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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쉽지 않네.

by 털복숭이 Mar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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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2018년 봄에 결혼을 했고, 2019년 가을에 꿀댕이를 만났다.

결혼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임신을 했는데 계획한 임신은 아니었다. 당시 생전 처음으로 자다가 토를 하는 기이한 경험을 하고 그때서야 생리예정일이 며칠 지났음을 인지한 후 임신테스트기를 통해 두 줄을 확인했을 때,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더랬다. 좋지만 좋지않은 것 같기도, 너무 빠른데… 왜 지금? 하는 생각, 그럼 앞으로의 내 삶은 어떤 모습, 방향으로 진행되는걸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분명 가임기가 아니었을텐데 어째서? 하는 의문 등 여러가지 생각들로 온전히 기쁨만을 느끼지는 못했었다. 또 그 때는 남편이 워라밸이 아주 처참한 곳에서 일하고 있었을 때라(그걸로 종종 싸우기도 했었음) 나의 임신, 출산을 옆에서 보필하기에 적합하지 않기도 했고 육아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서, 뭐랄까..적절한 임신 타이밍이 아니라고 느꼈다 해야 하나.

하지만 처음 경험하는 몸의 변화가 신기하면서도 놀라웠고, 잘 커주는 뱃속의 아기가 대견했고, 태동을 느끼면서부터는 내 핏줄이라는 것에서 오는 끈끈한 애정이 느껴져서, 서서히 임신과정을 즐겼던 것 같다. 소화가 정말 느려서 생각한만큼 맛있는 것을 많이 먹지 못한 것이 아쉬웠고 후반부로 갈수록 소양증이 심해져서 다리가 미치도록 가려웠던 것 빼고는 매우 순탄한 임신과정을 보냈다. 임신이 체질인가? 싶을 정도로 얼굴 상태는 오히려 전보다 매끈했고 컨디션도 좋았고 살도 별로 찌지 않았었다. 임신 자체도 그렇고 그 과정도 수월했어서, 나는 원하면 언제든 임신이 되는 줄 알았다. 아니 원하지 않을때조차 임신이 되어서 항상 조심해야하는 몸인 줄 알았다. 또 임신만 하면, 정확하게는 임신테스트기 두 줄만 확인하면 츨산까지는 무리없이 착 착 진행되는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꿀댕이를 만나고 정신없이 지내기를 몇 년. 우리는 각자 부모님들이 지방에 계시고 우리 둘의 힘으로 육아를 해내야하기에, 다행히 꿀댕이가 잔병치레가 거의 없고 어린이집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그래도 삶에 여유가 많이 없었다. 하루하루 지내다보면 어느새 일 년이 후딱 가버리는 느낌. 그래서 둘째 생각이 별로 없었던 것이기도 하고. 또 꿀댕이가 남자아이라 에너지가 넘쳐서, 둘째가 또 아들이면 도저히 육아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아 둘째 생각을 아예 안 한 것이기도 했다. 한 번 씩 남편은 둘째를 바라는 마음을 비추기도 했지만, 내가 시큰둥하니 남편도 굳이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시간은 점점 흘렀고, 꿀댕이는 어느새 유치원 큰 형님 반이 되었고, 내 나이는 곧 40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날엔가, 부정출혈이 있어서 검진차 산부인과에 갔는데 의사분이 초음파를 보시더니 난포가 아주 잘 자랐다고, 곧 배란이 될거라 말씀하셨다. 아무 생각도 없다가, 저 말을 들으니 마음이 동한건지. 그날 밤, 남편에게 넌지시 전해주었더니 갑자기 눈빛이 돌변했다.ㅋㅋㅋ

뭔가 실험적인 행위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계획하고 시도한다는 건 처음이었다. 그 흔한 배란테스기조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 동안 몇차례 가임기인듯한 때에 피임없이 사랑을 나눈적이 있어서 혹시나? 한 적이 있었지만 모두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이제 별로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건가~ 싶었더랬다. 그래서 이번에도 혹시나? 싶었지만 에이~ 아니겠지, 임신이 그렇게 쉽게 되는게 아니라더라~ 남편과 이야기하며 그냥 웃어 넘겼다. 근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또 그렇지 않아서, 생리예정일을 기다리게 되더라. 나도 참 내 맘을 잘 모르겠는게, 둘째가 생기면 좋을 것 같으면서도, 현실적으로 어떻게 키우나 고민이 되면서도, 또 생물학적으로 임신이 어려울 것 같은 나이가 다가오자 이제 정말 결단을 내려야하나 싶은 마음과 딸을 낳을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낳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낳는다면 40 전에는 낳고싶은 마음 같은 것들이 어우러져서, 막상 임신이 된다면 반가울 것도 같았다. 만약 둘째가 아들이어도 첫째같은 (비록 에너지는 넘치지만)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아들이라면 괜찮을 것도 같다는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임신이 아니면 좀 서운할 것도 같았다. 몇 년동안 아무 생각 없다가 갑자기 이렇게 변한 내 마음에 나도 내가 혼란스럽고… 그러던 중 생리예정일이 다가올때까지 생리가 없자, 드디어 떨리는 마음으로 임신테스트기를 해 보았다.

희미하게 보이는 두 줄.

엇? 된건가? 역시 초음파로 본 배란일은 정확한건가? 그래도 단 한 번의 시도에 이렇게 되다니?

얼떨떨한 마음으로 남편에게 보여줬더니, 진짜 임신이 된거냐며 물었다. 그런것 같다고 했더니, 이렇게 바로 되는거냔다…그러게. 뭔가 비현실적이네.

그래도 내심 반가운 마음! 남편도 정말 좋아했다.


당시 회사에 내가 속한 실의 실장이 보고서 장평이나 띄어쓰기 같은 형식적인 거에 일일이 간섭하며 별 트집을 다 잡는 사람이었다. 송무만 하다가 사내변호사 생활을 처음 해 보며 조직생활이란 이런것인가..나랑 맞지 않는다고 느낄 때 쯤, 지금껏 일을 하며 소위 ‘인적 리스크’라는 것을 처음 겪어본 때라 임신 소식이 좀 더 반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얼른 임신확인서를 받아 실장에게 보여주며 단축근무신청을 하고싶었다. 그래서 더 서두른게 화근이었을까. 그때만 해도 앞선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당연히 병원에서의 임신확인-출산까지의 과정이 별 무리없이 진행될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임신확인서를 받는대로 회사에 알리고 단축근무를 하려했다.

그런데 임신을 확인받으러 간 병원에서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기집이 좀 작은데,, 한 번 두고 볼게요.“  

병원에 너무 빨리 왔나? 네이버에서 계산한 임신주수와 실제는 다를 수 있다더니 착상이 좀 늦은건가? 겉으로는 덤덤한 척 했지만 속으로는 신경이 좀 쓰였다. 집에 와서 인터넷을 검색했다. 생각보다 나와 비슷한 얘길 들은 사람이 많았고, 그 끝이 많이들 좋지 않았다. 남편도 걱정스러워 했지만 문제없을거라며 나를 다독였고 우리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듯 불안을 숨겼다. 일주일 뒤, 다시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보는데…쿵쾅쿵쾅 심장이 요동을 쳤다.

“아기집이 별로 안 커졌어요. 하루에 1mm씩 커줘야 하는데…일단 좀 더 지켜 볼게요. 명절 지나고 오세요.”

개운하지 않은 느낌. 초음파 사진을 받아들고 방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진을 보는데, 아기집 안에 분명 난황이 있었고 그 옆에 아주 조그맣게 점 같은게 보이는게 아기같기도 했다. 왜 아기 얘긴 하나도 안하고 아기집 작다는 말만 하는거지? 속이 상했지만 뭔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라서 그 점에 집중해서 말한 거겠지 싶었다. 꿀댕이때는 전혀 이런 말을 듣지 않았기에 아기집이 작다는게 얼마나 크리티컬한 요소인지 감이 잘 안 오기도 했고, 기분은 찝찝했지만 뭐 할 수 있는게 없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인터넷에서 포카리스웨트가 아기집 키우는데 좋다는 이야길 줏어듣고 평소에 마시지도 않는 이온음료를 박스째 사서 틈날 때마다 마시는 노력을 했지만, 그걸로 마음의 위안을 얻지는 못했다. 그냥, 뭔가 찝찝해…입덧이랄게 거의 없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마침 추석 연휴가 있어서 다같이 부산으로 가 일주일 정도를 푹 쉬기로 했다. 이따금씩 부정적인 생각이 삐죽 솟아나기도 했지만 되도록 잡생각은 머리에서 지우고 맛있는 거 먹으며 즐겁게 지내려했다.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고 날씨도 좋았다. 그렇게 연휴를 보내고 서울로 올라오는 날, 갈색피가 비쳤다. 이건 또 뭐지? 흠칫 했지만 그럴 수 있겠거니~ 넘겼는데, 화장실에 갈 때마다 조금씩 묻어나오는게 영~ 거슬렸다. 남편에게 말했더니 나보다 더 놀라는 눈치. 이리저리 검색해 보더니 임신 초기엔 그런 경우 많다더라며 나를 안심시켜줬다. 부산에서 너무 신나게 놀았나? 비행기에서의 난기류가 살짝 무서웠는데 기차로 올라올걸 그랬나? 온갖 생각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그런데 다음 날이 되자 갈색 피는 붉은 피로 변했고, 그 다음 날이 되어도 피는 그치지 않았다. 이럴땐 “눕눕”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데 집에서는 누워있는다 치더라도 회사를 빠질 수가 없어서 출근하고 최대한 움직임을 최소화했고 점심시간때도 휴게실에 가서 누워있었다. 그런데 컨디션까지 점점 나빠지는 것 같았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마주하는 피 때문에 화장실에 가는 것이 두려울 정도가 되었다. 아무래도 안되겠네.


다가오는 주말에 병원진료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더 이상 기다리기에는 상태가 좋지 않아 집 근처 다른 병원을 가기로 하고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일찍 퇴근하려는데, 하필 어떤 직원이 나를 찾더니 이것저것 물어봤다. 얼굴이 하얗게 사색이 되어 그래도 묻는 말에 답해 주고 있으니 그 직원도 내 얼굴을 보더니 너무 안좋아 보였는지 어디 아프냐며 걱정해 줬던게 기억난다. 그리고는 퇴근해 남편을 만나 차에 탔는데, 내가 타자마자 남편 퇴근에 맞춰 같이 하원하여 뒷자리에 앉아있던 꿀댕이가 나를 보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엄마랑 뱃속의 아기가 아파서 병원에 가기 위해 일찍 하원한다는 얘길 아빠로부터 전해듣고, 엄마가 하늘나라 가는 줄 알았던 모양. ㅠㅠ 꿀댕이가 너무 서럽게 울어서 나도 눈물이 났다. 아니야~ 엄마가 하늘나라 가는게 아니야.. 가까스로 꿀댕이를 진정시키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초음파를 보았다.  이미 나는 잘못될 걸 99.99% 예상했던지라 그때는 별 떨림도 없었는데, 초음파 기계를 대자마자 좁은 아기집 안에 아기가 있는게 보였다. 괜찮은건가?? 아기 크기는 6주 4-5일 정도, 아기 심박은 해당 주수에 맞게 뛰고 있으나, 여전히 아기집이 너무 작다고 했다. 그래도 심장 소리를 들었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을 무렵, 초음파 기계를 몸에서 뗐는데 기계에 피가 흥건했다. 꺅!!! 그걸 보고 더 놀라버린 나. 의사선생님은 말을 아끼셨지만, 나는 뭔가 잘못될거라는 걸 그 때 이미 직감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래도 몸보신 해야겠다 싶어 근처 유명한 추어탕 집에서 추어탕을 샀다. 집에 와서 한숟갈 뜨려고 앉았는데, 도무지 입맛이 없어서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먹는둥 마는둥 정리하고 일찍 잠에 들었다가 아침에 눈을 떴는데, 도무지 출근할 수 있는 몸상태가 아니었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피는 계속 나고 있었다. 웬만하면 출근할텐데, 정말 너무 컨디션이 안좋아서 급하게 회사에 연락하고 계속 누워있었다. 그런데 평소와 다른 느낌의 두통이 지속해서 있어서 누워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보통 유산기가 있으면 배가 아프다던데, 난 배 보다는 머리가 너무 아팠다. 정말 머리가 깨질듯한 고통에 시달리며 누워있다가, 갑자기 배가 싸해지며 변의가 느껴져 화장실에 갔다. 볼일을 보는데 갑자기 꿀렁~ 하고 미끄덩한 덩어리가 나오는 느낌이 들더니 신기한듯 고통이 사라졌다. 뭐지? 아기집인가? 싶었지만 굳이 보고싶지 않아 얼른 물을 내렸다.


꿀댕이를 제왕절개로 낳았어서 자연분만의 느낌이 항상 궁금했었다. 엄청난 진통을 겪다가도 아기가 몸에서 나오고나면 신기하게도 고통이 사라진다던데,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그 이후로 더 이상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그 날은 몸도 너무 안 좋았고 힘들었던지 별다른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리 슬픈 느낌도 나지 않았다. 아…이렇게 떠난건가. 좀 허무한데. 그래도 수술하지 않아도 되게 자연배출되어서 다행이다. 아기가 나 더 아프지 말라고 빨리 가줬나보다..그런 생각들이 짧게 들었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 그 날은 꿀댕이의 생일이었다. 생일만큼은 웃는 얼굴로 축하해주고 싶어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케잌에 초를 켜고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쳤다. 남편이 걱정스럽게 몸은 어떻냐고 물었는데,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이틀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출근해서 일을 했고 남편에게 아마도 아기집이 배출된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리고는 주말이 다가왔고 예약된 시간에 다니던 병원을 찾았다. 진료 전, 간호사가 특별한 일 없었느냐고 묻는데, 차마 입이 안 떨어져서 얼버무리다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선생님을 만나고나서야 아기집이 배출된 것 같다는 말이 나왔고, 초음파를 봤더니 정말 자궁이 깨끗해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정말 유산이 되었구나. 그게 진짜 아기집이었나봐…

전체 임신의 약 20%는 유산이라고, 흔치 않은 일은 아니라고, 더군다나 초기 유산은 염색체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내 이야기는 아닐거라 생각했어서 그런지 현실감이 없었다. 그래도 수술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역시 빼박 T인가…


남편도 슬픈 것 같았지만 별로 티를 안냈다. 꿀댕이에게도 사실을 알려주었는데, 아직 어려서 뭐가 뭔지 잘 모르는건지 일부러 모르는 척을 하는건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양새였다. 나는 며칠 동안 푹 쉬었고, 돌아오는 주말에 함께 근교로 가서 맛있는 밥을 먹고 예쁜 카페를 갔다. 휴가를 내고 강원도로 여행도 갔고 건강하고 밝게 자라는 꿀댕이를 보며 힐링을 했다. 꿀댕이를 가졌을 땐 정말 모든게 순조로워서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임신과 출산의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되자, 꿀댕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원래 연말쯤 따뜻한 남쪽 나라로 여행을 가려던 계획은, 남편의 “자기 가고 싶은 곳 아무데나 가자.” 라는 말에 더 멀고 더 예쁜 곳으로 바뀌었다. 처음 겪어보는 쓰라린 경험으로 다친 마음을, 우리 세가족이 서로 보듬어 주며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부터 둘째 생각이 막 엄청나게 간절한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이런 일을 겪고 보니 상실감이라는게 있었다. 어쩌다 본 초음파로 배란기라는 걸 알게 되어서 한 번의 시도에 임신이 된 데다가, 둘째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이런저런 앞의로의 계획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여러 상상을 했었는데, 이것이 다 없던 일이 되니 거기에서 오는 아쉬움도 있었다. 나의 마지막 임신이 유산으로 끝나버리는 것도 뭔가 슬펐다. 무엇보다 남편과 나 모두 임신이 가능한 상태라는게 입증은 되었다. 그렇다면 정말 40이 되기 전에 둘째를 만나볼까??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열심히 달려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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