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을 넘어선 시간, 파키스탄 국경과 맞닿은 인도 자이살메르의 기차역. 잔뜩 긴장한 얼굴로 기차에서 내린다. 짧은 휴가, 꾸역꾸역 구겨 넣은 일정 탓에 주어진 선택지도 별로 없었고, 그나마 겨우 구한 기차표는 자정을 살짝 넘긴 시간에야 나를 목적지에 내려주었다. 숙소에 픽업 서비스를 신청해 놓긴 했지만, 기차가 연착되는 바람에 약속한 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게 도착해버렸다. 난 어디로 어떻게 가야 되는 걸까.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온 몸에 힘을 주고, 눈을 똥그랗게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난생 처음와 본 낯선 도시, 불빛도 거의 없이 어두워져 버린 시각, 어차피 마중 나오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왔는지 안 왔는지도 모르는 내 입장에선 아무리 눈을 크게 뜬들 소용이 있을 턱이 없다. 다행히 픽업 나온 사람이 나를 먼저 알아봤는데, 기차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 중 동양인은 아마도 나뿐이었던 듯. 역시 믿을 건 몸뚱아리 뿐인건가. 어쨌든 살았다.
인도 기차는 연착되는 게 일상이라 픽업 나오는 사람도 도착시간을 사전에 확인해본다고 한다. 다시 한 번 다행이다.
인도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으로 첫 번째로 왔을 때 북인도의 유명한 곳은 돌아봤던 터라, 이번 여행으로 고른 곳은 라자스탄 지역이었다. 지역적 특성 어쩌고는 다 필요 없고, 사막에서 1박하는 낙타 사파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정해진거나 다름 없었다. 겁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 있지만, 내 ‘궁금함’은 대부분의 경우 ‘겁’을 이기기 때문에 흔하지 않는 ‘사막에서의 1박’이라는 유혹을 떨칠 수가 없었다. 사막에서 1박을 한다는데, 뭐가 더 필요한가…라고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 날 오전 자이살메르 성과 동네를 잠시 둘러보고 오후에 사막으로 출발했다. 함께 떠나는 일행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한 시간 가량 차로 이동했다. 그곳에서부터는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이동하는 것.
낙타를 타고 그다지 빠르지 않은 속도로 약 1시간 반 가량을 갔을 때 길잡이들은 멈춰섰고, 그곳이 우리가 오늘 캠핑을 할 곳이라고 말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뭐가 더 필요한가…’라고 생각한 건 사실이지만, 정말 이렇게 아무것도 없을거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다. 아니 내 부끄러운 상상력으로는 그렇게까지 생각이 미칠 수가 없었다. 설마 관광객이 가는 곳인데 돈 주고 뭐라도 살 수 있게 해놨겠지… 라고 내심 생각했기 때문에 내 작은 가방 안에는 밤에 추울 수 있다는 말에 챙겨온 외투와 아무짝에도 쓸모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지갑이 전부였다.
횡한 사막에 떨어져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길잡이들이 나뭇가지로 불을 붙여 짜이티를 만들어주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주방시설은 없고, 흔한 버너 따위도 없다는 것. 어쩐지 모래가 씹히는 듯한 짜이티를 바람부는 사막에서 마시고 있자니, 세상에서 굉장히 멀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분명 그런 것을 바라고 온 것이었는데, 그런 느낌이 듦과 동시에 지극히 평범하고 세속적인 고민이 시작됐다.
“지금부터 내일 아침에 나갈 때까지 뭐하지?”
한여름은 아니었지만 해가지지 않은 사막은 더웠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꼬마아이는 보따리에서 시원한 맥주, 음료수, 감자칩 등을 내어놓았다. 뜨거운 날씨에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우리 일행은 너나 할 것 없이 맥주 한 병씩 집어 들었다. 우리의 세상에서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돈이지만, 이곳에서 살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아이가 한번에 짊어지고 올 수 있을 정도의 마실 것 뿐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마실 수 있는 마지막 ‘시원한 것’ 인가…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아이가 말했다. 지금 자신에게 주문을 하면 다시 걸어가서 시원한 맥주를 가지고 저녁 식사 시간 즈음에 오겠노라고, 단 주문한 것 만큼 만 가지고 올 것이라고. 우리 모두는 주문을 했고, 아이는 어딘가로 가버렸다. 누군가의 자유로운 여행을 위해, 누군가는 세상 속에서 열심히 일해야 하는 모습이, 어차피 싫다고 말하지도 못할거면서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사방이 뚫린 사막을 돌아다니며 해지는 모습을 구경하고, 셀카부터 단체샷까지 찍어대고, 중간 중간 시계를 보며, 앞으로 뭐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우리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가만히 앉아 명상을 한다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거나 하는 것이 사막과 더 어울리는 액티비티였을 지 모르겠지만, ‘가만히 있기’는 우리에게 장착되어 있지 않은 듯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어스름이 깔리고, 해는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지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지평선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닌데다, 그 너머로 지는 해는 평생에 본 기억이 없는 듯 했다. 나는 조용히앉아 점점 어두워져 가는 하늘과, 마지막 빛을 발하고 있는 검붉은 해, 지평선을 따라 흐르며 은은하게 빛나는 노을, 그리고 저 멀리서 노을을 가로지르며 걷고 있는 검은 낙타 무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사진으로만 보던 사막의 저녁이 눈앞에 나타난 순간이었다.
해가 지는 순간 온 사방이 깜깜해질 것이라고 기대한 것은 나만은 아니었나 보다. 해가 사라졌지만 여전히 밝은 주위에, 숨죽이며 일몰을 바라보던 우리모두는 약간 당황하고, 당황한 자신들에 대해 다소 황당해하며 나름 베이스캠프라며 자리를 깔아 놓은 곳으로 돌아왔다.
길잡이들은 정통 인도식의 저녁을 준비해주었는데, 밥과 카레, 그리고 난을역시나 나무로 지핀 불 위에서 만들어 주었다. 저녁이 담긴 접시를 받아들었을 때, 우리는 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길잡이들은 준 것은 식사가 담긴 ‘접시’뿐이었기 때문. 인도인들이 손으로 식사를 하는 것은 놀라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식당에는 대부분 수저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손으로하는 식사를 실제로 체험할 기회는 아무리 인도에서라 해도 그다지 많지 않다. 난을 손으로 뜯어 먹는 것 정도는 우리도 익숙하지만, 밥이랑 카레를 손으로 먹는 것은 개인의 취향과는 별개로 ‘기술 부족’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것이 준비 된 세상에서라면 투정이라도 하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의 단 하나의 룰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을 불평 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난을 숟가락 삼아 대충 떠 먹기도, 주워 먹기도, 마시기도 하면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니 주변은 어둑해지고, 하늘에 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하는 사이 길잡이들은 설거지를 했다. 수도시설이 없는 사막에서 어떻게 설거지를 할까. 그 비밀은 모래, 모래가 물이면서 동시에 세제였다. 모래로 접시에 묻은 음식물과 물기가 사라질 때까지 문질러 닦아낸 후 털어내면 끝. 생각해보면 꽤나 괜찮은 방법으로 깨끗하게 닦일 것 같긴 한데, 오늘 내내 모래가 씹힌 것 같다고 느낀 것은, 그저 느낌적인 느낌이나, 바람에 날린 모래 때문이 아니라, 그릇에 남은 모래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뭐 어느 쪽이든 내가 어쩌겠는가, 받아들임, 그것이 사막이 알려주는 삶의 방식이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치킨 바비큐를 해주었는데, 닭다리와 감자를 호일에 싸서 장작불 속에 넣어 놓는 것이 전부였다. 이미 주위는 어두워졌기 때문에 제대로 익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방법도 딱히 없어서 그저 적당히 기다리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라고 의견이 모여졌을 때 꺼내서 먹기 시작했다. 맥주 파는 꼬마가 다시 짊어지고 온 시원한 맥주에 탄 것 같기도 하고, 덜 익은 것 같기도 하고, 모래가 씹히는 것 같기도 하는 닭다리를 안주 삼아 먹으며 오늘 처음 만난 일행들과, 여행에 대해, 살아온 삶에 대해, 그리고 아무도 알 수 없는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아마도 만나기 힘들 사람들과 어쩌면 그래서 더 편안했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어서 길고 지루할 것 만 같았던 사막에서의 하루가, 얼추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사막에서의 마지막 관문,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는 사막을 진심으로 경험하는 순간, 잠들기 전 해결할 일이 있었다. 낮에는 더운 날씨로 땀을 많이 흘려서 괜찮았다지만, 이미 쌀쌀해진 밤에 맥주와 음료수를 마셔버린 우리는 볼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사막에서 도시에서와 같은 화장실 ‘시설’을 기대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볼일을 볼 정해진 ‘장소’ 같은 것도 없었다. 그냥 적당한 곳에 가서 스스로 처리하는 것이 사막에서 살아가는 방법. 같은 고민을 하던, 오늘 처음 만난 여자 세 명은 일행들이 잠자리를 정리하는 사이 적당한 곳으로 함께 걸어가, 랜턴을 끄고 황량한 사막에서 사이 좋게(?) 볼일을 해결했다. 자정을 넘긴 시간의 사막은 그야말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은 어둠인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뻘쭘하고도 웃긴 경험을, 아마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들과 공유했다는 사실이 한참 동안을 혼자서 웃게 만들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일행 중의 한 남자분은 그 뻘쭘한 경험을 피하고자 모두 잠든 사이에 혼자 볼일을 보러 갔는데,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었다고 한다. 밤이 되면 사막에는 어둠 밖에 남지 않는다. 어디에도 불빛이 없기 때문에 방향감각도 없어져, 설령 내가 손전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것. 그래서 바다의 등대처럼 돌아올 곳에 불을 켜 놓고 이동해야 한다고 한다. 혼자 근심을 푸는 여정을 떠났던 그가 그런 생각을 했을 리 만무하고, 덕분에 야간 산책을 고되게 했다고.
우리의 잠자리는 사막의 모래 위였다. 모래 위에 이불을 깔고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말 그대로 ‘밖’에서 자는 것이었기 때문인지 피곤했지만 깊이 잠들지 못하고 몇 번이나 눈이 떠졌다. 그리고 그때마다 눈 앞에는 쏟아질듯한 별들이 가득했다. 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갈수록 이미 어두운 하늘은 점점 더 진한 검정색으로 변해갔고, 별들은 더 반짝였다. 카메라로는 담을 수 없는 깜깜한 하늘 속 반짝이는 별들을졸린 눈에 담으며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어쩐지 오늘 봤던 것 중 가장 까만 하늘이라고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 다시 떴을 때, 저 멀리서는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짜이티 한 잔과 간단한 아침을 먹고 다시 낙타에 올랐다. 우리를 사막으로 인도했던 낙타는 다시 우리를 세상으로 데려다 주고는 무심하게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어느새 에어컨이 나오는 차에 오른 우리는, 이제 모든 것이 다 있는 세상으로 간다. 그저 스쳐가는 여행객으로서의 하루에서 얼마나 대단한 경험을 하겠냐마는, 만 하루 동안을 양치하지 못해 입안에 가득한 입냄새와 용기 내어 직접 온 사람에게만 허락하는 어떤 것을 안고 자이살메르 시내로 돌아왔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낯설고 두려웠던 곳, 이제는 거기에 안식처가 있는 것 마냥, 나는 ‘돌아왔다’. 낯선 곳에서 조금 덜 낯선 곳으로 오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안심을 하면서도 언제나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꿈꾸는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애써 답을 찾지는 않을 질문을 떠올리며, 그리웠던 시원한 얼음물 한 잔을 들이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