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의 소소한 시간
나 같은 경우에는 누구한테 말하기도 부끄러운 정말 소소한 것들이 가장 그리운 것 같다.
정말 별거 아닌 둘만의 정해진 일과라던가 약속이라던가 하는 것들이다.
연인이건, 친구건, 가족이건 정말로 가까운 사람들과의 그리운 시간들이란 그런 순간들이 아닐까 싶다.
일본에 돌아와서 가족과 함께 지낸 순간들 중에 그리운 시간들이란 역시 그런 것들이다.
매일 또는 매주 했던 우리들만의 정해진 크고 작은 일들.
엄마와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 사이에는 소소한 루틴들이 생겼다.
그 소소한 루틴들은 24시간 중에 자잘하게 흩뿌려져 있다. 심지어 한 밤중까지 말이다.
우리의 아침 루틴만 간단히 기록해보고자 한다.
아침에 우리는 항상 각자의 이부자리 정리를 하고 거실로 걸어 나와서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먼저 몇 가지 일을 시작했다. 제일 먼저 따뜻한 물 한잔을 마신다. 먼저 일어난 사람이 포트에 물을 채우고 보글보글 끓여 둔다. 나는 레몬즙을 가끔 넣어 마시기도 했다. 엄마는 이 일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매일 아침 내게 물을 마셨는지 물어보셨다.
베란다로 가서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에도 환기는 꼭 했다. 그리고 엄마가 가게를 하셨을 때부터 살았던 이제는 몇 살이 되었는지도 까먹을 정도로 장수하고 있는 금붕어들에게 먹이를 뿌려준다. 눈이 멀은 녀석도 있었는데 이제 그냥 감으로 아는 건지 내가 어항 앞으로만 가도 모여들어 입을 뻐끔뻐끔 댔다.
엄마는 조금 부지런한 날은 아침에 스트레칭을 하고 나도 옆에서 따라 하거나 책을 읽었다.
아침 먹기 전까지 배고프지 않게 건강에 좋은 걸 마셔두어야 한다며 엄마는 매일 아침 야채주스를 믹서로 갈아주셨다. 엄마가 이 글을 보지 못하길 바라며 고백하자면 사실 이 주스는 경상도 말로 "니맛도 내 맛도" 없다. 아마도 원료의 50% 이상이 양배추이기 때문일 것이다. 양배추에 토마토와 당근, 그리고 우유와 꿀이 들어간다. 게다가 곱게 갈 린 덩어리를 삼키는 느낌에 가까웠기 때문에 더 먹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엄마가 매일 아침에 정성으로 갈아주시는 것을 안 먹는다고 할 용기가 없어서 나는 지내는 내내 매일 아침 먹었다. 하지만 동생은 이 주스를 먹고 출근하는 버스에서 거의 토할 뻔 한 이후로 마시는 것을 거부했다.
엄마의 야채주스는 그리 유쾌한 시간은 아니지만 이 것만 빼면 사실 우리의 많은 루틴들은 대개 달달하고 건강한 것들이었다.
아침은 대체로 엄마가 준비하고 나는 설거지를 도맡아 했다. 설거지를 하고 나면 우리는 꼭 커피를 한 잔 씩 마셨는데, 드립 커피냐, 커피믹스냐 2가지 선택이 있었다. 엄마는 드립 커피는 비싸다며 항상 나나 먹으라고 하셨다. 따지자면 개당 80-100원 정도 하는 드립 커피를 엄마는 기어코 아깝다며 거의 매일 아침 커피믹스를 선택했는데, 커피믹스를 엄마는 항상 꼰대라떼라고 불렀다. 믹스커피는 달아서 잘 안 먹던 나도 언젠가부터 요 꼰대라떼마시게 됐는데, 이렇게 커피를 한 잔씩을 마시고 나면 이제야 각자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같이 지내는 동안 여행도 다녀왔고 맛있는 것도 같이 많이 만들어먹었지만, 지나고 나서 그 시간을 떠올렸을 때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것은 매일 아침 엄마와 커피 한 잔을 꼭 마셨던 그 시간이다.
"엄마 뭘로 할래?"라고 물으면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엄마는 꼰대라떼~"라고 대답하고, 커피를 가져가면 함박웃음을 짓던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하루하루 일상을 지내다 보면 매일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서 지겨워질 때가 있다.
삶에 변화가 없는 것 같고, 챗바퀴만 도는 것 같은 인생 노잼인 시기도 있다.
하지만 과거에 그랬던 시간들 중에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운 순간들이 있다.
지금 이 조금은 지루한 일상도 언젠가 그리워질 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소중해진다. 게다가 몇 십원 하는 꼰대라떼 한 잔이라도 나눌 사람이 그 일상에 있다면, 충분히 감사할만한 시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