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릭 모디아노 장편소설 <<지평>>중에서
<우리의 말들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과연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 서로 나누었던 말들이, 마치 그것들이 입 밖으로 아예 나와보지 못한 것처럼 그저 무無 속에 흩어져 사라져버렸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러면 그 나직한 목소리들은? 지난 백 년 동안 전화로 나누었던 그 대화들은? 귀에 대고 속삭였던 그 무수한 말들은? 하도 하찮아서 하릴없이 망각되어버린 그 모든 문장의 조각들은? (...)
혹 이 모든 말들이 세상이 다하는 날까지 허공에 그대로 걸려있어, 조금만 침묵하고 주의를 기울여도 그 메아리를 붙잡을 수 있는 것이라면?
파트릭 모디아노 장편소설 『지평』 중
과학은 밝힐 수 없을 것 같다. 우리의 말들이 모여있는 창고가 어디에 존재하는지. 우주인들은 알아낼 수 있나? 창조주는 가능하실까? 모디아노의 궁금증은 오늘 내 생각이 되었다. 지난 수만 년 동안 우리가 나누었던 그 많은 말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정말 사라졌을까?
지난밤, 친지들의 방문이 미루어져 모처럼 여유로운 설 저녁을 맞이한 우리는 가족끼리 와인을 한 잔씩 하기로 했다. 큰딸 내외가 가지고 온 양젖으로 만들었다는 치즈와 얼마 전 선물로 들어온 케비어가 안주였다. 케비어를 먹어본 적이 없는 우리는 인터넷을 검색하며 소란을 피웠다. 이야기의 주제는 다양했다. 우리 부부의 노후 건강에 관한 이야기, 회식 자리에서 마셨던 술에 관한 이야기, 벌써 6년 차가 된 아이들의 직장 이야기,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둘째 딸 이야기 등. 어떤 순서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각자의 뇌 속에서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꺼내면 그것이 주제가 되었다. 시간이 급하게 지나갔다. 즐거운 대화 이후에는 마음이 편안하다. 행복한 대화는 나중까지 기분이 좋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젯밤의 대화 내용은 잊히겠지만 따뜻하고 좋았던 분위기는 기억날 것이다.
어떤 대화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군더더기 같았던 주변의 언어는 다 떨어져 나가고 알맹이만 남아서 더 강력하게 기억된다. 어느날 갑자기 알맹이가 생각 안으로 들어오면 그때의 분위기도 소환된다. 그럴 때 그 언어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언어들의 창고는 어디에 있을까? 과학은 나의 뇌 속 기억회로에 저장되었다가 오는 것이라고 말하겠으나, 하나님만 아시는 ‘눈의 창고’가 있는 것처럼 어딘가엔 ‘말의 창고’도 있을 것 같다. 내가 혼자 소리쳤던 못된 말과 누군가와 나누었던 나쁜 말까지 모두 다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을 것 같다. 말은 무게가 너무 가벼워서 존재감도 없이 허공에 떠돌다가 누군가 지난 기억을 떠올리려고 할 때 문이 열리고 미쳐 기억하지 못했던 것들까지 함께 나오는 것 같다. 어떤 말의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어떤 말의 기억은 아주 사라져 버린다. “혹 이 모든 말들이 세상이 다하는 날까지 허공에 그대로 걸려있어, 조금만 침묵하고 주의를 기울여도 그 메아리를 붙잡을 수 있는 것이라면?” 고운 말 행복한 말로 허공에 걸어두어야 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