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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임스 Jan 16. 2023

해치지 않아요

조.. 조... 조심히 내려가세요

‘여기 쉽다며’
울산 울주군 문수산의 정상을 향하는 마지막 언덕에 수많은 계단이 있다. 대자연의 위엄에 좌절하면서도 돌아가기에는 아쉬운 그 계단. 실제로 계단에서 싸우는 커플도 봤다. 쉬운 산이라 금방 올랐다가 칼국수 먹자고 했다던데, 괜히 내가 찔렸다. 문수산이나 울산 북구의 동대산처럼 동네 뒷산의 이미지에 그리 힘들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산이 있다. 북한산이나 월악산처럼 악명이 높거나 이름부터 힘들어 보이지 않은 친근한 느낌. 그래도 산이다. 최근 6개월 이내에 등산한 적이 없다면 대부분 1주일간은 걸을 때마다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렇게 1주일이 지나면 괜히 생각이 난다. 이번에 가면 왠지 더 쉬울 것 같은 느낌.


산이 낯선 사람들은 바닥을 보기 바쁘다.

오르다 지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면, 정상이 얼마나 가까운지 확인한다. GPS는커녕 전파 자체가 잡히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어느새 음악보다 크게 들리는 심장 소리. 헐떡거리는 심장과 들썩이는 어깨는 쉬이 진정되지 않는다. 터질듯한 종아리와 아려오는 발바닥. 이 모든 통증은 ‘왜 굳이 여길 왔을까?’,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같은 한탄으로 이어진다. 이때 산에 익숙한 동료나, 지나가는 등산객이 있다면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산이 익숙한 사람들은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조심히 내려가세요~’ 같은 인사말과 함께 오르막, 내리막을 평지처럼 지나가 버린다. 낯선 이가 갑자기 전하는 인사는 당황스럽다. 길거리라면 황당할 만한 상황인데, 산에서는 함께 고개 숙이며 인사하게 된다. 괜히 반갑고 괜히 웃음 나는 묘한 순간이다. 그 인사를 받은 사람은 다시 힘도 내보고, 괜히 추월당하기 싫어서 무리를 해보기도 하는 순간. 참 묘하고 재밌는 순간이다. ‘등산’이라는 공통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묘한 유대관계랄까?


‘다 왔어요’

산에서 오르는 사람들이 내려가는 무리를 발견하면 하는 말이 있다. ‘정상 다 와 가요?’ 그럼 십중팔구 이렇게 대답한다. ‘다 왔어요.’ 이 뻔한 거짓말에 어이없어하면서도, 허리춤을 잡고 한 발짝씩 다시 올라간다. 여길 돌면 끝이려나 하고 대부분 한참 더 가야 한다. ‘다 왔어요.’라는 말은 사실 다른 이야기를 함축한다. 그 이야기는 오늘의 우리, 도전하는 청년들이 꼭 새겼으면 하는 이야기다. 수많은 도전이 ‘용두사미’ 혹은 ‘뒷심’이 부족하여 좌초된다. ‘다 왔어요’라는 지금까지 온다고 너무 고생했으니 마지막까지 조금만 더 힘을 냈으면 하는 말이 담겨있다.
등산은 개인의 체력적인 부분이 있기에 무조건 정상에 도달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점은 마지막까지 힘을 낼 수 있게 응원하는 자세와 얼마나 아름다운 땀방울을 흘렸는지. 바닥만 보고 산을 오르고 있는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목적으로 함께 하는 사람들의 유대로 전할 수 있는 응원. 바닥과 앞을 보며 걷던 사람은 이마의 땀이 흘러 눈이 따갑다. 이때 우리의 목소리는 잠시 허리를 펴서 땀을 닦을 여유, 그동안 올라온 저 오르막 혹은 이겨낸 고난을 보며 뿌듯해 할 기분까지.

‘앱 종료’

산에 오를 때 중턱부터는 이어폰을 빼고 음악을 끄길 바란다. 산에서 나는 다양한 소리를 들어보라. 지나가던 사람과 인사도 하고 우리를 반기는 산의 소리를 들으며 걸어봤으면 한다. 정상을 향해 바닥을 보던 당신이 느끼지 못했던 새로움이 느껴질 것이다. 점점 높아지며 달라지는 공간의 모습을 관찰하다 보면 ‘벌써 정상이야?’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때로는 공간과 내 성취에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인 삶의 방식이 된다. 그리고 바닥만 보고 있어서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을 해왔는지 모르는 청년들에게. 인생이란 산이 익숙한 우리가 인사를 건넸으면 한다.


해치지 않아요.

문수산 정상에서 보는 광경은 황홀하다. 카메라에 담아 나눌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오를 때마다 새로운 옷을 입고 나를 반겨주는 산, 그 반가운 모습은 나를 또 산을 향하게 한다. 다음 주에 오를 산에서도 나는 반갑게 인사할 거다. ‘안녕하세요?’, ‘좀 쉬다 가세요.’라고. ‘저 사람 왜 뭐지?’라고 경계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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