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겨울, 다니던 회사가 망했다. 몇 개월만 기다려 달라던 사장님을 믿고 버텼지만, 결국 7개월을 채 버티지 못했다. 지인의 추천으로 다행히 서울에 직장을 구하게 되었지만 지낼 곳이 막막했다. 전 회사가 제공한 숙소에서 지냈었는데 회사가 없어졌으니, 어떻게든 지낼 곳을 구해야 했다. 당시 수중의 돈은 단돈 300만 원. 지낼 곳을 구해야 된다는 생각에 무작정 직장 근처를 돌아다녔고 다세대 주택 동네의 부동산 사무실로 들어갔다. 왠지 그곳은 동네 어르신이 운영하는 곳 같았고 저렴한 월세의 방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동네에서만 30년 넘게 부동산을 하신 어르신은 가지고 있는 돈을 물어봤고 난 아주 당당하게 보증금 100만 원에 저렴한 월세방을 찾는다고 말했다. 어르신은 뭐 이런 녀석이 있나 싶은 표정으로 쓱 쳐다보시더니 장부를 쓱쓱 넘기며 돋보기 안경을 코에 걸치신 채 음... 음... 하시며 모토로라 2G 폰으로 전화를 걸기 시작하셨다.
"어이~ 나여~ 그 방 아직 있어?"
"어..어.. 그래 그냥 월세만 받어. 어차피 안 나가잖아 그 방. 그래~ 지금 갈게."
함께 가서 본 방은 당연히 반지하였고 푸근한 인상의 할아버지가 방문을 열어주기 위해 2층에서 내려오시고 계셨다. 지상에서 계단 2개를 내려오고 문을 열면 다시 계단 2개를 내려 들어가야 하는 반지하 월세방.
방을 열고 딱 들어갔을 때 느낌은 6년째 살고 있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한파주의보가 내렸던 유난히 (마음도..)추웠던 겨울날이었지만 방은 따뜻한 온기가 가득했다. 반지하임에도 그 흔한 곰팡이도 보이지 않았다. 낡았지만 방은 넓고 컸으며 햇빛이 방 안을 비추고 있었다. 다니던 회사도 망하고 그저 막막했던 내게 그 방은 따뜻한 안식처 였다. 심지어 월세가 25만 원. 서울에서 월세 25만 원의 따뜻함이라니. 고민이 필요했겠는가? 몇 시간이고 발품을 팔아서 지낼 곳을 구하겠다고 각오하고 찾아간 첫 부동산에서 보여준 첫 집. 더 보자는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계약을 했다.
그렇게 계약한 그곳은 지금도 내가 6년 넘게 살고 있는 소중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그때의 나는 지쳐 있었다. 인생에 뭐 하나 풀리는 일도 없었고 호기롭게 들어갔던 회사는 마치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망해 버렸고,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업계로 구걸하듯 들어갔던 상황이었다. 머물 수 있는 공간을 한번에 찾은 것은 나에게 다가온 작은 행운과도 같았다. 아무것도 되지 않고 '왜 항상 내 인생은 이럴까?' 하며 돌고 있는 좌절의 챗바퀴를 멈추게 해준 브레이크 였다.
이후로 업계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었고 스카웃도 받아 이직도 하였다. 인연을 만나 같이 미래를 꿈꾸고 있고 무엇보다 이전과 같은 무력함과 좌절감이 더 이상 자리하고 있지 않는다.
이 공간이 나에게 행운을 준 것인지? 아니면 우연을 가장한 행운에 내가 의미를 부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번의 넘어짐과 반복된 삶의 고비에서 스스로를 다잡은 것은 큰 교훈이나 깨달음보다 일상의 작은 계기였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동네에서 마주한 25만 원 월세방을 만난 작은 행운이 삶을 다시 한번 정면으로 마주 볼 수 있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언젠간 이 공간을 떠날 시간이 올 것이지만, 추웠던 12월에 방 안 가득 차 있었던 햇살의 따뜻한 온기는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나를 다시 시작하게 해 주었던 그리고 나의 삶에도 작은 행운이 깃들 수 있다고 믿게 해 준 그 온기. 앞으로도 계속 내 마음을 어루만져 줄 따뜻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