가닥씩 모 자장면, 즉 희망이 되어가는 과정. 기발한 착상과 빈틈없는 구성은 감탄스러웠고, 모든 가닥들의 합심으로 장엄하게 자장면이 탄생하는 순간은 감동스러웠다. 영화를 본 후유증이 있다면 자장면이 몹시 먹고 싶어 진다는 것.         


  자장면이 먹고 싶다면 만들 수밖에. 가히 배달의 전성시대, 공원이나 시골 논밭, 하다못해 섬까지 음식이 배달되는 시대라지만 자장면 배달이 안 되는 산골에 동생과 살고 있다. 차로 20분 거리 읍내에 중국집이 있으니 열 그릇 정도 주문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열 그릇이나 필요한 경우가 없어 시도해 본 적이 없고, 주문을 못해 아쉬운 적도 없었다. 표류하는 이들에게 소통과 회복의 기운을 주기도 하는 경이로운 음식 자장면. 만드는 과정이 그다지 복잡하진 않다. 된장찌개 끓이는 정도의 에 자장 가루만 있으면 된다. 쩐지 자주 해 먹게 되지는 않는다. 자장면은 외식이 흔치 않던 어린 시절 특별한 음식이었다.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 주고 싶은 심리가 바닥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장면을 먹을 만한 약간의 이벤트가 있다면 주저할 필요가 없다. 이를테면 오래도록 신경 쓰이던 내 부엌 창의 망가진 차양을 고친 기념이랄지.        


  장마가 시작되기 전 부엌 차양을 고치고 싶다는 생각은 진작 하고 있었다. 나무틀에 비닐을 씌워 창 위에 붙여놓은 차양이었다. 약한 바람에도 한껏 기승을 떨어주고, 비 올 때면 음향효과도 훌륭했다. 여러 번 덧대어 사용했는데 이젠 더 이상 손보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장마는 이미 시작되었고 바람도 강할 것이란 뉴스 기사를 보았다. 비가 막 쏟아지기 직전,   빠른 동생이 용케도 그럴듯하게 고쳐놓았다. 자장면을 주문할 자격이 충분다. 로 단장한 차양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자장면을 만들었다. 기분 탓인지 빗소리에서 신선한 탄력이 느껴졌다. 정성껏 만든 자장면 한 그릇을 오이 물김치와 함께 쟁반에 담아 들고 동생네 문을 두드렸다.     

  "자장면 시키신 분~"  

 자장면은 역시 배달을 해야 기분이 난다.        

    


        

 <짜장 국수 만드는 과정>

 시판되는 오**자장 가루 100그램 한 봉지로 자장면 네 그릇을 만들 수 있다. 들어가는 재료는 간단하다. 양파는 필수고 다른 채소는 선택이다. 양파만 잔뜩 기름에 볶아 자장 가루를 넣어도 괜찮다. 양파 자장엔 물을 넣지 않아야 맛있다. 양파가 익으며 나오는 달짝지근한 국물이 맛의 대부분을 책임진다. 매운 고추와 부추 몇 가닥을 첨가하는 것으로 나머지 빈틈과 향미를 채운다. 마침 집에 감자나 당근 양배추가 있다면 보기에도 그럴듯하고 맛은 더 풍부한 자장 볶음을 만들 수 있다.       

  마침 집에 감자도 있고 병아리콩도 있어 이번 자장면은 감자와 병아리콩을 넣어 만들었다. 중간 크기 양파 , 감자  , 삶은 병아리콩 한 컵, 청양고추와 부추 한 줌.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먼저 양파를 볶은 뒤 감자와 물 한 국자를 넣어 뚜껑 닫고 5분 정도 익힌다. 양배추 같은 수분 많은 채소는 물을 넣지 않아도 괜찮지만 감자가 들어갈 땐 물을 한 국자 정도 넣어야 타지 않는다. 냄비 속 재료가 익어 국물이 자박해지면 불을 끄고 자장 가루를 골고루 섞어준다. 다시 불을 약하게 켜 잠시 저어준 뒤 감자가 푹 익도록 뚜껑을 닫아놓는다. 그 사이 청양고추와 부추를 잘게 썰어 놓는다. 다음은 면을 준비할 차례. 정성을 들이고 싶다면 직접 반죽해 면을 뽑아도 좋겠지만 간단히 소면을 사용한다. 요리 과정이 복잡해지면 자칫 입맛이 달아날 수 있다. 우동면이나 칼국수면으로 만들어 본 적도 있는데 동생도 나도 가느다란 면발을 좋아해 소면이 기호에 맞았다. 소면을 삶아 찬물에 헹궈 물을 뺀 뒤 자장 냄비에 넣어 비빈다. 불은 약불, 다진 청양고추와 부추를 마지막에 넣는다. 고명 루꼴라 꽃.     


루꼴라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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