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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Jul 30. 2021

가진 것이 말 뿐일 때.

대한민국의 페미니즘이 폭력적이라고?

한국의 남초 사이트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현재 영국, 미국, 독일, 중국 등 온갖 외신으로부터 '성차별적 괴롭힘'으로 연일 보도되며 유명해지고 있다. 항상 반복되는 그들의 '화난 페미니즘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주장에 대해 오늘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대한민국에서 여성과 남성은 하나의 공고한 신분이다. 아무리 진보적인 남성이라도, 아무리 보수적인 여성이라도 그들은 성별에 의해 삶의 많은 부분이 결정되어버린다. 신분에 의한 차별이 공고하며, 격렬할 때 그 정의함의 정도는 강해진다(학벌, 연령, 지역 등 다른 조건 변수보다 여성이라는 변수가 삶의 많은 모습을 정의해버리게 됨. 공통적인 차별의 경험 담론이 발달하게 됨 ex. 82년생 김지영). 한국 사회는 사실상의 민주주의 제도를 갖춘 국가 중 여성에 대한 차별이 극도로 심각한 국가이다. 타 국가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강력 범죄에서의 여성 사망률(예를 들면 수많은 타 국가의 우범지역에서는 남성 동성들 간의 총 싸움이나 폭행으로 사망하는 일이 많다면, 이 나라는 이상할 정도로 남자가 여성을 때려죽이는 비중이 높은 것이다). 압도적으로 높은 여성 자살시도율(일반적으로 원래 자살 시도 후 성공하는 비율은 남성이 더 높으며, 애초에 일반적으로 남성이 누군가를 살해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누군가를 향해-자신을 포함-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할 힘과 경험이 있는 경우 자체가 남성에게 더 일반적으로 높기 때문이다)과 급증하는 젊은 여성 자살률(죽음에 대해 연구한 의대 교수도 한국은 특이하게도 타 국가에 비해 젊은 여성과 노인의 자살률이 높다고 언급하였다). 그 외에도 숨쉬듯 한국 사회에 스며들어있는 남성 우월주의, 여성에 대한 차별과 검열, 성적 대상화에 기반한 강력한 여성성 코르셋, 그리고 그 코르셋이 개개인의 사회 경제적 생존을 좌우한다는 점까지. 매일같이 일어나는 여성대상범죄와 그에 대한 사법부의 솜방망이처벌. 하나하나 열거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 아니므로 그만 넘어가도록 하겠다. 어쨌든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우리의 삶은 적어도 절반은 지옥같은 투쟁을 필연적으로 하도록(그것이 기존 체제에 순응하기 위한 것이든 저항하기 위한 것이든) 태어난다. 


* '한국 남성'이란 개개인을 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신분의 개념이다. '자본가'를 칭할 때 #NOT_ALL_자본가 라고 해시태그를 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남성우월주의, 남아선호사상이 여아를 중절하고 '어디 여자가... 집에서 밥이나 해!'와 같이 여성의 삶을 남성의 양육자로서 제한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지금 세대의 남성우월주의는 좀 더 자신의 패배에 대한 화풀이에 초점을 둔다. 지금의 한국 남성들은 자신들의 삶을 힘들게 하는 요소에 대한 화풀이를 유일하게 가진 젠더 권력에 기반하여 약자인 여성, 그리고 페미니즘에 쏟아 붓는다. 집값이 오를 때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 자본가는 욕하는 대신 '갓물주'라고 추앙하고, 노동 환경을 악화시키는 자본 시장에 '한 탕'을 노리며 물신을 숭배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화풀이는 이 땅에서 유일하게 식민지로 남아있는, 한국 여성에게 쏟아 붓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노는 물리적으로는 여성을 폭행하고 성적으로 착취하는 데 집중하고, 한 편으로는 여성들을 '페미니즘이라는 불순한 사상에 물들지 않도록 단속'하는데 집중된다. 후자가 좀 더 상대적으로 젊은(근데 20대보다는 30대, 40대까지 포진해있지 않나 싶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후에 이야기하고 싶다.) 한국 남성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고, 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실 현재 한국 여성들이 하는 '여성성 탈피'나 '비혼' 운동, 그리고 이를 포괄하는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은 그 자체로 남성들의 생존을 위협하거나 (여성 운동이 진짜 남성을 위협했던 적은 없다) 직접적으로 남성들의 삶에 간섭하는 바가 아니다. 인터넷에서 여성들이 뭐라고 남성을 부르던, 이를 기반으로 기업과 국가가 남성을 단속시키거나 그들의 활동에 제약을 걸거나, 생존권을 위협하지 않는 것이다. 이 '여성에 대한 검열'을 들여다보면 참 재미있는(역겨운) 포인트가 있다. 바로 주로 '젊은 여성'을 그 검열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이들은 자신의 '잠재적 잠자리 상대', '잠재적 배우자'가 '비혼'을 하거나 '여성성을 탈피'하는 것이 화가 나는 것이다(특정 개인에 대한 욕망을 넘어서, 이러한 사상이 잠재적 배우자 시장 풀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싫어한다는 의미이다). 한 편으로는 두려움과 초조함까지 느껴진다. 여성들은 남성들이 비혼을 하던, 머리를 기르던 자르던 관심이 없다. 전반적으로 일면식도 없고 있더라도 대부분 '별로'인 그들이 자신의 '잠재적 성적 상대'가 되길 그다지 열망하지 않기 때문이다(사실인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남성을 만나고 싶은 여성들도 '괜찮은' 남성을 만나는 데 집중하지, 관심도 없는 남성이 자신을 안 만나준다는 데 큰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왜 안 만나줘' 범죄 현상을 보면 조금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이 남성들은 때로 좀 더 격렬하게 민낯을 드러내기도 한다. '출산 안할거면 군대 가(실제로 들었던 말)', '너네 이러면 한국 남성 못 만난다?(실제로 들었던 말)','맞짱 뜨면 내가 이기는데 여자들 봐주는거야(실제로 들었던 말)'. 


한국 남성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탓하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횡포가 비판을 마주할 때마다 강조한다. '한국 페미니즘이 잘못해서 우리가 이러는거야(실제로 너무 여러번 보고 들었던 말).' 


이전에도 언급했듯 약자의 분노는 거칠다. 사회가 당신에게 모든 무기를 빼앗고 묶어두었을 때, 자신이 가진 무기가 펜 뿐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낼 수 있는 게 냉소와 비판의 목소리 뿐이라면. 여성을 죽이거나 착취하는 것이 사실상 반만 범죄로 인정받는 나라에서, 여성이 사람취급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그것 뿐이라면. (사실 그것 뿐이진 않다) 그런데 한국 남성들이 그 분노를 자신들이 약자를 억압하는 근거라고 말하는 과오를 뻔뻔하게 내뱉는 것을 보며, 우리에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것이다 : 얘들은 정말 편하게 살았구나. 아무리 틀린 소리를 해도, 기본적인 감수성과 사고력조차 갖추지 않아도 이 사회는 이들을 허락하고 그에 힘을 실어주는구나.


기본적으로 소위 말하는 '여혐'과 '남혐'은 같을 수가 없다. 후자가 진심으로 한국 남성들을 역겨워하는 혐오감이라면, 전자는 사실상 미소지니misogyny로서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와 억압 전체를 대변한다. 쉽게 말하면 남자들의 탈코르셋과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여성성-성적 매력에 대한 탈피에 대한 비난)는 실제 여성들의 일자리를 잃게 하고(탈코르셋 후 해고 사례 오조오억), 채용 절차에서 짧은 머리를 하거나 화장을 하지 않는 것을 제약시키고, 채용절차나 직장에서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아님을 검열 받고 증명하도록 만들지만, 여성들이 말하는 '6.9cm' 같은 한국 남성의 성적 매력에 대한 비하로 한국 남성이 실제로 일자리를 잃거나 직장에 들어갈 때 6.9cm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여야 할 필요가 생기진 않는다. 이것이 바로 공고한 차이다. 성별이라는 신분제에 기반한.


한국의 웹 페미니즘이 공격적이라고 비난하는 남성들의 논리 중 또 하나가 '성 소수자' 이슈인데(사실 별로 이들은 성소수자의 인권에 관심이 없다. 절대 다수의 여성들이 실제 성소수자 문제에서 더 포용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실제로도 남성성을 가지지 않은 남성에 대한 물리적 괴롭힘의 가해자는 남성이 압도적이다. 그러다가 최근 한국의 페미니즘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볼까 고민하는 것이다. 이야말로 성 소수자에 대한 모욕이 아닌가), 이 또한 한국 특유의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젠더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수행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남성성'을 갖추지 못한 남성이 받아온 차별 등에 대한 보호 기제가 필요하다는 교과서적인 설명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성별 신분제가 너무나 공고한 나머지 '남성성'을 수행하던말던 그저 '남자'로 태어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젠더라는 측면에서 어마어마한 특권층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든, 성적 지향이 어떻게 되든 이미 남성이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받고, 국내 인권운동과 여성운동의 자원조차 압도적으로 그들을 '특별 대우'해주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혐오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여성들이 행하는 것은 '특권 의식에 대한 지각이 없는 남성'에 대한 분노이다. 그들이 레즈비언을 혐오하거나 다른 무성애 운동 등등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래디컬'하다고 불리는 한국 여성들의 페미니즘은 사실상 무성애에 가까운 형태로 나아가고 있기에 그 자체로 오히려 이성애 중심의 성적 지향관이라는 측면에서는 퀴어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에 대한 갈등이 촉발된 것은, 그렇게 남성으로서 어쨌든 특권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들이(그렇기에 더 많은 자원을 지녔다고 믿게 되는) 자신의 정체성을 여성으로 규정했다는 이유로(하지만 실제 여성이라면 그만한 지원과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여성이 여성이기에 겪었던 차별에 대한 배상으로서 받는 제도의 수혜자로서 등장할 때였다. 성소수자라는 카테고리로 보호받지만 사실은 남성이기 때문에 누리는 특권을 지각하지 못하는 이들을 경계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존재는 스스로 규정하는 것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은 외부에서 나를 어떻게 규정하는가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결정짓게 된다. 단편적으로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연예인으로서 MTF트랜스젠더나 게이는 등장을 했지만, 레즈비언으로 당당하게 그만큼 유명세를 타고 활동하는 이는 아직도 없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여성은 이때까지 사회에서 볼 수 없었던 계급지배로부터의 혁명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도상의 민주주의가 갖춰진 국가이지만 여성에 대한 착취가 가장 심각한 나라, 겉으로는 외부 국가에 의한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것 같지만 여성에 대한 식민지배라는 새로운 형태의 지배구조를 갖고 있는 나라.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모두 60대 남성을 위주로 돌아가고, 2030대 남성의 떼쓰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척 하며 여성에 대한 탄압으로서 자신들의 특권구조에 대한 혁명을 잠재우려는 나라. 혹독한 환경 속에서 국가와 사회에 대한 복수심을 갖고 살아가게 된, 거친 언어로 말하게 된 여성들. 스스로 폭력성으로부터 유리되고, 여성에게 총과 칼을 쥐어주지 않았기에 피의 혁명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자신이 식민지에 살고 있음을 여성들이 지각하기 시작함으로서, 약자를 착취하여 운영되는 이 국가의 운명은 앞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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