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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명 Mar 08. 2018

어머니와 누이들

이재명과 함께 웃고 울었던 어머니와 누이들의 이야기

나의 소년공 다이어리 06화│어머니와 누이들│©안다연



유교적 전통을 중시하는 안동 출신의 아버지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많은 제사를 빠트리지 않고 챙기셨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맘껏 먹을 수 있는 제삿날이 기다려지기도 했지만, 일은 일대로 하면서 제사 준비까지 해야만 하는 어머니 생각에 마음 한 켠에 미안함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재순이 누나와 여동생 재옥이는 어머니를 도와 제사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여 준비한 어머니와 누나, 재옥이는 정작 제사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무뚝뚝한 아버지에게 시집와 고생만 하던 어머니는 가끔 팔고 남은 술을 드시며 넋두리를 하시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를 힘들게 하는 아버지가 미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도 같은 생각일 줄로만 알았습니다. 어느 날 나도 모르게 그 생각을 내뱉었는데 어머니는 오히려 그런 내게 화가 나신 기색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게는 남편과 아들 모두 사랑하는 가족이었음을 그 순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이재명과 어머니



어머니는 일과 살림을 병행하느라 항상 바쁘심에도 우리 다섯 남매에게 소홀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밤늦게 돌아오면 어머니가 늘 따뜻한 밥을 차려주셨습니다. 형의 생일날, 아침에 식은 밥을 먹여 보냈다고 내내 안쓰러워하실 정도였지요. 내가 팔을 다쳤을 때는 한 손에는 도시락을, 한 손에는 내 손을 꼭 잡은 채 매일같이 공장에 데려다 주셨습니다. 크게 쪼들렸던 살림에도 한 푼 두 푼 쌈짓돈을 모아 시집간 누나 생일에 새 신발을 마련해주시던 어머니였습니다.


누나 생일인데도 뭣 하나 해주지 못했다. 엄마는 신발 하나 사줬단다. 그것 때문에 또 아버지하고 싸웠다. 
1980-05-08

대입 검정고시 원서에 쓸 도장을 파라며 아껴둔 비상금 천 원을 내어주신 분도 어머니였습니다. 차마 그 귀한 돈을 쓸 수가 없어 이름이 비슷한 재영이 형 도장을 살짝 고쳐서 썼습니다.


1980-03-06│이재명의 일기



누나는 한 동네 살던 매형과 결혼하여 우리 집 근처에 살림을 차렸습니다. 뒷간과 처가는 멀어야 좋다고들 하는데 마음씨 좋은 매형은 우리 식구 한 가족처럼 여기며 지냈습니다. 누나 집은 나에게 피난처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잔소리 때문에 분위기가 삭막한 우리 집과는 달리, 누나 집에는 우리 집엔 없는 따뜻함이 있었습니다.


1982-02-25│이재명의 일기


매형은 누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착한 사람이었지만 돈벌이에는 영 소질이 없었습니다. 생활비를 위해 결혼반지를 팔아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매형은 일자리를 찾아 머나먼 사우디아라비아까지 떠났습니다.


부부가 헤어져 살자니 고생이 얼마나 심하겠는가. 어쨌든 매형도 빨리 자리를 잡아서 아이들 교육 시키고 편히 살아야할 텐데.
1982-02-16


다른 사람들은 중동에 가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데 우리 매형은 오래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금슬 좋은 누나 부부에게 곧 셋째가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온 가족이 모인 셋째 조카 장호의 백일잔치 날, 누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내색 없이 꾹꾹 눌러왔던 고됨과 설움이 누나의 고운 두 뺨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1985-10-18│이재명의 일기


세상 사는 것이 그렇게 어렵고 서러운 일임을 누나 가족의 생활을 통해 알게 되었다.
1985-10-18




여동생 재옥이는 상대원시장 화장실에서 요금 받는 어머니 일을 도우며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아버지는 갓 졸업한 재옥이에게 버스 안내양이 되기를 권했으나 재옥이는 죽어도 싫다며 스스로 공장에 들어갔습니다. 하루는 버스에서 기사와 승객에게 욕을 듣고 울고 있는 안내양을 봤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재옥이가 그런 일을 당하는 상상을 하니 아찔해졌습니다. 


1982-03-09│이재명의 일기


나중에 학교 갈 생각도 해야 하니 회사는 제대로 되어 먹은 회사에 다녀야 한다. 
1982-02-17     

                            

이재명의 가족사진│뒷줄 오른쪽부터 누나(재순)와 어머니, 앞줄 가운데가 여동생(재옥)



어머니와 누이들의 삶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 일인지를 깨우쳤습니다. 세상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성의 삶은 유독 더디게 변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바꿔야 할 우리들의 숙제입니다.




7화  <차렷을 못하는 건 내 탓이야>에서는 공업용 기계에 다쳐 팔이 굽게 된 이재명의 일기장 속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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