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늘 쓰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요즘 내가 갖고 싶은 것 1

211107

by 지야 Feb 13. 2024

  나의 물욕은 실로 대단한 것은 아니다. 다만 집요한 데가 있어서 눈에 들면 언제까지 기억하고 있다가 품절이 되거나 대체품을 찾거나 하지 않으면 기어코 손에 넣고 만다. 일 년이고 이년이고 기다리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신랑은 그 유명한 소비조장 문구를 고민하는 나에게 항상 툭하고 던진다.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


  이 문장은 생각보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어서 고민 기간을 아주 짧게 만들어주었다. 십만 원 미만의 물건에 대해서 말이다. 더 비싼 물건은 내가 고민하고 있는 사이 집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나의 고민을 갑갑하게 여긴 신랑이 주문을 해버리는 것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식욕과 함께 사라진 물욕이 돌아왔다. 갖고 싶은 물건이 생겼다. 바로 다기 세트! 별그램의 광고 창에 어느 날 떡 하니 나타났는데 그 자태가 마음에 들어버렸다. 브랜드도 이름도 없는 이 다기 세트의 간결함과 따스함을 보고 있자면 당장 차 한 잔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든다. 반해 버렸다는 말이다. 


  300ml 될까 한 유리 숙우와 이 숙우와 일체인 듯 지만 분리 가능한 거름망. 찻잔 세 개가 안전 한 케이스 속에 담겨 있다. 투명한 유리로 된 숙우는 촘촘하게 새로로 굴곡져 있다. 오골오골 한 모양이 옛날 할머니집 미닫이의 유리를 떠올리게 한다. 차를 따르기 쉽게 뾰족한 부리가 숙우 끝에 나와 있는 게 귀엽다. 유리 숙우 입구 부분은 바깥쪽으로 말려 있는다. 말려 있는 곳에서 아래로 3분의 1 정도가 호두나무로 감싸져 있다. 어두운 월넛 색상의 나무 부분은 손잡이가 없는 숙우를 잡는 데 쓰인다. 뜨거운 숙우를 잡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배려이다. 투명하지만 올록 올록한 왜곡이 생기는 유리와 어둡지만 따스한 나무의 조화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줄 것만 같다.


  유리 숙우 안에는 하얀색이 많이 섞인 크림색 도자기 거름망이 들어 있다. 이 거름망은 숙우와 비슷한 길이라 투명한 숙우를 부드러운 크림색으로 만든다. 숙우의 말린 끝부분에 탄탄하게 자신의 입구를 걸치고 있다. 숙우 안쪽으로 떨어질까 걱정하기에는 거름망의 테두리가 꽤 두껍다. 거름망 벽 쪽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이 뽕뽕 뚫려 있는데, 차를 우리면 맑은 차의 색이 그곳에서부터 흘러나올 것이다. 


  거름망은 뚜껑이 있다. 근데 이게 또 예쁨을 뽐낸다. 거름망과 같은 색, 같은 재질로 되어 있는 뚜껑은 납작한 꿀호떡 모양이다. (삼립에서 만드는 미니 호떡을 아는가?) 뚜껑 가운데에 숙우를 감싸고 있는 나무 부분과 같은 색, 같은 재질의 동전 같이 납작한 손잡이가 붙어 있다. 뚜껑의 4분의 3 정도 크기일까? 이 손잡이는 납작해서 뚜껑을 뒤집어 그 위에 거름망을 올려 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손잡이의 가장 큰 역할은 바로 예쁨이다. 유리 숙우와 도자기 거름망을 한 가족으로 묶어주는 역할은 이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이 다기 세트의 예쁨은 이 뚜껑에서 오는 것이다.


  거름망과 같은 색의 도자기 찻잔이 세 개 들어 있다. 50ml 정도 되는 작은 잔인데 종이 소주잔 비슷하다. 조금 더 얄쌍한 모양에 위쪽 동그란 테두리 대신 아래쪽에 낮은 굽이 보일락 말락하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모양이다. 이걸 누구 코에 붙이나 싶게 작지만 중국식 찻잔은 다 고만고만하게 작으니까. 캠핑용이라더니 착착 쌓으면 도자기 거름망 속에 쏙 들어간다. 나에겐 필요하지 않은 잔이지만 자리차지 않고 보관할 수 있으니 이 또한 마음에 든다. 


  이 다기 세트는 가격도 너무 마음에 드는 게 오만 원이 채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몇 주째 고민 중인 이유는 하나이다. 다른 차 우림 도구가 기억난 것이다. 


  원래 사용하던 티팟이 오래되어 착색을 해결할 수 없다 느낄 즈음, 유리로 된 티머그를 발견했었다. 그게 벌써 일 년 하고도 몇 달 전의 일이다. 나의 티팟의 문제는 단연코 세척인데 이 티머그는 거름망이 무려 스테인리스였다. 색깔이 변하고, 찻잎 부스러기가 끼이고 하는 일이 생길 수 없는 것이다. 이 티머그는 앞의 다기세트와 다르게 ‘쏘 심플’이다. 내열유리 재질의 투명한 원기둥 모양, 거기에 붙어 있는 적당한 크기의 디귿자 손잡이. 거름망과 같은 재질의 심플한 뚜껑도 있다. 단 하나의 굴곡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뚜껑에서부터 머그 바닥까지 쭉 뻗은 직선이 눈에 시원한 맛을 준다. 유리는 얇게 가공되어 가볍고 굽이 없어 깨끗하다. 500ml나 되는 용량도 마음에 든다. 사실, 커피든 차든 한 번에 라지 사이즈 정도는 마시지 않는가? 가격? 이 머그는 모든 비용을 다 합해도 만 원짜리 두 장을 넘지 않는다. 


  이러니 고민이다. 분명 집에 가져다 놓으면 심플한 티머그의 사용빈도가 훨씬 높을 것이다. 하지만 다기세트의 따스한 예쁨을 놓치고 싶지 않다. 차라리 어느 한쪽이 고민도 할 수 없게 비싸기라도 했으면… 이 고민 중에 사용하지 않고 방치되어 있던 또 다른 티팟 세트가 팔렸다. 딱 다기세트의 가격이다. 자, 어떻게 하겠는가? 무엇을 사는 것이 좋을까?


TMI 1> 이 글을 쓴 지 2년 반이 된 지금. 다기세트도, 티머그도 구입하지 않았다. 원래 사용하던 티팟의 착색 문제를 해결했다. 여전히 잘 쓰고 있다.


TMI 2> 다기 세트는 이 제품이었고, 3년 사이 가격도 좀 올랐다.

             https://bubuteahouse.com/326/?idx=125 

            티머그는 사마도요의 이 제품이다.

            https://smartstore.naver.com/samadoyo/products/3185911980

매거진의 이전글 비생활인의 걷기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