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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빛 Jan 15. 2024

이 별에서 우리는

- 서랍 속 동화 1

이 별에서 우리는



엄마가 이럴 줄 몰랐다. 중요한 할 말이 있다고 했을 때 안 듣겠다고 했어야 했는데. 요즈음 영양공급제도 꼬박꼬박 챙겨 먹고 행성 산책도 다녀서 다 괜찮아진 줄 알았다. 엄마가, 예전처럼 돌아온 거라고 나 혼자 착각해버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끔찍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줄도 모르고.

“지유야, 인사해. 지후 누나야.”

엄마가 녀석의 등을 살짝 떠밀며 어색하게 웃었다. 엄마에게 찰싹 붙어 있던 녀석은 입술을 비죽이며 내 앞에 섰다. 대단한 어리광쟁이라 엄마에게서 떨어질 줄을 모르던 누가 생각났다.  녀석은 가만히 서서 나를 올려다봤다. 원래 우리는 한 뼘 정도 키 차이가 났다. 그러니까, 내 동생 지유랑 나는. 일 년 사이에 나는 반 뼘 정도 더 컸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녀석은 열 살 지유의 모습 그대로였다. 한 뼘 반.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 차이를 엄마는 정말로 무시할 수 있는 걸까? 

“윤지후. 13살. 스캔 완료. 정보가 활성화됩니다.”

짧은 안내 문구가 나왔다. 엄마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척 딴청을 피웠다. 잠깐 느리게 눈을 깜빡이던 녀석은 이내 팔짝 뛰며 내게 안겼다.

“누나! 보고 싶었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엉겨 붙는 녀석의 체온은 소름 끼칠 정도로 따뜻했다. 살짝만 팬 보조개도, 숱이 없고 옅은 밀밭 색의 머리칼도, 동그랗고 하얀 이마도. 지유랑 너무나도 똑같았다. 하지만…….

“얘는, 지유가 아니잖아.”

가까스로 그 말을 뱉자 엄마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렸다. 눈가의 경련은 엄마가 어떻게 하지 못 하는 스트레스 신호였다. 엄마는 금방 반박했다. 

“아니야, 지후야. 잘 봐. 어떻게 봐도 우리 지유잖아.”

억지로 끌어올린 엄마의 입꼬리를 보자 더는 말을 덧붙일 수 없었다. 억지로라도 엄마가 웃는 건 오랜만이었으니까.

지유는 정기검진을 받지 않은 자율주행 경비행기에 치였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행기를 피할 방법은 없었다. 곧바로 응급 구조 시스템이 작동했지만, 출혈이 너무 컸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했다 해도 죽음 자체를 없앨 순 없었다. 지유의 생체 반응 신호는 곧장 엄마에게 전달되었다. 나랑 같이 지유 마중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엄마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엄마를 흔들며 찢어지는 비명을 내질렀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다.

“음……. 야, 그러면 너희 엄마는 진짜로 걔가 지유라고 믿는 거야?”

5D 영상 속 은채가 머뭇거리다 물었다. 은채는 한 달째 자기 아빠랑 관광 행성들을 여행하는 중이었는데, 내가 걱정되는지 틈틈이 영상 접속을 했다. 

“내가 알겠냐. 근데 엄마 기억을 갖고 만든 거라 엄마랑 있는 거 보면 완전 지유랑 똑같긴 해.”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원하는 대상과 똑같은 모습을 재현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맞춤형 인간 로봇은, 지정인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지속적으로 정보를 활성화했다. 다양한 정보들을 마구잡이로 수집해 인위적으로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지정인의 뇌를 직접 스캔해 만들기 때문에 한층 더 섬세하고 복합적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내가 동의했다면 나도 지정인으로 뇌 스캔 과정을 거쳤겠지만, 엄마는 내가 거절할 걸 미리 알았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일을 저질러버렸다.

지유의 말투, 사소한 습관을 그대로 본 딴 녀석을 볼 때마다 명치끝이 답답해졌다. 녀석을 끌어안고 환하게 웃는 엄마를 보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지유의 사진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지유가 “배신자.” 하고 울먹일 것 같았다. 

영원한 이별의 행성에 냉동시킨 지유를 두고 돌아왔을 때, 엄마는 어딘가 고장나버린 것 같았다. 어디가 어떻게, 라고 설명하긴 어려웠지만 엄마가 다시는 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란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행성 개발이 시작되면서 수많은 행성들이 새롭게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그 중 몇 개의 행성을 더 먼 미래를 기약하는 데 사용했다. 사망선고가 떨어져도 가족들이 원하면 냉동을 시켜 우주 곳곳에 있는 이별 행성에 보관할 수 있었다. 원래는 상당한 금액을 매달 내야 하지만, 어린 아이들만은 예외였다. 13세 이하의 아이들은 별도의 절차 없이 보호자가 동의하기만 하면 이별의 행성에 냉동시킬 수 있었다. 언젠가는 그 아이들이 다시 살아날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믿음을 가지며. 나는 엄마가 영원히 지유가 다시 돌아올 날만 손꼽아 기다릴 거라고 생각했다. 나처럼. 그런데 어째서 저런 가짜를 데려 올 생각을 한 걸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몰래 갖다 버릴까? 폐기 처분 센터 앞에 두고 오는 거지.”

팔짱을 끼고 부러 못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은채가 대번에 “야, 그게 얼마짜린 줄 알고.” 하고 대꾸했다. 그 말에 나는 하려던 말을 다 잊어버리고 입을 꾹 다물었다. 불평을 늘어놓으며 먼저 폐기처분을 운운하던 건 나였는데, 막상 녀석의 가격을 논하자니 기분이 묘해졌다. 내 동생이랑 똑같이 생긴 얼굴로 와르르 웃고 신나게 떠드는 녀석이 진짜 로봇이라는 실감이 확 났다. 

능력 있는 연구원인 엄마는 인공수정으로 혼자서 우리 둘을 낳았다. 우리를 낳고 기르며 엄마의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엄마는 사랑이 넘쳐흐르는 사람이었고 그걸 우리에게 퍼 주는 걸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매 순간 그걸 확인받는 게 좋았다. 그런데 그 사랑이 이제 로봇에게 간다고? 지유랑 똑같이 생겼지만 지유는 아닌 로봇에게?

솟구치는 감정들을 어쩌지 못하고 씩씩거리자 맥박 수 진정을 위한 조치가 자동으로 실행되었다. 음성 안내를 따라 심호흡을 따라 하는 사이, 문이 벌컥 열렸다. 녀석이었다. 

“누나, 뭐 해?”

아무 것도 모르는 얼굴로 해맑게 웃는 녀석을 보자 더 속이 터졌다. 

“함부로 들어오지 마.”

일부러 차갑게 말했지만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눈치 없이 둘레둘레 내 옆을 서성였다. 

“엄마가 누나랑 친하게 지내랬어.”

그 말을 듣자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나는 은채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영상 접속을 종료해버렸다. 녀석이 지유처럼 굴 때마다 심장이 조각나는 것 같았다. 그 조각을 모아 엄마한테 가져다주고 싶었다. 그러면, 엄마는 또 울까? 거기까지 생각하자 내가 나쁜 애가 된 것 같았다. 

“너 우리가 베러호 타고 처음 갔던 행성 이름 알아?”

나는 내 심장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팔짱을 앞으로 끼고 다짜고짜 물었다.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주 정류소에서 길 잃어버렸을 때, 엄마 올 때까지 우리가 뭐 하면서 기다렸는지는 알아?”

녀석은 말없이 멀뚱멀뚱 나를 바라봤다. 

“내가 우주 미개발 지역 사람들을 구해주는 영웅이 되고 싶다고 했더니 네가 뭐라 그랬는지, 네가 알아?”

어느새 나는 울먹이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은 절대로 나를 따라 울먹이지 않을 것이다. “누나, 울지 마.” 하면서 따라 울지 않을 것이다. 

“너는 내 동생이 아니야.”

그렇게 말하고 벌떡 일어나 녀석을 세게 떠밀었다. 녀석은 순순히 물러났다. 문이 쾅 닫혔다. 나는 그대로 엎어져 숨을 헐떡거렸다. 진정을 요구하는 음성 안내가 반복적으로 울렸지만,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조각난 심장을 이어붙일 수 있는 방법만을 알고 싶었다.

그날 이후 녀석은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엄마 옆에만 붙어 다녔다. 엄마는 조금씩 더 자주 웃었다. 녀석이 엄마 뒤에서 목을 끌어당기며 업힌 건지 안아주는 건지 모르는 자세로 “엄마 사랑해.”, 하고 말해줄 때. 뜬금없이 물구나무서기를 하며 “엄마 이것 봐, 잘하지?” 하고 소리칠 때. 엄마는 진짜로 지유가 돌아온 것처럼 굴었다. 그럴 때면 나는 지구에서 아주 멀리 동떨어진 항성이 된 것 같았다. 천구에 붙박여 움직이지도 못하고 뜨거운 열만 내는 항성이. 

아침부터 요란한 알람이 울렸다. 나는 날짜를 헤아려보다 침대에 누운 채로 가만히 숨을 골랐다. 한참 더 누워있고 싶었지만 설정 시간이 되자 침대가 자동으로 올라가 어쩔 수 없이 등을 기대고 앉았다. 지유가 좋아했던 노래가 알람 음으로 계속 울렸다. 반복재생을 여러 번 해 둔 탓이었다. 뭉그적거리다가 일어나 웨어러블 로봇을 챙겼다. 평소엔 괜찮았지만 멀리 나가려면 짧은 한쪽 다리를 대신해줄 입는 로봇을 챙겨 입어야 했다.

“오늘 은채 온대. 배웅 갔다 올게.”

계획했던 대로 은채 핑계를 대고 집을 나서려는데 불쑥 녀석이 달려 나왔다.

“나도 갈래. 나도 누나 따라 갈래.”

성가시게 굴지 않아 좋다 했더니 뜬금없이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인상을 팍 쓰며 “네가 어딜 따라와?” 하고 묻자 녀석이 움찔했다. 엄마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유야, 지후 누나 귀찮게 하면 안 돼. 그냥 집에 있자. 응?”

엄마가 어르고 달랬지만 녀석은 완강했다. 로봇도 고집을 부리나? 어이가 없었지만 제조사에 따질 수 있는 것도 아니라 꾹 참고 “적당히 해.” 하고 돌아섰다. 엄마는 휴대용 산소공급기를 챙겨가라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녀석이 내 옆에 바짝 붙어 소곤거렸다.

“나도 데려가. 안 그럼 누나 어디 가는지 엄마한테 말할 거야.”

“내가 어디 가는데?”

“기억 소거장.”

녀석의 말에 나는 멈칫했다. 내 계획을 녀석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건가 싶었다.

“홀로그램 일기 봤어. 엄마가 비밀번호를 알고 있더라고. 그래서 한 번 봤지.”

녀석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엄마와 기억 동기화가 되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지유의 비밀 일기장을 열어볼 열쇠가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남의 거 멋대로 보지 마.”

어깨를 탁 밀치며 사납게 말하자 녀석은 애매하게 웃었다. 오른쪽 눈가만 찡그리듯 웃는 것까지 지유랑 똑같아서 숨이 턱 막혔다. 불쑥 지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저렇게 슬픈 일이 생기면 누나는 어떻게 하고 싶어?”

어느 날 공감 능력을 키워준다는 교육 영상을 같이 보다가 지유가 물었다.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며 대답했다.

“기억 소거장 가서 다 없애버려야지. 난 세상에서 슬픈 게 제일 싫어.”

인위적으로 뇌를 조작해 끔찍한 기억들을 제거해주는 기억 소거장은 아직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트라우마 경험이 뚜렷하고 본인의 의지가 확고할 땐 여러 가지 테스트를 거쳐 시술을 진행할 수 있었다. 나는 엄마 몰래 이미 서류 접수를 끝낸 상태였고 오늘은 면접을 보러 갈 예정이었다. 실질적인 시술에 들어가려면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지만, 그건 나중 일이었다. 내가 기억을 지우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걸 객관적으로 인정받는다면, 엄마도 동의할 수밖에 없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이 계획을 미리 알게 된다면 분명 반대할 게 뻔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눈물을 흘릴지도 몰랐다. 그러면 마음이 약해지겠지. 면접을 마칠 때까진 아무래도 비밀로 하고 싶었다. 어차피 엄마도 나한테 동의 받지 않고 녀석을 데려왔으니 이건 공평한 일이었다.

 “무섭지 않아? 난 무서워. 엄마도 누나도 다 잊어버리면 어떡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하던 지유에게 뭐라고 그랬더라? 걱정하지 말라고, 너랑 엄마는 빼고 지워 달라 그러면 되지 않냐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던 것 같다. 지유랑 엄마가 내 슬픈 기억의 일부가 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엄마가 이것저것 챙겨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한 발짝 녀석에게 바짝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뭔 생각으로 따라오겠다는 건지 모르겠는데, 성가시게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넌 이게 다 재밌나 본데 난 하나도 재미없으니까.”

녀석은 낯선 정보를 처리하는 것처럼 잠깐 눈을 끔뻑거리더니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수억 만 개의 데이터를 수집해 사람처럼 사고하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든 인간형 안드로이드는 이래서 싫었다. 입력 값에 맞춰 시키는 대로만 하지 않으니까. 녀석을 떼어 놓고 나가고 싶었지만 나 없는데서 엄마한테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저번에 통화할 때 은채도 얘 봤어. 그냥 같이 갔다 올게. 충전도 다 돼 있네.”

별 거 아닌 것처럼 녀석과 함께 다녀오겠다고 하자 엄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둘이서 간다니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비싼 로봇을 잃어버리거나 망가트릴까 봐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소중한 존재를 또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라 기분이 다시 이상해졌다. 엄마는 우리가 현관문을 나설 때까지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초고속 진공 열차를 타고 먼저 은채를 만나러 갔다. 녀석은 잔뜩 들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뭐야. 얜 왜 데려왔어?”

둘레둘레 따라온 녀석을 보며 은채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몰라. 지유 일기장을 봤대. 뭔 말을 기록해놨는지 모르지만 그걸 봤다고 따라오겠대.”

은채는 지유와 똑같이 생긴 녀석이 어지간히 신기한지 한참을 들여다봤다. 녀석은 은채의 정보를 스캔하려다 실패했는지 쭈뼛거리며 물러났다. 은채와 지유가 직접 만난 건 두 번이 다였다. 대부분은 영상으로 만났고 딱 두 번 나랑 같이 셋이서 만난 적이 있는데 당연하게도 그때 엄마는 없었다. 엄마의 기억을 토대로 정보를 수집하는 구조이니 녀석은 은채를 낯설어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런 부분이 나는 힘들었다. 녀석은 엄마와의 기억은 완벽했지만, 나랑 함께 쌓아온 기억은 거의 없었다. 그걸 확인할 때마다 나는, 우리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지유와 나, 둘만 아는 약속들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만약에 내가 기억을 소거하는 데 성공해서 다시 얠 본다면, 나도 엄마랑 비슷하게 굴 수 있을까? 그냥 아, 얘가 내 동생 지유구나, 하고 받아들이고 새로운 기억들을 쌓아나갈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물음들을 애써 잠재우며 나는, 아니 우리는 면접 장소로 향했다. 

“진짜 지울 거야? 부작용 있을 수도 있잖아. 나도 까먹으면 어떡해?”

연구소 앞에 도착하자 은채가 불안한 듯 제 손을 잡아 뜯으며 말했다. 당장 시술을 하는 것도 아니고 면접을 보는 것뿐인데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나도 엄청 떨렸지만 녀석이 보는 앞에서 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태연한 척했다.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은 총 네 명이었는데, 그중 어린애는 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이랑 같이 온 사람도 나뿐이었다. 분명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려고 온 걸 텐데 다들 담담해 보였다. 그래도 속은 알 수 없다는 걸 나는 잘 알았다. 엄마도 밖에선 아무렇지 않아 보일 때가 많았으니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겹으로 보호하듯 가면을 만들어 써야 그나마 멀쩡하게 굴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큰일을 겪어놓고 왜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굴지 않는지 의아한 모양이었다. 화상 수업을 하다 말고 선생님한테 “지후는 왜 울지도 않아요?” 하고 묻는 애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은채가 나서서 너희가 무슨 상관이냐고 따져 주곤 했다. 

사람들이 많아지자 녀석은 급격히 말을 잃었다. 입을 꾹 다물고 정지된 것처럼 의자에 앉아만 있었다. 배터리 문제인가 싶어 나는 녀석의 뒷목 쪽을 슬쩍 확인해보기까지 했다. 

 “이렇게 고장 난 것처럼 굴 거면 왜 따라온 거야?”

괜스레 툴툴거리자 녀석은 나를 올려다봤다.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을 향한 분명한 애정이 담긴 눈빛이었다. 이 역시도 감정 회로를 예민하게 돌려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반응을 보일 수 있도록 설계된 것뿐일 텐데, 묘하게 마음이 울렁거렸다. 

“약속했으니까.”

약속이라니. 지유는 홀로그램 일기에 대체 어떤 걸 남긴 걸까. 녀석이 말하는 약속이 뭔지는 몰랐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무슨 약속을 말하는 건진 몰라도 그건 너랑 한 약속이 아니야. 아무리 내 동생 흉내 내 봤자 넌 그냥 로봇이야.”

단호하고 냉정한 내 말에도 녀석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야, 너무 심하게 그러지 마.”

옆에 있던 은채가 오히려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말렸다.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바람에 사람들의 시선이 다 우리 쪽으로 쏠렸다. 휴먼로이드는 넘버링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겉보기에는 인간과 똑같아 보이는데, 아무도 묻지 않은 정보를 떠벌린 게 머쓱했다. 그때 대기하고 있던 아주머니 중 한 분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얘, 이게……. 아니 이 아이가 정말 로봇이니? 네 동생을 본 떠 만든 거야? 동생이랑 많이 닮았니? 행동도 많이 비슷해?”

아주머니는 머뭇거리던 처음과 달리 무례하게 느껴질 정도로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지유, 아니 녀석을 여기저기 만져보기도 했다. 그러다 이내 텅 빈 눈으로 중얼거렸다.

“돈이 아주 많이 들겠지?”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꾹 깨물었다. 슬쩍 주위를 살펴보자 다른 사람들도 직접 말을 꺼내진 않지만 아주머니와 비슷한 마음인 것 같았다. 어른들의 부러움 섞인 눈초리가 전혀 달갑지 않았다.

“드릴까요?”

“뭐?”

날 선 목소리로 뾰족하게 묻자 아주머니가 멍하니 되물었다. 

“비싸냐고 물어보신 거잖아요. 아마 엄청 비쌀걸요? 근데 전 필요 없거든요. 데려가시든가요.”

버릇없는 내 말투에 화를 낼 법도 한데 아주머니는 말이 없었다. 그리곤 한참 후에 그냥 미안하다고 했다. 사과를 듣는 순간 어째서인지 눈물이 핑 돌 것 같았다. 사실, 아주머니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 대체될 수 없는 걸 어떻게든 대체해 보려 하는 건데, 아예 다른 대체품이 필요할 리 없었다. 아주머니의 모습 위로 자꾸 엄마의 모습이 겹쳤다.

“괜찮아?”

지켜보고 있던 은채가 다가와 내 손을 잡아주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이토록 격렬한 감정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눈치를 살피며 앉아 있던 녀석은 은채의 행동을 따라했다. 슬그머니 내 손을 잡은 것이다. 온도 회로가 고장 나지 않는 이상 36.5도의 평균 온도를 항상 유지 할 녀석의 손은 따뜻했다. 어째서인지 움츠러든 녀석의 손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나는 마지막 차례였다. 면접은 간단했다. 엄청나게 긴장했던 게 창피할 정도였다. 기억을 소거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부적합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 소거를 원하는지, 원하는 부분만 딱 도려내기는 어려워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했는지 등을 물어봤다. 나는 당연히 다 이해하고 절실히 원하고 부작용이 생겨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보호자의 동의하에 온 게 맞냐는 확인에는 멈칫했지만 이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면접관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직 많이 어린데. 기억을 소거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가 뭔가요?”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대답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말문이 턱 막혔다. 숨까지 가빠지는 것 같아 상담사 선생님에게 배운 대로 얼른 숫자를 거꾸로 세며 심호흡을 했다. 엄마의 얼굴과 지유의 얼굴이 차례로 스쳐지나갔다.

“왜 하필 이런 일이 우리한테 생긴 건지 그만 생각하고 싶어요.”

가까스로 뱉은 말의 소리는 혼잣말처럼 작았다. 하지만 면접관은 제대로 알아들은 것 같았다. 

“어떻게 됐어? 잘 됐어? 뭐래?”

밖으로 나가자 은채가 호들갑스럽게 연달아 질문을 했다.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 하며 대답을 피했다. 은채는 더 물어보는 대신 다른 말들을 한없이 쫑알거렸다. 

“아, 맞다. 우리 집에 바로 가지 말고 별구경하고 갈까? 오늘 행성들이 일렬로 정렬하는 날이래. 완전 귀한 구경인데 놓칠 수 없지.”

들뜬 은채의 말에 나는 말없이 우리를 따라오고 있는 녀석을 돌아봤다. 녀석은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무심한 그 얼굴을 보자 가까스로 누르고 있던 뭔가가 또 치밀어 올랐다. 나는 녀석의 앞을 가로막고 서서 시비를 걸듯 녀석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야, 너는 대체 뭘 기억해? 엄마랑 공유하는 기억 중에 쓸 데 있는 게 있긴 해?”

공격적인 내 태도에 당황한 은채는 입을 다물었다. 녀석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나를 쳐다보다가 떠듬떠듬 대답했다. 

“어……. 누나가 자장가 부르면서 업어준 거, 알약 대신 먹어주다 혼난 거, 누나 화장실 갔는데 없어진 줄 알고 막 운 거……. 또…….”

녀석은 엄마가 기억하고 있을 나와 지유의 모습들을 중얼중얼 읊었다. 그건 대체로 지금보다 훨씬 오래전의 일들이었다.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예전 일들이 엄마에겐 여전히 생생하기만 한 걸까? 나는 차라리 다 지워버리고 싶었는데, 엄마는 더 기억하고 싶어서 얠 데려온 걸까? 녀석은 명령을 수행하듯 끊임없이 엄마와 공유하고 있는 기억들을 이야기했다. 그만하라고, 이제 됐다고 할 때까지.

아마 엄마는 몰랐나 보다.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죽 늘어선 것처럼 보이는 행성 정렬일을 지유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18년 만에 한 번 볼 수 있는 거라고 얼마나 들떠 있었는지. 엄마의 기억 속 지유와 내 기억 속의 지유는 같으면서도 달랐다.

“누나, 나랑 같이 가 줄 거지? 어른 돼서도 또 보러 가줘야 돼. 알았지?”

묻고 또 묻고. 알람을 수십 개 맞춰 놓고도 안심이 안 되는지 자꾸만 물어보던 모습이 떠오르자 더 버틸 수가 없었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기어이 울음이 터졌다.

“지후야!”

 놀란 은채가 덩달아 내 옆에 쪼그려 앉아 내 등을 토닥여줬다. 녀석도 어쩔 줄 몰라 하며 우리 주위를 서성거렸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다쳤어?”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알고 온 건지 엄마가 저만치서부터 달려와 나를 덥석 안았다. 혹시라도 내가 아플까 봐 머리며 어깨며 닿는 데마다 힘도 싣지 않고 더듬어보는 엄마의 손이 마구 떨리고 있었다.

“엄마……. 나 지유 보고 싶어. 지유가 너무 너무 보고 싶어.”

왜 여기 있냐고, 연구소 사람들이 연락한 거냐고, 그럼 다 들었을 테니까 허락해줄 거냐고.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는데 그 말들은 다 사그라져버리고, 저 깊이 담아 놨던 말만 자꾸 넘치듯 흘러나왔다. 엉엉 울며 말 하는 나를 엄마는 그저 꽉 끌어안아 주었다. 

“……지후야. 엄마도 지유가 보고 싶었어. 이렇게라도 우리 지유가 너무, 보고 싶었어.”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엄마가 울까 봐 내내 무서웠는데, 내가 더 크게 울고 있어서인지 오히려 우리가 같은 마음이라는 것만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엄마랑 나는 그대로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다 비틀비틀 일어났다. 

“괜찮아?”

은채가 재빨리 눈물을 훔쳐내며 물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은채는 젖은 내 뺨을 손등으로 슥슥 문질러 닦아줬다. 그때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울지 마.”

녀석은 엄마에게 매달리듯 안겨 울고 있었다. 센서로 엄마의 감정 기복을 감지한 녀석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엄마에게 자꾸만 파고들었다. 눈 속에 삽입된 눈물주머니를 통해 흘러내리고 있을 눈물은 우리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엄마가 눈을 꽉 감으며 녀석을 끌어안았다. 지금, 이 순간 엄마가 진짜로 끌어안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 너무나 잘 알 것 같았다.

주위는 금방 어둑해졌다. 우리는 넷이 함께 행성 정렬을 보러 가기로 했다. 나는 엄마에게 지유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말해줬다. 

“지후 누나랑 약속한 게 있다고 좋아하더니. 둘이서 우주쇼 보러 갈 계획이었구나?”

엄마가 내 머리칼을 가볍게 흐트러트리며 픽 웃었다. 우리는 항상 둘이서 뭔가를 꾸몄고 뭔가를 숨겼고 그러다 엄마에게 짜잔 하고 말해주길 좋아했다. 그건 다 별거 아닌 일들이었고 그럴 때면 엄마는 피식 웃으며 장단을 맞춰주었다. 엄마가 예전처럼 웃자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지유 얘기를 하면서 웃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그냥 나도 따라 웃어버렸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솔직히, 아무 예고도 없이 하늘에서 비행기가 떨어지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된 후로 하늘을 똑바로 보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저 캄캄한 하늘에서 자그맣게 빛나는 별들을 찾으려면 오래 고개를 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둥글고 환한 달 주위로 별들이 점점이 빛나는 게 보였다. 제각각의 속도로 돌고 있던 행성들이 어떤 우연으로 밤하늘에 죽 늘어서게 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저마다의 자리에서 빛을 내는 별들은 확실히 아름다웠다. 나는 대각선으로 쭉 늘어선 별들을 바라보다 녀석을 봤다. 감정 분석과 데이터 처리에 에너지를 많이 썼는지 녀석의 목 뒤에 있는 충전 단자가 아까부터 초록빛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어쩌면 엄마가 녀석을 업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녀석을 불렀다. 

“야, 이제 말해 봐. 지유가 약속했다는 게 대체 뭐야?”

내가 묻자 은채와 엄마도 궁금하다는 듯 녀석을 바라봤다. 녀석은 눈을 끔뻑거리다가 대답했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 생기면 나를 데려간다고 했잖아.”

아. 그제야 또렷하게 기억이 떠올랐다. 녀석의 목소리 위로 지유의 목소리가 겹쳤다. 

 “혹시 너무 슬픈 일이 생겨서 기억을 지우고 싶어지면 꼭 날 데려가. 누나가 날 잊어버려도 난 절대 누나 안 잊어버릴 거니까.”

뭐가 그렇게 불안했는지 거듭 약속을 받아내던 지유의 모습이 떠올랐다.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지는 교육 영상이 하도 지루해 하품만 하던 나는, 알겠으니까 조용히 좀 하라고 대충 대답했다. 지유는 그 성의 없는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그 약속을 잊기 싫어서 홀로그램 일기에 저장해둔 것이었다.

“나랑 같이 가기로 한 건…….”

“알아. 근데 나도 지유잖아. 지후 누나 동생.”

녀석은 순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말을 잃고 녀석을 바라봤다. 우리 둘 다 앉아 있어서인지 한 뼘 반이라는 키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윤지유. 열 살. 엄마 아들. 윤지후 동생. 많은 것들이 업데이트되더라도 절대 변하지 않을 녀석의 기본값들이었다. 그렇게 제작했으니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녀석이 자랄 일은 없었다. 고장이 나기 전까진 영원히 열 살에 머물러 있겠지. 영영 한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게 된 지유를 대신해서. 

나는 손가락을 튕겨 녀석의 이마를 가볍게 쳤다. 지유가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을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녀석은 아야 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제 집에 가자. 얘 충전해야겠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엄마도 녀석도 은채도 주춤주춤 따라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문득 어디서든 가만 올려다보기만 해도 영원한 이별의 행성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어떤 별들은 우리의 눈에 보이고 어떤 별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걸까. 어째서, 우리는 이 별에서 다시 만날 수 없게 된 걸까. 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답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조각난 심장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 따윈 없는 것처럼 그 답도 영영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저 이 별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것뿐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 이번 주에 우리 지유 만나러 갈까?”

내가 묻자 엄마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엄마는 곧 일그러진 미소를 애써 만들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쟤도 데려가자. 가서 지유 투라고 소개 해 주자.”

저를 가리키며 “지유 투!” 하고 부르자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촌스럽게 지유 투가 뭐냐며 은채가 옆에서 타박했다. 차라리 지유 지후 따서 유후는 어떠냐며 놀려댔다. 

“뭐래. 그게 훨씬 이상하잖아.”

말을 뱉어 놓고 나는 피식 웃었다. 만약 여기 지유가 있었다면 “유후, 유후, 유후!” 하고 희한한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닐 것 같아서였다. 그 모습을 상상한 나는 결국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마지막에 눈물이 다시 찔끔 나긴 했지만 괜찮았다. 상상 속의 지유가 너무 환하게 웃고 있었으니까. 불쑥 녀석이 엄마와 내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우리의 손을 꽉 잡았다. 어째서인지 이 순간만큼은 사람의 정상 체온과 똑같이 맞춰진 그 온기가 싫지 않았다. 나는 처음으로 녀석의 손을 마주잡았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72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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