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등산을 하는 이유
등산을 하면서 들은 이야기 중에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이 있다. <무소유>를 집필 하신 것으로 유명하신 법정스님의 등산에 대한 견해다. 법정스님께서는 산을 오른다고 표현하시지 않았다고 한다. "산에 든다"라고 하셨다. 산을 오르는 것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고 산에 든다는 것은 자연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깊게 생각해서, 정상을 목표로 산을 오르다 보면 등산은 목표 달성을 위한 과정에 불과하고 단순한 스포츠에 가깝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 과정이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등산을 산에 든다고 생각하면 각자의 체력에 맞는 속도로 굳이 정상까지 무리하게 가지 않아도 괜찮고 등산을 하는 시간 동안 자연을 느끼고 그에 맞게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다. 누군가 인간은 자연과 함께할 때 가장 힘을 얻는다고 했던가. 바로 산에 든다는 것이 그런 게 아닐까.
내가 등산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몇 가지로 추릴 수 있다. 먼저 위에서 언급했듯이 자연과 함께하면서 행복감을 느낀다. 내 두 다리로 바위며 흙이며 계단들을 오를 때, 숨을 몰아쉬며 살아있음을 체감한다. 이내 나무들과 맑은 하늘을 보면 내면이 트이는 기분이고 현실과 다른 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등산은 축구와는 다르게 경쟁하는 활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등산 역시 축구와 마찬가지로 역동적이고 숨이 차지만 내면의 세계는 다르다. 축구는 경쟁과 승부의 세계인 반면, 등산은 향유와 인내의 세계다. 혼자 간다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되돌아볼 수 있고, 함께 간다면 같이 오르는 이와 생각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
사실 제일 중요한 건 등산을 하면 모든 음식이 맛있기 때문이다. 틀에 박힌 것만 같은 속담인 '금강산도 식후경'은 절대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문장이다. 움직임과 먹는 것은 철저한 연결고리다. 움직여서 먹고, 먹어서 움직인다. 이 기막힌 연결고리를 등산에서 꿰매는 순간은 찬란하다.
내가 등산에 빠진 이유도 겨울산에서 먹은 육개장 컵라면 한 사발이었다. 눈도 뜨지 못한 새벽부터 보온병에 담아온 뜨거운 물은 산을 올라가는 내내 그 따뜻함을 간직하여 라면 국물로써 춥고 지친 속을 달래주었다. 등산을 좋아하는 친구가 알려준 그 따뜻함을 언젠가부터 나도 주변인에게 전달하고 있다.
얼마 전 친구들과 고대산을 다녀왔다. 연천에 위치한 고대산은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거주지를 벗어나지 못하면 오르지 못하는 곳이다. 새로운 곳을 간다는 것은 귀찮아도 설레고 번거로워서 더 의미 있고 가치가 있다.
그날은 오전에 비가 왔다. 보통 등산을 가는 날에 비가 오면 막막하다. 우산을 쓰고 등산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운치라 여기며 우비를 입고 등산을 시작했다. 언제 비 오는 날 등산을 해보겠느냐며. 불운이라 여기는 것을 행운과 행복으로 만들 때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올라가는 동안 비는 그쳤고 정상에 도달했을 때 비구름과 안개가 걷혀 북한 땅이 보였다. 뉴스나 신문에서만 보던 북한을 산에 오르면 볼 수 있다는 게 낯설게 느껴졌다. 보지 못할 줄 알았던 풍경을 보니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해서 행복했다. 전날부터 준비한 샐러드, 맛집에서 사 온 김밥, 브이로그를 하겠다며 남겨준 영상들까지 등산을 함께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감사함이다. 추억은 사진과 영상에 남아있겠지만 고맙고 사랑하는 마음은 아직 내 마음에 고스란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