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시 <오늘의 바다>
16.
<나의 바다>
바다를 볼 수 있을 거요
어제의 바다나/ 내일의 바다가 아니라/ 오늘의 바다를
어제의 당신이나/ 내일의 당신이 아니라/ 오늘의 당신이
류시화 시 <오늘의 바다>중에서
바다는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바라보는 곳엔 누워있는 산과, 불 꺼진 집과 얼지 않은 작은 냇물이 있습니다. 이곳은 어둠뿐입니다. 하늘이 문을 열지 않으면 바다도 캄캄합니다. 그때에도 이곳에 바다는 없습니다. 멀리서부터 파도가 일기 시작하고, 넘실거리며 육지를 향해 들어올 때 아이처럼 팔짝대며 환영해줄 바다는 없습니다. 발가락 사이로 모래알갱이가 침범하고, 아무리 털어내도 여기저기 묻어나는 비린내는 여기 없습니다. 먹구름으로 잔뜩 가려진 수평선, 태양이 떠오르기를 손모아 빌고 있는 바다는 없습니다.
바다는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눈은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바다 속에 있습니다. 그러니 바다를 바라 볼 수 없습니다. 바다는 겪어내는 것입니다. 잔잔한 바다속에 함께 있는 내 몸은 평안합니다. 휘청거리는 파도속에 있는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됩니다. 바다는 평안이었다가 전쟁이기도 합니다.
바다는 내 속에 있습니다. 해일이 입니다. 온 세상을 덮어버릴만큼 큰 파도입니다. 먼곳에서 시작한 해일은 내 몸을 휘청거리게 합니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맞섭니다. 몸은 속과 밖이 하나입니다. 파도와 바다가 하나인 것처럼, 속에서 일어난 해일은 몸을 휘청거리게 하고나서 사그라듭니다.
세상의 모든 곳이 바다입니다. 바다와 함께 오늘의 내가 어제로 건너갑니다. 어제의 바다는 이미 지나왔고, 파도가 흰포말을 일으킨 뒤 사라지듯이 기억속에서 사그라집니다. “오늘의 바다”에도 풍랑이 일고, 온 몸으로 맞서며 버티고 지나갑니다. 내가 바라보는 바다는 “어제의 당신이나 내일의 당신이 아니라” 늘 오늘의 바다, 오늘의 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