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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마뱀마법사 Jun 18. 2018

세상에 없는 이들을 만나러 간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구 시가지 산텔모 지구. 작은 골목 양쪽에 줄지어 늘어선 아기자기한 상점들, 역사가 묻어나는 오래된 건물, 테라스가 있는 낡은 식당, 일요일이면 들어서는 골동품 마켓, 거리의 악사들, 세련되진 않지만 그래서 더 멋스러운 좁은 탱고바, 그리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랑하는 울퉁불퉁한 돌길까지. 나를 설레게하는 모든 형용사들이 다 들어있는 ‘구 시가지’. 그래서 아르헨티나의 첫 숙소는 산텔모 지구로 정했다. 12 시간을 날아 런던에 도착해서, 약 13시간 이 넘는 시간을 트렌짓 하며 런던의 거리를 헤맨 후, 다시 14시간을 넘는 시간을 비행한 후에야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대략 40시간 동안을 제대로 누워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눕기만 못한 게 아니다. 세수도 못하고, 머리도 못 감고, 피곤에 쩔고 냄새나는 상태가 되어서야 내 생애 최초로 남미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숙소까지 어떻게 이동할까 살피던 중 공항과 시내를 오가는 셔틀이 숙소 근처까지 가는 것 같아서 경비도 절약할 겸 택시 대신 공항 셔틀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것이 내 여행을 고단하게 만드는, 혹은 흥미롭게 만드는 시작이 아니었을까. 


 구글맵으로 확인했을 때 셔틀의 산텔모 정류장에서 숙소까지의 거리는 대략 100m 남짓. 그리 멀지 않은 길이라 생각했는데, 버스에서 내린 내 눈앞에 펼쳐진 100m의 거리는 고개가 절로 따라 올라가게 만드는 오르막이었다. 그리고 그 오르막은 산텔모 지구를 새삼 느끼게 해주는 멋들어진 돌길이었다. 보기에는 멋지지만, 캐리어를 끌고 가야 하는 나에게는 큰 숨 한 번 쉬게 만드는 오르막 돌길. 게다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은 정말로 일요 마켓이 열리는 ‘장’날이었다. 거기다 부슬부슬 내리던 빗방울이 점차 굵어지고 있어 이제 막 문을 연 노점의 주인들과, 이른 구경에 나선 관광객들 모두 정신 없이 번잡한 모습이었다.  


느긋하게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빼서 휴대폰이 있던 가디건 주머니에 넣었다. 휴대폰을 배낭에 넣을까 잠깐 고민했지만 아르헨티나에는 소매치기가 많다고 하니 몸이랑 가까운 주머니가 나은 듯 해서 주머니 깊숙이 넣는 것을 선택했다. 등에는 배낭을 메고 한 손에는 우산을, 또 한 손에는 캐리어를 끌며 비를 헤치고 사람들을 가르며 오르막을 올라갔다. 몇 걸음 걷다가 캐리어를 쥐고 있는 팔로 주머니 속 휴대폰의 안전을 확인했다. 그렇게 몇 번인가 확인하고 무심코 주머니를 내려다 봤을 때 주머니 위로, 삐쭉 솟아있는 이어폰 잭이 눈에 들어왔다.  


응? 

휴대폰에 꽂혀 있어야 할 잭이 왜?, 아니 어떻게 주머니 밖으로 나와있을 수 있을까? 

응??? 

걸음을 멈추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 때, 손에 잡히는 건 이어폰 뿐이었다. 휴대폰이 사라졌다. 


아… 이것이 남미에서의 첫 경험. 


먼 길을 날아 온 아르헨티나에서, 내가 처음으로 한 일은 소매치기를 당하는 일이었다. 

아… 아… 아... 

아… 아… 아… 

기술도 좋다. 

아쉬운 맘에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울퉁불퉁한 돌길을 왔다갔다 해봤지만 감쪽같이 이어폰만 빼고 휴대폰을 가져가버린 이가 그걸 다시 바닥에 놓고 갈리는 만무했다. 약정도 끝나지 않은 휴대폰 생각에 속이 쓰린 건 차치하더라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행의 필수품은 구글맵이 있는 핸드폰과 인터넷이 가능한 핸드폰 그리고 카메라가 담긴 핸드폰이 아니던가. 시작도 하지 않은 나의 여행은 어떻게 될까. 사라진 휴대폰은 내 머릿속에 남아 속상함과 걱정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숙소를 나서는 내 손에는 언제 잡아봤었는 지도 기억나지 않는 종이 지도가 들려있었다. 이번 여행의 컨셉트는 전혀 의도치 않게 아날로그 여행으로 정해졌다. 


혼자 여행을 할 때는 대략적으로 방문할 도시만 정해놓고 출발하는 편이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특별히 갈 곳을 정해놓지는 않았다. 숙소에서 대충 훑어봤을 때 눈에 들어온 몇 군데를 목적지로 정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오페라 하우스 ‘콜론 극장’이었다. 호텔에서 구한 지도에는 관광지가 표시 돼 있었는데, 준비 없이 떠난 게으른 여행객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정보들이었다. 산텔모 숙소를 나와 대통령 궁인 카사 로사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랜드마크 오벨리스크, 5월 광장, 그리고 콜론 극장까지를 오전에 걸어서 둘러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으면 자동으로 내 위치를 파악해서 올바른 방향을 잡아주는 구글맵과는 달리 종이 지도는 모든 것을 수동으로 해야 했다. 주변 건물들과 도로이름을 비교하며 내가 직접 지도를 이리저리 돌려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잘 모를 때는, 말도 통하지 않는 이들에게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그 지도를 들고 물어야 했고, 그러면 지도가 익숙치 않은 현지인들도 그 생경한 물건을 들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결국에는 옳은 방향으로 안내해주었다. 목적지만 찍으면 가장 빠른 길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구글맵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여행을 하고 있자니 우습기도하고, 굉장한 여행가라도 된 듯 들떠서 다니게 됐다. 오전 미션을 무사히 마치고 내가 향한 곳은 레콜레타 묘지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찾아야 하는 곳을 꼽으라면 늘 첫번째로 이름을 올리는 곳, 레콜레타 묘지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공동묘지라는 것 정도였다. 오전 내내 걸어 다소 피곤해진 나는, 묘지에 뭐 그리 대단히 볼 게 있을까 싶어 얼른 보고 근처에서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도착한 곳에는 내가 생각하는 비석만 가득한 묘지가 아니라 아기자기한 마을이 있었다. 1822년 수도승들이 채소를 기르는 정원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첫번째 공동묘지로 만들면서 유명인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안치됐는데, 가족의 뜻인지, 죽은이의 뜻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모셨다. 때문에 이곳은 정형화된 공동묘지가 아니라 마치 하나의 마을이 있는 듯 관을 안치해둔 하나하나의 묘가 마치 집처럼, 이웃처럼 이어져 있다. 문과 지붕과 벽이 있어 하나하나가 완벽한 건물의 형태를 띄고 있고, 그 건물들 사이사이로 좁은 골목들이 나 있었다. 건물은 심플하고 모던한 것부터 화려하고 클래식한 것까지 당장이라도 누군가가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떤 곳은 창문이 깨져있고, 어떤 곳인 문이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또 어떤 곳은 지은지 얼마 안 된 듯 보이기도 했는데, 각양 각색으로 꾸며진 건물들만큼 방문객의 발걸음이 닿은 흔적도 다르게 남아있었다. 유리문을 통해 내부에 실제로 위치하는 관도 볼 수 있었다. 관이 하나 들어선 곳도 있고, 여러 개의 관이 함께 있기도 했고, 관이 없는 곳도 했다. 아마도 이것 또한 각자의 사정 때문이리라.  


이곳에 있는 묘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단연 에비타의 묘이다. 아르헨티나의 어머니라고도 불리는 에비타의 묘라고 해서 상당히 기대를 하고 갔는데, 골목 골목을 헤매다 찾은 그녀의 묘는 조금 의외였다. 줄지어선 묘소 중 하나로 이웃과 나란히 서 있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묘소였다. 방문객들이 두고 간 꽃들이 많다는 것뿐, 그곳에 에비타의 묘가 있다는 걸 알고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지나쳐버릴 듯, 어느 이름없는 묘 중의 하나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때문에 레콜레타 골목 중간중간에 에비타 묘소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었지만 우리 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근처의 골목들을 돌며 헤매고 있었다.  


후에 안 사실은 에비타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는 것이다. 빈민층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마치 드라마처럼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후안 페론과 결혼하고, 그 후 노동자와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펼쳐 아르헨티나의 국모, 성녀로 추앙 받으며 지금까지도 아르헨티나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한 편에선 어린 나이에, 그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후안 페론과 결혼한 저의를 의심한다거나, 무리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아르헨티나를 몰락으로 이끌었다는 평도 있다.  


어떤 이유로 그녀의 묘가 소박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특별할 것 없이 레꼴레타의 한 곳에 다른 묘들과 함께한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문객들이 꽂아 놓은 꽃들이 아직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면 그녀의 진정성과는 상관없이, 타인이 생각하는 그녀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현실 세계를 떠난다는 것이지만,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남아있게 된다. 사람의 죽음이 안타까운 이유는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슨 짓을 해도 떠난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기 때문인데, 그러한 이유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떠난 사람을 어떻게든 현실 세계에 붙잡아 두고 싶어한다. 그곳이 바로 레꼴레타 묘지가 아닐까. 에비타를 비롯한 세상을 떠난 이들이 정말로 이곳에서 각자의 ‘집’에 머물지, 혹은 가끔 이곳을 찾는 지, 그것도 아니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만 남아 있을지는 아직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어느 것이 되었든 이곳은 남은 사람들이 떠난 이를 만나러 오는 마을이다. 그리하여 이곳은 세상에 없는 이들을 위한 마을이자, 세상에 남은 이들을 위로하는 마을이다. 나는 이곳에 살고 있는, 혹은 살고 있을 그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이 골목 저 골목을 오랫동안 거닐었던 건, 그 위로의 힘 때문은 아니었을까. 


현실 세계에서 흔하디 흔한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죄로, 아날로그 여행을 시작했던 나는 이곳에서 세상에 없는 이들을 만났다. 세상에 없지만 사라지지 않은 이들이 살아남은 이들을 위로하듯이, 사라졌지만 세상 어느 곳에 있을 내 스마트폰은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고 있겠지. 잃어버린 순간부터 아침에 길을 나설때까지 머릿속을 꽉 채웠던 걱정과 속상함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내가 중요하다고 믿는 것 중의 거의 모든 것, 나 자신 조차도 언젠가는 없어져버릴 것이라는 것, 그럼에도 남은 것들은 없어져 버린 것에서 위안을 얻을 것이라는 아이러니를 어렴풋이 배워간다. 휴대폰을 잃어버렸건, 잃어버리지 않았건 난 이곳에 왔겠지만, 종이지도를 들고 온 내가 이곳과 조금 더 어울리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건 지나친 자기 위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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