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시험 마지막 날, 종례를 준비하고 있었다. 갑자기 한 학생이 새하얗게 질려 교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선생님! 큰일 났습니다.!”
“3학년 교실에서 한 애가 O을 들고 난리입니다.”
아직 퇴근하지 않은 몇몇 선생님들이 있었지만, 감히 나서려는 이가 없었다. 그때 교무주임 선생님이 나섰다.
복도에는 학생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어떤 선생님이 학생의 뺨을 두세 차례 때린 모양이었다. 창문으로 보니 웃통을 벗어던진 학생이 그 선생님의 이름을 고래고래 부르고 있었다. 문제의 심각성은 그것이 교탁 한가운데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나타나면 당장이라도 행동에 나설 기세였다.
출입문을 힘껏 열어젖혔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크게 꾸짖으며 다가가자 학생은 동작을 멈췄다. 눈에는 섬뜩한 살기가 비쳤다. ‘저것부터 제거해야 한다.’ 천천히 다가가 잡아당겼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요것 봐라!’ 어금니를 꽉 다물고 힘껏 잡아당기자 교탁이 뒤뚱거리며 제거됐다.
“날 따라와!”
여차하면 덤벼들 것 같은 거친 숨소리. 눈을 부릅뜨고 고함쳤다.
“어서 안 와!”
학생은 어슬렁어슬렁 선생님을 따랐다. 말은 하지 않지만 행동은 마치 ‘흥! 그래 어쩔 텐데.’라는 태도를 보였다. 교무실로 돌아와 서랍에 O을 집어넣고 열쇠를 단단히 잠갔다. 학생을 바로 옆 자료실로 들어가게 하고, 또 문을 안으로 잠갔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긴 알아!”
“...”
“엎드려뻗쳐!”
고분고분 말을 들을 리 없었다. 주위에 각목이 얼핏 보였다. 또박또박 끊어서 말하자 그때서야 엉거주춤 엎드렸다. 어디 한 번 때려보라는 듯 오기가 서려 있었다. 엉덩이를 내리치자 각목이 튕겨 올라왔다. 섬뜩한 느낌이 스침과 동시에 학생은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났다.
“정위치!”
버럭 고함을 내질렸다. 얼떨결에 또 엎드린다. 다섯 대를 가했다. 쓰러진 학생을 끌어서 의자에 앉히고, 다른 의자를 당겨 학생과 마주 보고 앉았다. 노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그것을 휘둘렸다면, 적어도 두 사람 인생을 망칠 뻔했다.” 학생의 거친 숨소리는 실내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진정한 뉘우침과 반성 없는 한, 너는 물론 나도 이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흘렀다. 모두 집으로 돌아갔는지 교정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점심부터 시작한 대치국면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서너 시간이 지나자, 학생의 숨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머리엔 여러 생각이 오갔다.
‘저 혈기 왕성한 청년의 일탈을 나무랄 때는 신중해야 하는데, 전혀 배려하지 않았구나. 그렇다 해도 신성한 교육의 장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저 학생을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교육자로서 두고두고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어느새 창밖에 붉은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학생의 표정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 ‘옹이가 얼마나 깊이 박혔으면..’ 선생님은 한숨을 안으로 삼켰다.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학생은 땅이 꺼지듯 울며 무릎을 꿇었다. 선생님도 의자에서 따라내려, 자신보다 덩치가 큰 학생의 등을 말없이 껴안았다.
“하마터면 햇빛도 제대로 못 볼 뻔했습니다. 저 때문에 점심도 거르고, 해가 지도록 고생한 선생님께 너무 죄송합니다.”
조금 후 복도까지 사제지간의 울음소리가 함께 들렸다.
참으로 오래전 이야기다. 정년퇴임 무렵, 아버님은 잊히지 않는 몇몇 제자들을 떠올리며 내게 들려주셨다. 그리고 이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 ‘폭력은 동물의 법칙이요, 사랑과 질서는 인간의 법칙이다.’라는 간디의 말을 잘 알고 있던 내가 그때를 반추하면 회한이 앞선다.
물론,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고 젊은 시절의 결기가 있었다 하나, 보다 원만한 지도 방법을 찾아야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