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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ka Jul 06. 2021

바람이 분다.

바람이 운다.

바람이 분다.

창문을 두드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는 바람이

마치 흔들리는 자신을 알아봐 달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휘잉.

휘청거리는 바람을 붙잡아 줘야 하나.

바람에게 위로를 건네기에는 내 손에 여유가 없다.

대신, 그 손으로 바람이 들어올 틈을 막아본다.

손 틈새로 바람의 비명이 새어 나오는 것만 같다.

그 비명이 나의 가슴 한편에 박히자 나도 비명을 질러본다.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게, 나조차 망각해버리게.

그건 나의 비명이 아니라 바람이었을 거라 생각하며.



[어쩌면 바람이 아니라,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바람이 살갗을 훑고 지나간다.

바람이 가진 상처는 혈흔을 만들고, 멍을 새겼다.

그 아픔과 슬픔은 어느새 바람을 붙잡고 있는 이유가 되었다.

아, 내 몸은 어느새 바람의 부름에 이끌리고 있다.

어떤 곳으로 이끌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바람이 부리는 칼날을 한번 잡아본다.

고통과 쾌락, 나락 혹은 낙원.

과연 바래지는 것은 무엇일지.

이 바람의 끝에 어떤 날씨가 펼쳐져 있을지.



나는 창문을 열어젖히며 바람을 더욱 맞아본다.

거세게 바람에 부딪히며 숨을 죽여본다.

비극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기분을 느끼면, 오히려 더 위안을 느끼는 상황에 놓여본다.

바람을 맞아야 하는 것이, 운명이라면 나는 행복의 계단에 발 내딛지 않아도 되니까.

설령 손을 뻗어 닿을 거리에 행복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애써 눈을 돌려 거리감을 느끼면 그만이니까.

익숙한 불행에서 존재가 안녕하다고 위로하다 보면 보다 낯선 행복은 싫어할 명분이 생길 테니까.



바람은 그칠까.

아니면 그치는 것처럼 보일까.

바람의 뒤를 따라오던 빗방울이 귀에 슬픈 단어를 속삭인다.

복잡함과 미묘함.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바람의 등을 떠민다.

나는 신의 가락에 놀아나 세차게 흔들린다.

휘몰아치며 소용돌이치는 기류 중심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나는 얄궂은 바람 탓을 해본다.

바람은 그런 나를 감싸 안아준다.



시간이 흐르고.


바람이 그동안 터트리지 못했던, 참고 참았던 울음을 길게 내뱉는다.


바람이 운다.


바람은 내가 바랐던 것들을 싣고 왔다.

비와 해, 먹구름과 달.

비가 해를 지우고, 먹구름이 달을 삼켜도

바람은 분다.

그 사실에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위안을 느끼며 고마움을 베어 삼켜본다.

그러고는 차마 뱉지 못했던 숨을 바람에 실어본다.

바람이 분다는 것은 바람, 그대의 잘못이 아니기에, 스스로를 탓하지 마여라.

또는 바람 역시 많은 힘듦을 등에 지고 왔을 테니 조금은 쉬어도 괜찮다고.


그런, 바람의 위로.

숭고한 금빛의 띠가 둘러지는 듯한 환영이 일렁거린다.

은하수 아래로 떨어지는 쓰고 짠 물줄기가, 바람과 나를 연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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