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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Jan 29. 2024

'이니셰린의 밴시'가 찾아온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를 보고

출처: 네이버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가 찾아온다. 죽음이 부른다. 죽음은 질문하지 않는 자를 데려간다. 질문에 답하면 변화한다. 이상의 추구는 일상을 억압한다. 억압당한 일상이 이상의 발목을 잡는다. 이상은 닿을 수 없고 일상은 흐를 수 없다. 둘은 충돌한다. 서로가 서로를 파괴한다. 죽음은 웃는다. 그들은 이니셰린에 유예되었다. 오직 이상과 일상을 통합하여 죽음에게 답한 자만이 강을 건너 새로운 세계로 떠날 수 있다. 비록 그곳 또한 죽음에 속한 땅일지라도. 




하나의 세계에서 관성처럼 일상을 보내는 날, 죽음이 찾아온다. 죽음이 던지는 질문은 까다롭다. 모든 걸 앗아가고 모든 걸 지워버릴 죽음 앞에서 과연 당신의 삶은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인가? 갑자기 삶이 허무해진다. 그러니 죽음 앞에서 우울해진다. 고로 이니셰린에 사는 모든 이가 우울하다.


도미닉은 죽음을 보지 않는다. 죽음의 소리도 듣지 않고 죽음을 무시한다.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억울하게 핍박받는, 누구보다 우울한 일상을 보내는 도미닉만은 우울하지 않다. 죽음에게 질문을 받지 않았기에. 우울해하는 이들에게 왜 이리 울상이냐고 묻던, 영원히 피터팬처럼 어린아이로 남아있을 도미닉을, 죽음은 가장 먼저 데려간다. 



콜름은 죽음의 질문에 두렵다. 이제까지 살아온 삶과 자신을 부정하며 자신이 아닌 위대한 가치를 추구하겠노라 다짐한다. 사랑했던 유일하게 다정한 관계, 콜롬과의 우정을 죽음 앞 희생물로 바쳤다. 죽고 싶지 않다. 죽음 앞에 허무해지고 싶지 않다. 모든 걸 내려 두고 모든 걸 바꿀게. 더 이상 자신으로 살지 않을게. 일상의 즐거움을 포기할게. 그러니 제발 죽기 전 이 허무를 조금만 덜어줘. 죽음에게 애원한다. 


그러나 두려움은 답이 아니다. 두려움은 죽음에게 들리지 않는다. 두려움은 인간들의 몫이다. 콜롬이 두려워할수록 허무는 커진다. 자신이 무엇을 하든 죽음을 뛰어넘는 이상에 결코 도달할 수 없기에.




파우릭은 무의식적으로 일상을 지켜왔다. 다정하고 즐겁게 평범하게 산다. 술을 먹어 정신을 잃지 않는 한 그 역시 자신의 답을 모른다. 다정함은 그에게 죽음을 방어하는 미약한 방패였다. 그러나 콜름의 두려움이 변화를 만들었다. 콜롬의 진동이 파우릭을 상처 주며 일상을 흔들어 파우릭의 삶에 거대한 질문을 던졌다. 너의 다정함이 소용없어지면 어떠하겠는가?


파우릭의 답은 충분치 않았다. 그건 독립적으로 쟁취하고 완성할 수 없는, 의존적이고 불완전한 답이다. 파우릭은 믿을 수 없다. 허무 앞에 다른 답, 새로운 답을 찾을 수 없다. 왜 변해야 하지? 변화하고 싶지 않다. 그저 똑같이 살면 안 되나? 예전처럼 지내면 안 되나? 이젠 파우릭도 두렵다. 두려움이 전염되었다.


일상의 균열, 의도치 않은 사고, 소중히 지켜온 제니의 죽음, 다정함의 죽음, 당신은 더 이상 다정하지 않아요. 다정하지 않는 그는 누구이지? 다정함을 잃은 파우릭은 어떻게 살지? 참을 수 없다.



두려움은 서로 부딪힌다. 인간적 생활의 영위하는 소박한 일상을 지키려는 관성이 공격받을 때, 영원히 기억될 의미 있는 가치를 추구하려는 절박함이 충돌한다. 허무를 극복하려면 일상과 이상은 필연적으로 충돌한다.  잡음이 생겨 갈등이 치닫고 엎치락뒤치락 서로를 자극하고 강해진다. 두려움이 폭발한다. 폭력이 태어나고 갈 때까지 간다. 두려움은 승리가 필요하다. 하나가 죽을 때까지 하나가 승리할 때까지 싸움은 멈추지 않는다.  


죽음은 유예된다. 죽음을 건너고 싶다면 하나는 답이 될 수 없다. 둘은 통합해야 한다. 인간적인 삶을 무시한 채로 이상은 존재할 수 없다. 도달할 수 없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인간적 삶을 영유하며 본질적 가치를 놓쳐서도 안 된다. 관성적인 일상은 언제든 죽음에게 무너진다. 둘 모두를 지켜야 한다. 서로를 미워하면 이니셰린에 갇힌다. 





시오반은 누구보다도 우울했다. 죽음이 묻는 질문을 오래 안고 살았다. 시오반은 여전히 다정하고 파우릭을 사랑하지만, 도서관에서 일하기 위해 자신의 이상과 꿈을 위해 이니셰린을 떠났다. 시오반은 강을 건넜다. 본토는 사람들의 말과 달리 꽤 다정했다. 그리고 파우릭에게 새로운 세계로 건너오라 전했다.


대부분 파우릭처럼 이니셰린에 남아 싸움을 이어간다. 그들은 이니셰린을 놓지 못한다. 두려움을 보낼 수 없고, 가치를 부정하는 반대 극을 용서하지 못한다. 밴시의 시선 너머로 그들이 죽음에 갇힌다. 완전히 살지도 완전히 죽지도 못한 채로.


두려움과 허무를 인정하고 죽음을 받아들일 때 죽음은 초월된다. 이상과 일상은 통합되어야 한다.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런 자만이 과거 세계와 결별하고 강을 건너 새로운 세계에서 시작할 수 있다. 비록 그곳 또한 죽음이 기다리는 땅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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