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치핑과 함께 한 유럽여행
저번 꿀댕이와 함께 한 방콕여행을 무사히 마친 후 용기를 얻은 나는 더 큰 야망을 품었더랬지.
이제는 저 멀리 유럽이다~~
22년 연말에 마일리지를 털어 유럽행 티켓을 샀다.
여름에 남부는 더울 것 같고 어디가 좋을까, 마일리지 티켓으로 가능한 노선을 이리저리 검색하다가, 암스테르담 인 부다페스트 아웃으로 결정하고, 가운데 들를만한 도시로 프라하를 선택했다.
프라하는 몇년 전 동생이랑 가본 적이 있는 도시이긴 했지만, 그 때의 추억도 좋았고 예쁜 도시라 오랜만에 남편과 꿀댕이랑 같이 가면 또 다른 느낌이 들 것 같기도 했고 야간열차를 타면 일정도 딱 맞을 것 같았다.
좋았어!!!
그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지내다보니 어느새 2023년 8월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짐 싸기 전 암스테르담 날씨를 검색했는데, 무더운 여름이었던 우리나라와 달리 쌀쌀한 가을 날씨를 연상케 했던 암스테르담 기온. 가디건과 목도리를 챙기며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당시 꿀댕이는 만 4세를 앞두고 있었다.
요 쪼꼬미가 13시간 정도 되는 비행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걱정이 안 되는건 아니었지만 저번 방콕 비행도 잘 해내었으니 1년이 지난 지금은 더 잘 탈 수 있겠지 싶었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꿀댕이는 장거리 비행을 매우 잘 즐겨주었다. 집에서보다 밥도 잘 먹고(도시락처럼 나오는 게 재미있어서 더욱 잘 먹었던 듯) 간식도 다 챙겨먹고, 물붓으로 그림그리기 놀이하기, 틀린그림 찾기, 티니핑과 레고와 브래드이발소를 넘나들며 각종 만화 보기, 엄마아빠 자리에 머리와 다리를 각각 올리고 180도로 누워 쿨쿨 자기 등을 돌아가며 하면서 13시간을 단 한번도 찡찡거림없이 버텼다.
오히려 우리가 더 힘들어서 헤롱헤롱댐...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도착하니 역시나 날씨가 으슬으슬했다.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유모차를 재빨리 끌며 호텔에 도착, 우리의 첫 날이 시작되었다.
비행기에서 너무 즐긴 탓인지, 꿀댕이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우리도 너무 피곤했기에 근처 마켓에서 간단하게 저녁먹을 것을 사 와 허기를 채운 후 일찍 잠에 들었던 것 같다. 바로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바삐 움직여야 할 스케쥴이 있었기 때문에 일찍 잘 수밖에 없었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바쁘게 움직여 간 곳은 크뢸러 뮐러 미술관이었다.
암스테르담과는 거리가 좀 있는 곳이라 하루를 꼬박 투자해야 했기에 유모차를 끌고 과연 갈 수 있을까.. 걱정하며 갈까말까를 매우 고민했던 곳인데, 이번 암스테르담 여행의 목적은 8할이 고흐 그림을 보는 것이었으므로(나의 일방적 목적 ㅋㅋㅋ) 과감하게 고고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이 결정은 미술관을 좋아하는 내가 내린 것으로, 남편은 그저 따를 수밖에 없었음에도 불평없이 동행해 주었고 심지어 모든 교통편을 알아보고 동선을 짜 주었다! 고마워융~
우리는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조금은 복잡한 루트를 거쳐 미술관에 도착했다.
미술관은 국립공원 안에 위치해 있어서 국립공원 입장료도 별도로 지출해야 했다. 국립공원은 매우 넓어서 내부 이동을 위한 자전거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꿀댕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끌어야 했으므로 자전거 이용을 거의 하지 못했다. 대신 네덜란드 자전거는 어떤가, 궁금한 마음에 각자 자기 몸에 맞는 자전거를 골라(세계 최장신이라는 네덜란드답게 160cm 키에 맞는 자전거 찾기가 매우매우 힘들었음ㅋ) 5분? 정도 맛보기로 타 보았는데, 손잡이에 브레이크가 따로 없고 페달을 뒤로 하면 브레이크가 걸리는 시스템이라 처음엔 타는 데 애를 좀 먹었다. 그래도 재밌는 경험.
암스테르담과 거리가 좀 있는 곳이라 그런가... 관광객들이 별로 없었고 한가로웠다.
우리는 여유롭게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는데, 개인이 소장했던 그림들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들로 가득했다.
특히 고흐 작품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답게, 우리에게 익숙한 고흐의 그림들부터 잘 알지 못했던 그의 그림들까지 고흐 작품들이 매우 많았다.
점묘법의 쇠라랑 시냑 그림도 많았는데 진짜 예뻤다. 그야말로 눈 호강.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 너무 좋았고, 분홍 복숭아 나무 그림도 처음 봤지만 너무 예뻤고... 강렬한 붓터치와 아름다운 색감의 고흐 그림을 넋놓고 보다보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고흐 그림을 이렇게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니...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어!
꿀댕이도 유모차에서 편히 있어서 그런지, 미술 작품에 큰 감흥이 있어보이진 않았지만 짜증없이 잘 있어주었고, 남편도 (미술관 타입은 아니지만) 열심히 감상하며 점점 작품들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미술관을 나와서 근처 카페에도 가고 유모차를 끌며 공원을 산책하기도 했는데, 시차 적응도 덜 된 상태에서 많이 걷느라 좀 힘들었지만, 아름다움 그림 잔뜩 보고 좋은 공기 마시며 산림욕도 실컷 해서 정말 좋았던 일정이었다.
안 왔으면 아쉬워서 어쩔뻔 했어??
시간맞춰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 암스테르담 시내에 도착했다.
그때까지 암스테르담 풍경을 제대로 본 적 없었는데, 운하 옆으로 색색이 자리잡고 있는 예쁜 집들, 파한 하늘에 걸려있는 하얀 구름들이 너무 예뻐 사진을 팡팡 찍었다.
그리곤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가 우린 바로 뻗어버렸지.
첫 날 일정으로 좀 무리긴 했다. ㅎㅎ
다음 날은 좀 여유롭게 돌아다니며 암스테르담 시내를 구경하고, 예약해 두었던 반고흐 미술관을 가는 일정이었다. 코끝을 스치는 쌀쌀한 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8월에 패딩에 목도리라니!
거리를 걷다 예뻐보여서 들어간 브런치집은 동네 주민들 사이 맛집이었던 것인지 곧 사람들로 바글거렸고 프렌치 토스트와 계란 요리는 푸짐하고 맛있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반고흐 미술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명성답게 벌써 긴 대기줄이 형성되어 있었다.
우리도 줄을 섰고, 곧 예약시간이 되어 차례대로 미술관 내부로 들어갔다. 두근두근.
어제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너무나 조용하고 한산했는데, 반고흐 미술관은 암스테르담 한복판에 있어서 그런지 매우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혼잡했다.
유모차를 밀면서 많은 수의 작품들을 관람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우린 한 명이 유모차를 끌고 한 명이 관람하는 식으로 적절히 분배해가며 그림을 감상했다.
그러다 꿀댕이가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낑낑거리기 시작해서, 기념품샵으로 가 구경하다가 마음에 들어 하는 아몬드나무 그림이 그려진 물컵을 하나 사 주니 매우 기뻐하며 다시 그림 감상에 협조해 주었다. ㅎㅎ
엄청난 수의 고흐 그림들을 직접 내 눈으로 볼 수 있어 너무 좋았다.
테오의 눈물겨운 형제애, 테오 아내와 테오 아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우리가 지금 이렇게 고흐 작품들을 이 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살아 생전 하나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지만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인 고흐의 인생이 너무나 안타깝지만,,,고흐에게 테오라는 동생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우리 주원이에게도 동생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 잠깐 했던 것 같다. ㅎㅎ
더 있으라면 더 있을 수도 있었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미술관을 나왔다.
근처에 국립미술관, 모코미술관 등 많았는데 다 가보지 못해 그것도 매우 아쉬웠다.
사실 암스테르담은 애초에 계획한 여행지라기보다는 적절한 비행기 일정을 고르다보니 어쩌다 넣게 된 여행지였는데, 이렇게 미술관도 많고 아기와 다니기에도 좋은 줄 몰랐다.
일정이 짧아서 굉장히 서운해. 다음을 기약하기로!
미술관을 나와 암스테르담 오면 꼭 먹어야 한다는 감자튀김을 먹으러 갔다. 유명하다는 집이 몇 개 있었는데, 여러 후기를 보고 특히 바삭하다는 집을 찾아갔다. 소스 고르는 게 힘들었는데, 요피 소스와 트러플마요 소스 조합은 굿!! 좋은 선택이었다.
다음 날은 암스테르담 근교, 풍차의 마을 잔세스칸스를 구경하는 날이었다.
잔세스칸스 구경 후 오후에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와 비행기를 타고 프라하로 넘어가는 일정!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 자체도 매우 작은데다가, 근교까지 이동하는 거리도 짧아 효율적으로 시간을 쓸 수 있어 안그래도 시간이 부족한 여행자인 우리에게 매우 좋았다. 이 날도 부지런히 움직였지.
이 날 날씨가 진짜 환상적이었다.
파아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올라 사진이 그림같이 다 너무 예뻤다.
잔세스칸스에 도착, 집들이랑 풍차랑 넓게 펼쳐진 초원이랑 운하가 그림같은 풍경을 만들어냈다.
여긴 관광지라 광광객들이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해 움직였고 그 거대한 물결에 우리도 몸을 맡겼는데, 꿀댕이도 같이 걸으며 아이스크림도 먹고 치즈 시식도 하고 도개교에 다리 올라가는 것도 흥미롭게 구경하고 풍차 돌아가는 것도 보고 아기염소들도 쓰다듬고 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와서는 공항으로 가기 전, 초코쿠키를 사러 갔다. 암스테르담 오면 다들 사간다는 그 초코쿠키!! 뭐가 그리 대단한가 싶어 궁금했는데, 줄이 줄이~~ 이렇게까지 기다려야하나 싶었지만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 30분쯤 기다렸다 득템 성공! 찐한 초코 쿠키에다가 가운데 화이트초코가 들어있는 모양새로, 맛이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기다릴 정도인가? 싶었던. 한 번 먹어본 걸로 됐다.
그렇게 우리의 3박 4일 짧은 암스테르담 여행이 끝났다.
꿀댕이는 여행이 체질인지, 장거리 비행도 거뜬하게 해내었고 지루할법한 미술관 관람도 잘 따라다녔다. 물론 대부분 유모차에 누워있긴 했지만. ㅋㅋ 가끔 짜증을 내거나 고집을 부려 우리가 '골치핑'이라 놀리긴 했지만 만 4살도 안 된 아기치고는 너무 대견하게 잘 다녔다.
꿀댕이와 유모차를 끌고 암스테르담 여행을 하면서, 트램이나 지하철, 기차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시내를 돌아다닐 때도, 미술관을 관람할 때도, 어디를 가든지 한 번도 불편하다는 생각을 해 보지 못했다. 리프트가 어디든 존재하고 유모차 넣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사람들도 매우 키즈 프렌들리했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 휠체어를 밀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런게 선진국인건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프라하, 부다페스트로 갈수록 유모차를 끌고 이동하는 것이 힘들어졌는데, 교통약자들을 위한 인프라 하나로도 각국의 수준을 체감할 수 있다는 것을 여행하면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레벨은 어디쯤인지도 자연스레 생각해 보게 되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