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옆집에는 신혼부부가 살고 있다. 가끔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면, 나는 하던 일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그 소리가 마치 우리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의 칼럼이 문득 떠오른다. 그는 아이들이 부모 은혜를 대여섯 살까지 다 갚는다고 썼다. 옹알이를 하고, 걸음마를 떼며, 말귀를 알아듣는 순간의 감격을 기억하는가? 그러면 부모는 아이들에게 이미 효도를 받은 것이라고. 그 시절의 기쁨은 어떤 고단함도 눈 녹듯이 사라지게 했기에, 더 이상 아이들로부터 효도를 기대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옆집 부부도 매일 벌어지는 효 향연을 제대로 만끽하고 있을까.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내게 재잘거렸던 목소리가 지금도 서재에 화석처럼 남아있다. 나는 그것들을 모아 「아이들 이야기」라는 폴더에 정리해 두었다.
큰아이는 아들이고, 그보다 세 살 어린 딸이 있다. 이들이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시절까지 쓴 손 편지, 축하 카드 그리고 아들 반성문들이 폴더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시기는 IMF 환란 전후였다.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상황에서, 나는 직무 연수를 받았다. 수료한 뒤 우리 가정에도 격변과 혼돈이 밀물처럼 들이닥쳤다.
여기 소개한 글들은 아이들이 쓴 것 중에서 주요 단락들이다. 아내에게 쓴 편지도 있지만, 이번 글에서는 생략하기로 했다.
아들의 글
〇초등 6학년 : ‘97. 5월에 책 선물 합니다. 천천히 보세요. 김정현 소설 『아버지』
〇중등 1학년 : 아버지 힘드시죠? 사회 정리, 영어 단어장 언제 검사해도 잘하겠습니다. 연수 잘 다녀오세요.
〇중등 1학년 : 컴퓨터 사 주세요. 그것만 붙잡고 있지 않을 거고요. 연수 끝나는 날 별로 남지 않았네요. 아무 일 없도록 잘 다녀오세요.
〇중등 2학년 : 결혼 OO주년이면 짧은 세월도 아닐 텐데. 싫증(?) 날 때 없었겠죠(?). 술은 되도록 피하시고 담배는 하지 마세요.
〇중등 2학년 : 제 생일에는 거의 무관심이던 아버지가 본인 생일에는 약간(?) 챙기시는군요.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책을 받고 저녁 늦게까지 읽으며,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마지막 장을 덮고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당시 회사는 IBM5555 시리즈 전산 입력용 단말기뿐이었다. 나는 업무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dBASE 3』 서적을 읽고 있었다. PC 대중화가 시작될 무렵, 나는 PC로 ’dBASE 3‘ 프로그래밍을 해볼 생각이었는데, 초등생인 아들마저 PC를 사달라고 졸랐다. 우리 집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 ‘아프로만’의 386PC였다.
퇴근 후 집에 오면 아들이 ‘보글보글’ 게임을 하고, 딸은 의자 등받이를 짚고 올라가 덩달아 좋아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후 486DX, 586 펜티엄까지 순차적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PC와 친숙해지도록 도와준 것이 나에겐 큰 보람이다.
아빠가 힘든 것을 모르는 아들은 술과 담배를 자제하라고 맹랑하게 나무란다. 그로부터 3년 뒤, 나는 담배를 끊었다.
딸의 글
〇초등 2학년 : 제가 욕심꾸러기죠. 이것저것 여러 가지 물건을 많이 사려고 하니까요.
〇초등 3학년 : 이 편지가 3번째 편지예요. 지난 방학 때, 생신 카드, 어버이날 편지죠. 이제 편지가 쌓이고 쌓이게 되면 그땐 아버지 머리에 흰머리가 많고 할아버지로 변할 거예요. 이 편지가 아버지에게 가면 그날은 어버이날이 되고, 즐거운 우리 집으로 변하겠죠.
〇초등 4학년 : 선물은 좀 작지만, 딸의 따뜻한 마음으로 마련했어요. IMF 시대에 모두 힘을 합쳐 옛날 마냥 즐거웠던 그때로 돌아가요.
〇초등 4학년 : 제가 하루에 있었던 일을 수첩에 적어드리면 거기(연수원) 가서 보시고 아버지도 그렇게 쓰세요.
〇초등 4학년 : 조그만 선물이랑 액자에 우리 가족사진을 넣어 거기서 보시라고 준비했어요. 그럼 안녕히 다녀오세요. (좀 섭섭하네)
딸은 또박또박하면서도 귀여움이 물씬 풍기는 필체로 편지를 썼다. 그 시절의 따뜻한 온기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나는 재직 중에 해외 출장이나 전산화 업무로 한 달간 집을 비운 적도 있었지만, 그 시절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였다. 경기도의 연수원에서 관리자 직무교육을 받았다. 거의 두 달 동안 토요일 오후마다 집에 오고, 일요일 오후에는 다시 돌아갔다. 연수원으로 떠나던 첫날, 현관에서 가족들이 나를 배웅하는데 딸이 울음을 터뜨리며 엄마 품에 안겼다.
마지막으로 아들의 반성문들인데, 아직도 거칠고 흥분된 숨결이 느껴진다. 대개 A4 한 장 앞뒤로 적혀있다. 따끔하게 혼 내키고, 반성문을 쓰게 한 것은 아들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어길 때 때였다. 동생과 다투다가 싸우거나, 학교 또는 학원을 마친 후 친구와 놀다 늦게 귀가할 경우였다.
오랜만에 책장을 벗어나 바람을 쐬었으니, 오늘 밤 잠자리 머리맡에서 아이들이 재잘거리고 뛰놀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