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구름나무 Jun 22. 2021

동생이 만든 무서운 두부조림

  동생이 잘 만드는 음식이 있다.

  무서운 두부조림.

  작년 여름 비가 연일 내리던 즈음, 처음으로 두부조림을 했다며 나눠주었다. 빨간 고추기름이 잔뜩 얹혀 보기만 해도 무서운 모양새. 한 입 맛보는 순간 기침이 터졌다. 주뼛 온몸의 감각이 곤두서고 눈물까지 핑 돌았는데, 어라! 맛있었다. 무덥고 습한 나날 그 두부조림에 밥 한 그릇을 거뜬히 비웠다. 내가 먹어본 두부조림 중 거의 최고였다. 호, 어디서 이런 맛을 끌어낸 거지? 아끼지 않고 칭찬을 해주었다.               


  그 뒤로 읍내에 나갈 때면 두부를 사서 동생에게 안겨주었다. 어쩌다 맛있게 된 것일 뿐이라고 동생은 자신 없어했지만 매번 맛은 비슷했다. 몇 번 그런 일이 거듭되자 동생은 내게 자신의 두부조림 비법을 알려주려 했다.

   "일단 두부를 기름에 노릿하게 구워야 해."   

  그렇게 시작되는 두부조림 방법.    

  "아니 알려 주지 마."    

  나는 귀를 막는 시늉으로 거부했다. 내게 방법을 알려주고 두부조림에서 해방되려는 동생의 의도에 말려들 생각은 없었다.  듣지 않아도 대충 짐작할 순 있었다. 어떤 과정으로 무슨 양념을 넣어 만드는 건지. 재료야 뻔했다. 마늘, 양파, 고추, 고춧가루 같이 매운맛 내는 것들을 총동원했을 것이다. 그 양념들을 식용유에 볶아 기름진 매운맛을 한껏 이끌어내고, 아마도 고추장까지 추가하지 않았을까. 사실 주재료가 두부라는 것만 다를 뿐 전체적인 맛은 동생이 만든 떡볶이와 흡사했다. 그전까지 내가 동생에게 얻어먹는 유일한 음식은 떡볶이였다. 떡볶이도 동생이 만들어야 속이 얼얼한 게 후련한 맛이 난다.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증이라는 말이 있다. 피부가 인지하는 촉각이라는 것이다. 혀의 미각 세포가 감지하는 맛은 대략 다섯 가지로 단맛, 쓴맛, 신맛, 짠맛, 감칠맛 정도라고 한다. 매운맛이 촉각이라 해도 어디까지나 과학적 분류일 뿐, 엄연히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맛으로 통하고 있다. 매운맛의 선호가 단지 통증에 반응해 분비된다는, 엔도르핀의 진통 효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맵고 달고 기름진 것이 어우러져 내는 총체적인 맛과 향미가, 아릿한 자극과 함께 뇌세포에 전달되는 순간, 우리는 피안의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 아닐까. 잠시라도 현실의 잡다한 것들을 잊고 도달하는 오감의 경지. 그것이 일종의 마비라 해도 온 몸의 감각이 모아지는 순간 짜릿한 활기를 동반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얼마 전 읍내에 나갈 일이 있어 또 두부를 사게 되었다. 오, 무서운 두부조림. 커다란 두부 한 팩을 장바구니에 집어넣으며 나는 즐겁게 읊조렸다. 비가 올 듯 말 듯, 두부조림 먹기에 더없이 좋은 후덥지근한 날이었다.    

  “나도 이젠 두부가 무섭다고.”   

  옆에 있던 동생이 볼멘소리를 했다. 하하, 웃음이 나올 수밖에. 부엌일을 하느니 밭을 갈겠다는 동생. 요리하는 걸 워낙 귀찮아한다. 두부가 무서워질 만했다. 대부분 음식은 내가 만들고 있지만 떡볶이와 두부조림만큼은 동생이 만드는 걸로 은연중 정착이 되었다. 읍내에 다녀올 때면 마트에 들러 두부를 사게 되니 읍내 외출을 반기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반기지 않아도 읍내에 나갈 일은 간간이 생긴다. 이번엔 내 부엌 등 스위치가 망가져 부품을 사 와야 했다.        


  두부는 무서워도 전등 스위치 같은 건 무서워하지 않는 동생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벽에 부착된 스위치를 망설이지 않고 들어냈다. 벽 일부로만 여겨지던 스위치가 간단히 분리되는 것을 나는 감탄하며 보고 있었다. 스위치를 들어낸 벽 속은 뻥 뚫려 있었다. 컴컴한 내부에서 복잡한 선들이 줄줄이 내려와 스위치를 매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손길이 닿는 친숙한 물체인데 그 속은 생경했다. 동생이 흥미롭게 구조를 살피는 동안 나는 불안한 곁눈질로 지켜보았다. 짐짓 모른 척 살고 있지만 집 천장이나 벽 속에 숨겨 놓은 수많은 선과 장치로 유지되는 생활이었다. 인체의 해부도 같이, 나로선 알고 싶지 않은 운영체계.


  동생은 4구 스위치 중 고장 난 부엌 쪽 부속만 빼내 새로운 부품을 꽂아 넣고 있었다. 경험도 없이 짐작만으로 작업을 해내다니!     

 “귀찮으면 두부조림 내가 만들까?”    

  존경스러운 나머지 나는 기대를 누르고 말했다. 작업을 마무리한 동생은 이제 드라이버와 나사 따위를 챙기고 있었다.      

  “불 맛을 제대로 입힌 뒤 바짝 조려야 해. 할 수 있겠어?”    

  동생이 내 쪽을 힐끔 보며 말했다.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이었다.       

  “좀 담백하게야 되겠지만 어떻게 만들어도 두부는 맛있으니까.”     

  내가 말했다. 내 손을 거치는 음식들은 대개 담백한 건강식이 되어버린다. 웬만하면 집에 있는 채소를 다 집어넣게 되는 데다, 양념 쓰는 것을 조심스러워하기 때문이다. 맛있는 매운맛은 대체로 기름, 설탕, 고추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동생은 그 세 가지 요소를 과감히 사용하는 데서 마성의 맛을 끌어내는 것이다. 더구나 동생이 사용하는 고추는 청양 고춧가루와 말린 베트남 고추다. 화끈한 그 둘이 만나 기름에 졸여지면서 궁극의 매운맛이 탄생한다. 알고는 있지만 요리에도 습성이란 게 작용하기에 나로선 도무지 과감해지지 않는다.         


  스위치 교체 작업을 원활히 마친 기세로 동생은 두부조림까지 흔쾌히 떠맡아주었다.   

  “저녁에 먹을 수 있게 해 줄게.”  

  동생이 두부를 들고 자신의 집으로 건너간 뒤 우르르 쾅쾅, 천둥소리와 함께 대기 불안정이 시작되었다. 어둑하게 비가 쏟아지다가 이내 환하게 볕이 지나가는, 정신 나간 모양새로 날씨가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전등은 물론 고장 위험이 있는 전기 스위치를 모두 고 콘센트도 빼두었다. 산속 집이라 번개와 천둥이 요란하게 지나갈 때면 오싹해진다. 우르르 쾅쾅, 제대로 한방 먹인 천둥이 가라앉고 다시 볕이 나고 있었다. 창 너머론 빠르게 동쪽으로 몰려가는 먹구름이 보였다. 섣불리 전기 스위치를 올릴 마음은 들지 않았다. 자칫 방심하다 망가진 전기제품이 몇 개나 된다.

  잠시 어둑한 실내에서 기다리는 중 얼핏 매운 냄새가 풍겼다. 기침이 날 것 같은 자극적인 냄새는 동생과 내 집 사이 벽장문 틈새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두 집 사이 벽장 속엔 비상시 오갈 수 있는 숨은 문이 있다. 동생이 드디어 두부조림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빼놓았던 콘센트를 꽂아 냉장고를 가동시켰다. 우웅, 냉장고가 잠시의 휴면에서 깨어났다. 전등은 아직 켜지 않았다. 삐거덕 벽장문이 열리고 시뻘건 두부조림이 등장하기엔, 어둑한 배경이 적했다.



동생네 부엌.  두부조림을 만든 동생.
동생이 담아온 두부조림
동생이 교체해 준 전등 스위치
매거진의 이전글 마늘종 두부 김밥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