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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들렌 Dec 20. 2020

의지하던 게 버거워졌다

4편 2020-06-11


이번 상담에서는 선생님께 동영상 중독에 대해 물었다. 내가 뭔가 회피하고 싶은 감정이 생겼을 때, 이를테면 불안 같은. 그런 감정이 생겼을 때 동영상을 미친 듯이 본다. 예전엔 그게 내 불안을 덜어줬는데 지금은 그게 되려 스트레스를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어떤 순간에 안정을 주던 일이, 그게 부담으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고 하셨다. 

이 말을 듣고 정말 모든 건 변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도, 어떤 대상과의 관계도 말이다. 나한테 위로를 주던 대상이 부담이 되기도 하고. 그게 어쩌면 당연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나한테 어떤 의미야’, ‘이 물건은 나에게 특별해’, ‘그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아’같은 말들은 어쩌면 다소 어리석은 확언이라는 거. 그 말들은 다 변할테니까.      


변화를 받아들인다는 거, 모든 게 변한다는 걸 안다는 게 눈물이 날만큼 슬펐던 때가 있었다. 그게 베를린에서였나. 그때 나는 친구들이랑 보내는 시간이 퍽 즐거웠고, 절대적인 시간으로라도 특별한 사람이고 싶었던 것 같다.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이 바뀌면 우리 관계가 얄팍해질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근데 또 돌아와보니 마음은 달라진다. 내가 가졌던 그 감정도 달라졌다. 그리고 지금 이 공간에서 서로 나눌 수 있는 괜찮은 마음과 감정을 나누고 있다.  

    

변한다는 건 어쩌면 다행인 일이다. 모든 게 지나간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고. 그 말은 세상을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 사람과, 혹은 한 대상과의 역사가 그저 ‘이렇다’고 정의되기에는 납작하다. 

     

나는 이 생각이 들고 자연히 떠난 친구들이 떠올랐다. 그들과 ‘영원한 단짝, 소울메이트’같은 말을 쉽게 다짐했다. 그래서 조금 버거웠지만 그 관계를 지속시키려 했다. 버거울 땐 그만두는 건 어쩌면 단순한 일인데, 내가 참 그 일을 못했던 거 같다. 지키지 못할 약속들을 쉽게 해서일 수도 있고, 남들은 쉽게 어기고 외면하는 그 말들을 정언명령처럼 여겨서일 수도 있다. 


      

지금 2만큼 할 수 있을 때 2만큼만 감당하면 돼요.

소울메이트를 약속했던 친구를 떠나보냈다는 죄책감에 시달릴 때도 있었다. 내가 걜 챙겼어야 했는데 하면서. 그때 나는 그 관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감당할 만큼만 감당하라는 그 말이 위로가 됐다. 지금 내 삶에 감당 가능한 정도는 내가 정하는 거고, 그만큼만 감당하면 된다. 거기에 채찍질이나 자책보다는, 다정한 친구처럼 내 편이 돼서 ‘너 지금 괜찮아, 조금 천천히 가면 돼’라고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천천히 가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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