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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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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옴 Aug 28. 2024

여행의 이유는 의외로

처음으로 나의 여행을 하게 되었던 때였을까. 여행을 좋아하게 된 게. 어릴 적 멋모르고 부모님 따라다닐 때도 았던 느낌만은 분명 남아 있으나, 나의 여행을 하면서 비로소 여행을 좋아한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긴장했던 나의 첫 여행, 그러니까 첫 '나의 여행'은 캐나다 어학연수 시절 밴쿠버 근교 빅토리아라는 도시였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나의 계획과 취향으로, 나의 예산으로 하는 '나의' 여행. 빅토리아는 캐나다 사람들이 은퇴 이후에 살고 싶어 하는 도시이자, 밴쿠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며, 그 이름이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딴 도시다.


해외에서 여행사를 지 않고 처음으로 일박 이일 짧은 여행을 하며 이것이 생각보다 별것 아닌 일임을 알았다. 그때가 여행이라는 나의 취향을 갖게 된 시작이리라 짐작한다.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더 많은  보고 사진으로는 알 수 없었던 공기의 냄새를 맡으며, 알 만한 명소가 아닌  도시의 길과 동네를 걸으며 참 설레기도 했다. 그리고 함께 간 친구와 어느 잔디밭에 앉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노을을 바라보며 스물 살의 나는 처음으로 생각한다. 엄마 아빠랑 같이 보고 싶다. 보여주고 싶다.



떨어져 살 만한 별다른 사건 없이 엄마 아빠, 동생과 을 살았지만 대학에 가서 가족과 떨어져 일 년을 산 후였다. 처음 떨어져 본 게 아니라는 거다. 사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보고 싶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보고 싶다, 라는 단어를 떠올려본 적이 없다는 게 적절하겠다. 나에게도 있던, 무 살 언저 누군가에게나 있을 법한 감당하지 못할 슬픈 순간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건 새벽이 있었지만, 보고 싶을 만큼 감당하지 못할 황홀한 순간 아직 오지 않아서였을까. 가슴 벅찬 빅토리아 항구의 하늘을 그렇게도 보여주고 싶어졌더랬다.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가족에게 받은 고통, 내가 그들에게 주었거나, 그들로부터 들은 뼈아픈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집 구석구석에 묻어 있다. 집은 안식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상처의 쇼윈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족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을 다룬 소설들은 어김없이 그들이 오래 살아온 집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에서 데이비드 실즈는 이렇게 말한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여행을 하지 않으면 누가 잡아가기라도 하는 것마냥 사람들앞다퉈 여행을 한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지만, 모르긴 해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만큼이나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역시 많을 .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여행을 갈구한다는 건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기 때문이 아니냐고. 글쎄, 그런 순간에도 여행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기는 하다.


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에서 작가는 말한다.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기에 사람들은 호텔을 찾는다. 통과 뼈아픈 말이 아니더라도 집에는 쌓인 그릇과 굴러다니는 먼지 같은 할일이 있다. 공감하면서 읽었으므로 여행이 상처든 현실이든 그것으로부터의 도피와 영 떨어져 있는 거라곤 할 수 없겠다. 그러나 피하는 것 때로 현명한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으므로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일상이 더 소중해진다. 유 힘들었네 역시 집이 제일 좋아, 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행복했고, 또 한번 힘내보자, 같은 것이다. 그러고 나면 무뎠던 삶의 순간들이 숨쉬고 있는 걸 발견한다. 기에도 이런 예쁜 꽃이 펴 있었나, 이 동네 공기가 원래 이렇게 따수웠나, 우리 집 근처 카페 커피가 이렇게 맛있었나. 여행 끝에 비로소 일상도 여행처럼 살고 있는 나를 마주한다.


블로그를 운영하는데, 여행과 일상 포스팅은 게시판으로 구분한다. 주말에 다녀온 동네를 포스팅하려니 여행인지 일상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일상 게시판 이름이 '일상이 여행'이 됐다. 정말로 필운동 여행, 해방촌 여행, 전포동 여행을 하고 있는 게 맞으니까. 낯선 물로 세수를 돌아오면 우리 집 물이 어떤 냄새인지 알게 된다.


그러니까 여행은, 내 사람을 더 사랑하는 일이자 일상을 더 소중해할 기회이며, 보통의 삶에서 생경함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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