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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가 Oct 13. 2020

자가격리 D+5. 잘하고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 졌다. 냉장고를 뒤져보니 돼지고기 목살은 있는데 김치가 없어서 묵은지 김치를 주문했다. 기쁘게도 김치를 종류별로 다 파는 나라에 왔다. 여기서는 열무김치든 보쌈김치든 동치미든 갓김치든 다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다. 묵은지 김치라는 것을 따로 팔다니. 우와.


움직이지는 않는데 자꾸 배는 고프고, 혼자 있으니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고 싶지는 않은데 집에 군것질 거리가 없어서 과일도 주문했다. 외국에서는 못 먹는 거봉으로! 나는 한국 포도를 좋아하는 편인데, 외국에는 포도 종류가 굉장히 많아도 내가 먹고 싶은 그 까만 한국 포도나 거봉을 구하기가 힘들다. (한인마트에 가면 다 있긴 하지만 자주 가질 않는다.) 그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껍질째 먹을 수 있고 씨가 없는 포도인 것 같다.


이 코로나 시대에 얼마나 완벽한 나라인가. 클릭 몇 번으로 몇 시간 뒤에 문 앞에 놓여 있는 음식들이라니. 마트에 직접 가지 않아도 되고, 자가격리를 하기에 모든 것이 갖춰진 나라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마트마다 다르지만 3만 원 혹은 4만 원 이상 주문하면 배송비도 무료다. 한편으로는 인력을 갈아 넣어서 만든 게 아닐까 싶긴 하지만, 이런 인프라 자체는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오후에 동생한테 연락이 왔다. 보건소에서 부재중 전화가 엄청 많이 왔는데, 일하는 중이라서 못 받았다고, 연락 한번 해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이놈들은 또 왜 엄한 사람을 귀찮게 하고 그럴까. 일하는 중이라는데. 나한테 직접 연락하면 될 것을.


보건소에 전화를 했더니, 나한테 연락을 하려면 어떻게 하냐고 해서 내 핸드폰을 로밍해 왔으니 전화를 거시면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국제전화는 어떻게 거냐고 묻는다. 당황했지만, +를 누르고 국가번호를 누른 뒤에 내 전화번호를 누르면 된다고 설명했다. 키패드에 +가 없다고 묻기에,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 때는 0을 길게 누르면 +로 바뀐다고 알려주었다. 알았다고 하고 통화를 마무리하더라. 국제전화 거는 법을 물어보다니 당황했지만, 한 번도 안 해봤으면 모를 수도 있겠지 싶어서 그냥 넘어갔다. 전화 너머의 목소리가 어리기도 했고.


그런데 연락처 확인이나 하자고 수많은 부재중 전화를 남긴 건 아닐 텐데 이렇게 끊는다고? 아무 일 없는데 그렇게 전화했을 것 같지가 않은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분 뒤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오! 드디어 내 핸드폰으로 전화 거는 데 성공했구나! 국제전화 요금이 많이 나올까 봐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고, 끊긴 후에 내가 다시 걸었다.


이번에 전화를 (방금 걸은) 받은 사람은 내 담당자였는데, 내가 위치 확인이 안 된다는 알람이 떠서 연락을 했다고 한다. 내 핸드폰에 설치된 앱은 별 문제없어 보였다. 그 앱에 대한 여러 불평불만들을 읽은 것이 기억이 났다. 담당자 분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면서, 앱을 삭제하고 다시 설치해보자고 하셔서 그렇게 했다. 나로서는 이게 잘 작동이 되는지 어떤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에 그냥 하란대로 할 뿐이었다. 다시 설치하고 나서는 확인이 잘되는지 담당자분이 잘 등록되었다고 하더라. 별 일 없어서 다행이다. 보건소 측에서도 내가 도망간 줄 알고 엄청 놀랐겠지.ㅎㅎ



자가격리자 안전보호 앱

이 자가 격리자 안전보호 앱은 앱스토어에 들어가 리뷰를 읽어보면 말도 많고 탈도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생활 침해라느니, 설치하지 않으면 입국이 되지 않는다는 게 말도 안 된다느니, 빅브라더가 돌아왔다느니 등의 이야기도 많고,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한국이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보라며, 싫으면 입국하지 말라는 반박하는 내용도 많고 정말 갑론을박으로 가득 찬 리뷰다. 기능에 관해서도 앱이 너무 별로며, 버그가 많고, 오작동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도 많다. 실제의 경험 사례와 함께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고 시끄럽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렇게 리뷰가 흥미로운 앱이 있을 줄이야.


뭐 이건 코로나 때문에 급하게 만든 앱이니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그건 둘째 치고라도 이걸로 완벽하게 자가격리를 하는지 하지 않는지를 알아낼 수는 없을 것 같다. 담당자 쪽에서 모니터링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 어떤 식인 지도 모르고, 이 앱이 경고 알림을 보내는 조건도 모르니 내 생각일 뿐이긴 하지만. 내가 사용해보면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위치가 자가격리 위치를 벗어나면 경고를 보낸다 정도인데, GPS의 수신에 따라서 위치는 오차가 있을 것이고, 한국처럼 아파트 밀집지역에서는 한 건물에 수십 명이 살 텐데 옆집이나 같은 건물 1층에 있는 편의점을 가는 건 당연히 잡을 수 없을 테고, 무엇보다 핸드폰을 놓고 나가면 망하는 거 아닌가..... 어쨌건 중요한 건 격리 대상자가 스스로 경각심을 가지고 알아서 잘하는 것이 아니겠나!


앱을 실행하면 보이는 '자가 진단하기' 버튼을 누르면 증상을 체크하고 체온을 적어 담당자에게 보내는 화면이 나온다. 하루 세 번 하라고 되어있어 낮시간에 5~6시간마다 하고 있다. 이것을 시간이 오래 지나도 하지 않으면 (퍼즐 맞추다가 놓쳤듯이) 버튼이 빨간색으로 변한다. (알람도 온다고 생각했는데, 빨간색으로 변해도 알람이 안 오는 경우도 있고, 진단을 해도 알람이 꺼지지도 않아서 뭔가 버그가 있는 것 같다.) 엊그제 퍼즐이 도착해서 너무 신난 나머지 퍼즐 맞추는데 정신이 팔려버린 때 2~3시간 늦긴 했지만, 그 외에는 아주 잘하고 있다.


담당자님 걱정 마세요. 저는 14일이 지나기 전에 문 밖으로 나갈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이 코로나 시대에 한국에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대단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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