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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들렌 Dec 20. 2020

<우리는 심심함을 사랑해>라는 시집을 내야겠다

8편 2020 추석이후 


드디어 추석 이후로 처음으로 내게 심심함이라는 감정이 찾아왔다. 쉬면서도 늘 맘 한 구석탱이는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이건 내게 꽤 익숙하고 오래된 감정이고. 어쩌면 내 불면증의 원인일 수도 있고. 불안장애와 깊은 연관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오늘 하루 종일 심심해서 이거 저거 해봤다. 이거저거 해보는 힘은 심심함에서 나오는 구나! 심심함의 위대함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이 바로 이런 거구나. 근데 심심하려면 금방 포기해야 한다. 그러니까 억지로 하는 뭔가가 없다보면 심심해진다. 뭐든 금방 시들해지고, 나를 사로잡는 어떤 것이 필요하고, 여튼 뭐 그렇달까. 


분명한 건 이 심심함이 내가 회복하고 있다는 신호라는 거다.

          

엄마가 치는 우쿨렐레를 나도 쳐보려고 했다. 유튜브에 ‘우쿠렐레 기초’를 쳤고, 샴푸향 노래가 나왔다. 이거다 싶어서 열심히 조율을 했다. 코드를 따라 짚었고, 리듬을 배웠다. 졸라 어려웠다. 머리로는 코드랑 리듬을 이해했는데 손이 따라가질 못했다. 예술은 늘 내게 이런 식이다. 춤을 출 때도 머리로는 안무를 알겠는데 몸이 안 움직인다. 요가도 마찬가지다. 제기랄.      


여기서 나는 어떻게 했을까. 노래를 탓했다. 샴푸향 노래가 그리 좋지 않아서 배우고 싶은 의지가 안 생긴거야. 하면서. 예전부터 쳐보고 싶었던 기타 음악을 찾았다. 장범준의 ‘기다려주세요’를 이전부터 쳐보고 싶었다. 그걸 다 친다면 그 다음에는 엠마뉴엘이 친 ‘close to you'를 쳐보고 싶었다. 옆방에 있는 기타를 가져왔다. 먼지가 소복했다. 집에 물티슈가 없어서 대충 휴지에 물을 묻혀서 닦았다. 다시 '기타 조율법'을 쳐서 첫 줄을 맞추려고 애썼다. 우쿨렐레 조율법보다 어려웠다. 아니면 우쿨렐레용 조율기여서 안됐던 건가. 여튼 안돼서 포기했다.      

다시 우쿨렐레로 돌아왔다. 김사월의 ‘로맨스’ 배우는 강의가 있어서 흥미로워하면서 들어갔다. 노래를 듣고, ‘역시 재밌는 걸 배워야해’하면서 영상을 봤다. 튜토리얼 강의를 보니까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포기했다. 우쿨렐레를 갖다 놓으면서 엄마를 다시 한 번 존경했다. 엄마는 어떻게 이걸 직장 다니면서 취미로 배웠던 거지? 그녀의 끈기는 엄청나다.     


이런 류의 엄마 끈기는 난 안 닮은 것 같다. 초딩 때 피아노 학원을 다닐 때부터 한 두달만 지나면 ‘엄마 나 다른 피아노 학원 다닐래’하면서 학원 탓을 하면서 옮겨 다녔다. 피아노학원에서도 한 번치고 다섯 개 동그라미를 쳤다. 생각해보면 소리 다 들릴 텐데 선생님들이 얼마나 어이 없었을까. 피아노, 오카리나, 바이올린 등등 엄마는 어느 악기 하나 즐길 수 있는 재미를 주려고 했지만, 학원에서 무리지어 놀기만 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피아노 한 곡 뿐. 바이올린의 끽끽거리는 소리를 매우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역시 난 듣는 게 좋다.     

 

그 외에도 예체능 시험 프로젝트는 계속됐다. 발레, 한국무용, k-pop댄스까지 섭렵하면서 내가 춤에 아주 재미없어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여름에 발레를 시작해서 혼자 파란 발레복을 입었다는 얘기를 해줬다. 유림이는 발레가 싫었냐, 비즈공예가 싫었냐 물었다. 나는 비즈공예가 더 싫었다고 했다. 가만히 앉아서 손으로 하는 게 답답했다. 비즈를 실에 넣는 게 눈알이 빠질 것 같았다.      


그 중에 젤 잘 맞았던 건 서예랑 미술학원이었다. 글씨를 잘 쓰지도, 그림을 잘 그리지도 않지만 아무렇게나 해도 돼서 좋았다. 서예학원은 선생님이 나를 사랑해줘서 좋았다.  

    

적고보니 공부에 조금이라도 흥미를 느끼고 잘해서 다행이다.     


그럴 수 있다면 조금 더 심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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