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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얌전한고양이 Sep 11. 2023

진로 고민하는 오빠, 진로 상담해 주는 동생

방황하는 오빠를 위한 동생의 일갈


2년 뒤의 미래는 모른 채 아무 생각 없는 나



나는 작년에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했다. 위험한 현장, 워라밸 따위 안중에도 없는 출장 일정, 무료하고 보람 없는 단순 노동,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저에 가까운 임금, 그리고 전혀 닮고 싶지 않은 상사들의 모습을 보고 현타를 느꼈기 때문이다. 사직서를 낸 후 퇴사하기 전까지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느꼈고, 빨리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퇴사를 하고 난 후, 무한리필 갈빗집 홀서빙, 김장 축제 단기알바, 야간 피시방, 이자카야 주방, 개인 카페, 대형마트 카트수거 등등.. 다양한 알바를 해봤다. 일의 강도는 정말 극과 극이었다. 너무 쉽고 단순해서 지나가는 중학생 붙잡고 1시간만 가르쳐도 될 정도이거나, 아무리 메모하고 복습해도 너무 급하고 정신없어서 적응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나는 내가 회사에 다니다 왔으니 알바 정도는 껌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적응 못하는 일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하고 있지만 시간은 성실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름 풍족했던 계좌 잔액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초조해진 나는 틈나는 대로 알바천국과 알바몬을 뒤적거렸지만, 너무 단순작업이거나, 내가 적응 못했던 종류의 알바만 나왔다. 퇴사하기 전에 부풀었던 기대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서서히 쭈그러들고 있었다.


"어차피 좋아하는 일 찾기는 글렀어.", "매번 새로운 곳 가서 적응하기 힘들어", "돈이 점점 떨어져 가는데 일했던 곳에 다시 갈까?" 의욕을 상실한 나는 이 따위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트에서 카트 수거 할 때가 떠올랐다. 시원한 마트에서 한가하게 시간 때우다가 퇴근해도 200 중반 되는 월급을 받던 때. 이미 진로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무 데나 짱 박혀서 돈이나 벌고 싶었다.


내 동생은 예전부터 패션에 참 관심이 많았다. 옷을 구경하고 입어보는 걸 좋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재봉틀로 옷을 수선하기도 했다. 대학도 패션 관련된 과에 들어갔고, 친구와 함께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해보기도 했다. 지금은 휴학하고 SPA브랜드의 옷가게에 취직했다.


얼마 전에 가족들과 식사를 했다. 오래간만에 동생도 만났다. 동생은 내가 어떻게 사는지 관심이 많다.

"오빠 마트 일 그만뒀어?"

"응 그만뒀지"

"이제 뭐 하려고?"

"나도 뭐 할지 모르겠어, 다시 마트 들어갈까 생각 중이야"

"오빠!! 그러면 안 되지, 오빠가 왜 퇴사하고 알바했는지를 생각해 봐, 돈 벌려는 게 아니라 오빠가 원하는 일 찾으려는 거잖아? 원래 목적을 잊으면 안 되지!"


나한테 용돈 받던 동생이 어느샌가 훌쩍 커서 나에게 조언을 해줬다. 기분이 묘하다. 하지만 덕분에 흔들렸던 내 마음이 제자리를 찾았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는 목적을 다시 되새겼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이력서를 살포했다.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내가 안 해본 일들을 다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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