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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마뱀마법사 Feb 03. 2023

없는 것이 많은 섬

   싱가포르에서 페리를 타고 한시간을 가면 인도네시아 바탐에 도착한다. 거기서 차를 타고 한시간 반 가량을 달려 작은 항에 도착, 그리고 다시 작은 보트를 타고 삼십분쯤 가면 드디어 도착할 수 있는 섬, 바로 라노섬이다. 이 섬은 가는 길이 멀어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내가 특별히 아끼는 섬이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없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처음 이 섬을 알게 된 것은 싱가포르에 있는 한국 여행사에 근무하는 친구의 소개였다. 그는 인도네시아에 작은 무인도가 있다고 라노섬을 소개했고, 그의 주선으로 몇몇 친구들과 함께 그곳으로 주말 여행을 가게 됐다. 당시만해도 그 섬의 숙소라고는 게스트하우스처럼 벙커베드가 있는 방이 몇개 있었고, 섬 중앙에 글램핑을 할 수 있는 텐트가 쳐져 있었다. 우리는 글램핑 텐트를 예약했는데 당연하게도 텐트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이 섬을 들어오기위해서는 작은 보트를 타야 하는데 이 보트는 라노섬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이 운행할 뿐이었다. 그러니 섬에 일단 들어오면 이 두 편의 배를 제외하고서는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작은 섬이었기 때문에 음식을 손님수에 맞춰 육지에서 공수해서 온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점심, 저녁 아침을 주는대로 먹어야 한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골라서 먹는 선택권따위는 없다. 그렇지만 제공해주는 음식은 모두 맛있었다.

   당시 막 개발되었던 섬에 인터넷이 들어와있을리 만무했다. 휴대폰 기지국도 없었다. 그러니 그곳에 들어가는 순간 현대인의 필수품이라 말하는 휴대폰, 전화, 인터넷, 데이터따위는 없다.

마지막으로 손님이 없다. 그곳은 데이투어로 오는 사람들이 더 많은 곳으로 그들은 오후 배를 타고 섬을 나간다. 때문에 밤이 되면 손님이 거의 없었다. 있더라도 인도네시아 인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밤새 술마시고 노는 우리와는 다른 문화를 가진 그들은 저녁을 먹고 적당히 시간을 보낸 후 숙소로 들어갔다. 때문에 밤이 되면 섬에 서성이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그 섬 전체가 우리것이 된다.

   바다로 둘러싸인 작은 섬은 저녁이 되면서부터는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더욱 시원했다. 에어컨이 없어 온 몸의 더위를 한순간 날려주는 시원함은 없었지만 자연이 주는 바람의 은은한 시원함을 오랜만에 만끽할 수 있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는 육지에 두고 온 일이나 이곳에 없는 사람을 신경쓰지 않아도 됐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무인도이기 때문에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에 더 귀기울일 수 있었고, 그것은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 뿐 아니라 그 사람에게 귀기울인다는 의미였다. 우리는 그 밤 그 섬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 집중했다. 내가 존재하는 현재를 오롯이 즐길 수 있었다.

   너무 많은 것을 가진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동안 그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보내고 있다. 그렇게 우리가 가진 시간 조차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라노섬에서는 많은 것이 없기 때문에 온전히 내가 가진 것들을 누릴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몇 번을 다시 찾았는데 갈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생겨있었다. 이제는 섬에서도 로밍을 통해 인터넷과 전화를 쓸 수 있다. 글램핑 텐트 대신 통유리로 멋진 바다 뷰를 볼 수 있고 에어컨도 있는 빌라도 들어섰다. 음식을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늘어났고 관광객도 더 늘어나있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이 점점 더 들어서고, 덕분에 찾는 사람도 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없어서 좋아했던 것들이 존재함으로인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라노섬을 아낀다. 아직까지는 로밍을 해가지 않으면 인터넷이 없는 세상을 살 수 있고, 에어컨이 있는 빌라 안이 아니라 바닷 바람을 맞으며 야외 테이블에 앉아 밤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다행히 아직은 인도네시아 관광객들이 많아 대부분 저녁에 잠시 시간을 보내다 숙소로 들어가시기 때문에 여전히 고요한 밤을 즐길 수 있다. 무언가가 없는 곳을 찾아 어떤 곳으로 애써 간다는 것이 사실은 아이러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가진 우리가 그것에서부터 멀어졌을 때 나에게 더 다가갈 수 있다면 가끔은 그런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없는 것이 많은 라노섬을 나는 여전히 아끼며 종종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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