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돌아가신 우리 아빠는 꽤 오래 지병을 앓으셨다. 운동 신경이 점점 줄어드는 병으로 증상은 계속 나빠질 수 밖에 없는 병이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이번에 마지막일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이곳 저곳을 제법 많이 다녔다. 병이 어느정도 진행됐을 무렵 나는 더 지나면 해외로 나가는 건 생각지도 못할 거란 생각에 가족 해외 여행 계획을 세웠다.
너무 오래 비행기를 타는 건 아빠는 물론 우리에게도 힘들 것 같았다. 너무 많이 걸어다녀야 하는 관광지도 힘들 것이다. 이런 저런 고민 끝에 가족 여행객들이 많이 가고, 휴양과 관광을 함께 할 수 있는 괌을 목적지로 정했다. 일정은 너무 빡빡하면 안되겠지만, 호텔 수영장만 보고 오는 여행은 하고 싶지 않았다. 적당히 구경도 하고 엑티비티도 할 수 있는 일정을 짜고 싶었다.
그러던 중 요트를 타고 나가 돌고래를 구경할 수 있는 일종의 괌 시그니쳐 상품이 있는 것을 알았다. 바다 위로 뛰어 오르는 돌고래를 다 같이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긴한데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아빠가 요트를 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상품을 진행하는 업체에 확인차 연락을 했다. 내가 휠체어를 탄 사람이 요트에 올라탈 수 있냐고 묻자 그는 주저 없이 그렇다고 답했다. 아마도 배에 올라탈 때처럼 선착장과 요트 사이에 다리를 놔주나보다라고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예약을했다.
그 밖에도 아빠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긴 조사와 확인을 거친 후에야 우리는 무사히 괌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관광 및 몇가지 엑티비티를 하면서 며칠을 보내고 대망의 돌고래를 만나는 날이 되었다. 우리는 약속장소로 나갔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요트로 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요트만 덩그러니 바다 위에 떠 있을 뿐 선착장과 요트 사이에는 나무 판자 하나도 없었다. 너무 당황스럽고 화가난 나는 그 마음을 감추지도 않고 직원에게 쏟아냈다. 휠체어 타고 갈 수 있다고해서 예약을 한건데 이게 어떻게 된거냐고. 그런데 휠체어에 앉은 아빠를 본 직원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른 직원들을 불렀다. 그들은 요트에서 내려오더니 당황하거나 놀라는 기색이 전혀 없이 늘 하는 일이라는 듯 아빠를 등에 업고 휠체어는 접어서 들고 요트에 올랐다. 나는 잠깐을 정신 나간채로 있다가 아빠를 따라 요트에 올랐다.
내가 놀랐던 것은 아빠를 업고 요트에 태웠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는 장치가 아무것도 없음에도 내가 휠체어 탑승 여부를 확인했을 때, 고민도 하지 않고 가능하다고 말하는 직원의 태도와, 휠체어에 앉아있는 아빠를 본 그들이 잠깐의 주저함도 없이 아빠에게 다가와 업어서 요트에 태우는 모습, 그 ‘거리낌 없음’이었다. 그들은 장애인에 대해 전혀 불편해하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는 다운증후군을 앓는 캐릭터가 나온다. 다운증후군을 처음본 남자 주인공은 제법 놀랐고, 놀란 그의 모습으로 인해 속상한 마음을 화내는 걸로 표현하는 여자 주인공에게 남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희 누나 보고 놀랬어. 근데 난 그럴 수 있죠. 다운증후군을 처음 보는데… 그럴 수 있죠. 놀랠 수 있죠. 그게 잘못됐다면 미안해요. 그런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교, 집, 어디에서도 배운적이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게 맞는지 몰랐다구요.”
그랬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을 잘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밖으로 나오기까지는 엄청난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연히 장애인을 보게되면 놀라고, 그 놀라는 모습에 장애인들과 그의 가족들은 상처를 받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또다시 숨게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장애인을 차별하면 안된다, 장애인을 특별하게 생각하면 안된다라고 입으로 말한들 이것은 별로 힘이 없다. 우리가 ‘거리낌 없음’을 태도에서 보여줄 수 없는 이유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날의 돌고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치의 주저함도, 불편한 기색도 없이 아빠를 대했던 그 직원들의 태도를 15년이나 더 지난 오늘까지도 잊지 못한다.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고, 다른 시선으로 보지 않기 위해서는 자주 만나고 자주 함께하는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장애인들에게 준비 안된 세상으로 나와서 그 상처를 고스란히 받으라는 폭력을 행할 수도 없다.
싱가포르 집 앞 공원에 산책을 갔다.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공원이었다. 공원 중간 중간에는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돌로 만든 튼튼한 벤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벤치 바로 옆에는 바닥에 휠체어 모양의 마크가 그려진 빈 공간이 있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나란히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장소만을 마련해두어서 함께 온 비 장애인은 어정쩡하게 서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벤치만 마련해두어서 휠체어를 애매하게 벤치 앞에 세워야하는 것도 아니고 이들이 함께 나란히 앉을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 둔 것이다.
함께한다는 건 이런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가 어색하게 머무르는 배려를 억지로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함께 편하게 있는 것. 이것이 가능할 때 우리는 서로 거리낌이 없어질 수 있다.
집 앞 산책을 할 때마다 나는 벤치들을 한번씩 바라본다. 가끔은 누군가가 앉아있고 가끔은 비어있지만 그곳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런 고민, 이런 생각, 이런 아이디어와 그렇게 만들어진 이 공간에 감사하다. 지금껏 내가 만나보지 못한 장애, 익숙하지 않아서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 지 모르는 장애가 여전히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을 만났을 때 거리낌 없을 수 있도록 공원 속 벤치를 보면서 그들과 나란히 있는 연습을 마음으로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