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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Mar 01. 2024

에밀레종

표구 액자 앞에 서서


 나폴레옹이 인접 국가를 정복한 후 전리품이라 할 수 있는 어느 성당에 들렀다. 내부를 천천히 살펴보다 한 그림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뒤따르던 부관이 이상히 여겨 다가가니 눈시울이 떨리고 있었다.

어찌하여 눈물을 보이십니까?”

“...”

자네한테는 저 그림이 어떻게 보이는가?”

글쎄요?”

부관이니 어쩔 수 없겠군. 내가 정복한 땅은 내 칼끝이 빛을 발휘하는 동안 유효한 거야. 반면에 저 작품을 그린 사람의 땅은 영원불멸할 것이니, 내 심사가 편하겠는가.”   



   우리 집에도 귀한 대접을 받는 예술품이 있다. ‘성덕대왕 신종비천상을 탁본한 표구인데, 남동생이 경주 신혼여행 다녀오면서 내게 줬으니 삼십여 년이 훌쩍 지났다.

 

 좌우 한 쌍의 탁본을 받아놓고 이리저리 살펴봤다. 한참 고민 끝에 왼쪽으로 보고 앉은 것을 선택했다. 귀한 선물인 만큼 박봉의 평사원 시절임에도 이중 액자 표구에 망설이지 않았다. 며칠 후 조심스레 들고 나오는 내 어깨너머로 사장이 너스레를 부린다. 남은 한 폭마저 표구해 놓아야 다음에 제값을 받는다고.      


 한때 보관 소홀로 부분적 오염이 됐지만 어떠하랴. 집 내부를 리모델링한 후, 이층 하얀 벽면 가운데를 차지하게 하니 유명 갤러리 작품 못지않다. 1,200여 년을 뛰어넘어 그 시대 금속공예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걸작이 아니던가.

        

 비천이란 천인(天人)으로서 부처가 설법하는 장소에 나타나 음악과 꽃을 공양한다고 알려져 있다. 종신(鐘身)에 도드라지게 새긴 비천상은 세련미와 숭고함을 겸비한 채, 보상화에 둘러싸여 무릎 세워 연화좌에 앉았다.

 양손은 긴 손잡이가 달린 향료를 든 것으로 보이는데, 향은 6가지 공양물 중 하나다. 천의(天衣)와 영락(瓔珞)이 서로 나풀거리며 신종 소리에 황급히 내려오는 중이다.    

  

 며칠 전 세세히 들여다보았다. 오른쪽 위로부터 왼쪽 아래 방향으로 영락 하나, 옷자락 세 개, 영락 하나, 옷자락 세 개 순서다. 마지막 옷자락은 옷고름인지 불명확하나 유독 말려있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딴 것처럼 펼쳐졌다면 그저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농악의 상모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곡선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중요한 포인트는 시선을 그림 가운데로 끌고 들어가는 데 있다. 비천상은 정제된 형식미와 생동감이 넘친다는 세평에 수긍이 갔다.

 

 종신에 새긴 명문 다섯 단락 중 첫 번째에 종을 제작한 이유를 밝혔다. ‘무릇 지극한 도는 ··· 신령스러운 종을 내걸어서 일승의 원음을 깨닫게 한다.’ 말하자면 언어와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를 종소리로 대신한다는 취지다.     

 성덕대왕 신종의 비천상은 여러 공양물 중 향을 택한 이유가 뭘까. 후각 신경 세포는 학습과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편도체에 연결되어 있다. 세상 진리가 종소리에 실려 향이 도달하는 기억의 심연까지 이르고자 하는 게 아닐까.

 물론 불교에서 향이란 자신을 태워 주위를 밝게 함으로 희생, 해탈, 또는 정화작용 등으로 알려져 있다.

      

 간혹 반대(우측)로 보고 앉은 비천상을 보노라면 왠지 부자연스럽다. 현재 것이 익숙해서 그럴까. 변명 같지만 예전 오주석 선생의 저서를 읽으며 생긴 습관일지도 모른다. 우리 선조들이 그림을 볼 때, 오른쪽 위를 봤다가 왼쪽 아래로 스쳐 가듯 한다고 했다. 왼쪽으로 향한 표구 작품이 편안하게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성덕대왕 신종도 여러 번 멸실 위기를 겪었다. 그러기에 8세기 신라인의 차원 높은 철학과 사유가 오늘날 더욱 빛을 발하는 까닭일 수도 있다. 조선 후기 문장가이자 서화가인 저암 유한준의 어느 발문을 떠올려 본다.      


알게 되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참되게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나니 그때 수장하는 것은 한갓 쌓아두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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