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감독이 휴가를 쓴 날 내게 놀러 왔다. 나보다 떡볶이를 더 좋아하는 그 사람을 위해 더운 부엌에서 떡볶이를 만들고 있었다. 통통한 가래떡에 두툼한 어묵을 썰어 넣고, 학석박 연구가님들이 만든 소스를 남김없이 부어 넣었다. 얼추 완성하니 띵감독이 도착했고, 삶은 달걀과 간단히 만든 샐러드를 같이 내었다. 그의 손에는 라임 맛 탄산수 한 병과 썬칩 한 봉지가 들려있었다. 그는 썬칩과 치토스 같은 빨간색 과자를 좋아한다. 내심 꼬깔콘 군옥수수맛을 먹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새빨간 봉투를 보니 마음이 족했다. 한 입씩 먹는데, 떡에 간이 배지 않은 건지 은근히 밍밍했다. 평소 라면 물을 맞추는 것이 어려운 나는 이번에도 물을 많이 넣었나보다. 그래도 띵감독은 맛있다며 푸근히 먹었다. 그릇을 싹싹 비운 우리는 썬칩까지 단숨에 해치웠다. 곧이어 설거지를 그 누구보다 꼼꼼히 하며 싱크대 구석구석을 닦는 그에게 얼렁뚱땅한 내 성격이 들킨 것 같아 민망했다.
버스를 타고 영화관에 갔다. 햇빛은 강했지만 바람이 불어 시원했다. 영화관에서 먹는 팝콘을 좋아하는데 최근 팝콘이 몸에 좋지 않다는 진실(상상으로 느끼는 것과 팝콘의 나쁜 점을 나열한 글을 읽는 건 죄책감의 무게가 다르다.) 을 마주하고 이번에는 먹지 않았다. 대신 편의점에서 에이스 과자를 샀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에이스나 팝콘이나 몸에 안 좋은 건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한다. 다음부터는 역시 둥그런 팝콘을 안고 들어가야겠다. 스파이더맨은 2초도 지루할 틈 없이 장면이 휙휙 바뀌었고 상영 내내 눈과 귀가 화려했다. 그렇게 서른 번째 진한 도파민을 느낄 무렵, 영화가 끝났다. 3편이 나올지 몰랐는데 몇 년 후 또 찾게 되겠다. 스파이더맨을 좋아하는 띵감독은 큰 감명을 받은 듯했고, 주변에서도 감동 섞인 분석을 열렬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엔딩크레딧이 모두 올라가는 것을 본 후 우리는 걸어 나왔다. 스파이더맨에 대한 지식이 얕은 나는 그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고, 그는 적절한 대답과 함께 짧은 감상평도 덧붙였다. 듣고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끈끈한 세계관이었고, 뒤늦게 여린 감동을 한 번 더 느꼈다.
많은 분들이 피와 땀에 더불어 진한 애정을 품고 만든 작품이라는 게 느껴졌다. 화자의 관점에 따라 스토리의 구성과 표현방식은 천차만별이다. 모두에게 일정하게 주어진 맥락이 있어도 그것에 어느 만큼 애정을 가지는지에 따라 이야기는 살거나 죽는다. 이야기는 생물과 같아서 애정의 온도를 기가 막히게 잘 파악하기 때문에, 그 사랑에 반응하려 한다. 사랑은 어디에나 닿을 수 있는 에너지니까. 나는 내 방에 있는 토순이(토끼 인형)도 사랑하고, 초록이(무럭무럭 자라는 화분)도 사랑한다. 매일 그들에게 에너지를 주는 덕분인지 어디 도망가지 않고 곁에 잘 있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이,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들이 사라지지 않고 오래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