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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샙피디 Jun 18. 2022

평화적 거리두기를 위한 시간

가만히 멈추어 생각한 시간들 003

정말 오랜만에 엄마랑 레드랑 집 앞 공원을 걸으려 나왔다. 보통 엄마는 퇴근 후 회사 건물 지하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오고, 레드와 나는 야근이거나, 퇴근 후 필라테스를 하고 오거나, 각자의 저녁시간에 충실하느라 가족들이 저녁 시간에 같이 모이는 것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집에서 5분 거리의 동네 사람들이 애정 하는 공원은 가운데 작은 호수를 산책로가 두르고 있어서 운동 삼아 가볍게 돌기에 좋다. 마스크를 깜빡한 엄마가 집에 다녀오는 동안 레드와 나는 천천히 공원 쪽으로 먼저 걸어갔다. 오랜만에 나온 공원에는 큰 현수막이 쳐져 있었다. ‘한 방향으로 걷기 ->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한 방향으로 걷기가 얼마나 유효한지 궁금해하며 현수막을 쳐다보는데 레드가 이때다 싶어 못다 한 이야기를 묻는다.


“그래서 엄마가 갑자기 그 얘기를 왜 했다구?”


“아, 그거. 몰라 그냥 갑자기 그러던데? 나 중기청 대출 가능한 거면 우리 둘이 집 구해서 나가 살라고 그러더라구?”


“뭐지? 갑자기 왜 그러지?” 


레드의 신나게 동그란 눈 뒤로 빨간색 후드를 뒤집어쓴 엄마가 열심히 걸어온다. 


“뭐해~!” 


빨리 오라는 소리다. 빨리 오라 손짓하며 앙증맞은 걸음으로 먼저 앞서가는 모습이 퍽 귀엽다. 길에서 엄마를 마주치면 그저 귀엽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엄마가 귀여워진지 꽤 되었다. 우리의 눈에 귀여워진 엄마는 사실 원더우먼이다. 전사 최우수 트로피와 감사패들로 사무실 한편을 도배한 영업왕이자 우리 집 최고 소득자이면서 싱크대부터 드라이기까지 못 고치는 게 없으며, 이름 모를 채소들도 엄마 손만 휘리릭 거치면 짱 맛있는 나물반찬이 되곤 한다. 


“마스크 챙기고 핸드폰은 안 가져왔어?” 


“걸을 때 핸드폰 있으면 걸리적거려. 한 바퀴 돌면 5분이니까 여섯 바퀴 돌면 돼.”


헷갈리지 않게 신경 쓰면서 돌아야겠다 생각하며 레드와 나는 엄마와 발맞추어 걷는다. 엄마랑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잘 없는 요즘, 이렇게 운동을 같이하면 얼굴 보며 시도하기는 다소 조심스러운 대화를 시도해볼 수 있다. 이를테면 며칠 전 귀를 의심하게 했던 엄마의 독립 제안 같은 것들. 


얼마 전부터 레드와 조용히 독립을 준비하면서 엄마 아빠를 어떻게 설득할지 걱정이었는데 며칠 전 엄마가 먼저 갑자기 툭 독립을 제안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지만, 혹시 내가 너무 좋아하면 서운해할지 몰라, 좋은 티 내지 않고 어영부영 대답하고 넘어갔더랬다. 아까 레드의 질문에 나도 이때다 싶어서 “우리 나가서 살 집은 이 동네에서 구하는 게 좋을까?”라고 물으며 슬쩍 엄마의 표정을 살폈지만 엄마는 열심히 걷기만 할 뿐 대답이 없다. 


나의 대학생활 4년을 제외하고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쭉 같이 살아온 우리 네 식구는 요즘 모두의 평화를 위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매사 쿨하고 유쾌하지만 유독 남녀 간의 관계에 대해서만큼은 아직 남녀 칠 세 부동석인 엄마 아빠는 귀가 시간이 늦어지는 자식들에 대한 걱정이 늘었고,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많은 20대 후반의 자매는 평화를 위해 선의인지 모를 거짓말을 한다. 그 누구도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거짓말이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지쳐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게으른 주제에 앞으로 일어날 일들과 내가 쓸 수 있는 시간들을 고민하기도 하는 나는 아이를 낳으면 '나'이기 전에 '누구 엄마'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아이 낳기 전의 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보다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꿈꾸고 있다. 그럼에도 전세자금 대출을 알아보기 전에 엄마 아빠의 표정을 살피고 싶은 것은 집을 떠나 생활하면 가끔이라도 이런 산책은 어렵겠지? 하는 생각과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_

엄마가 되기 전까지의 시간을 생각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역시 얼마 남지 않은 부모님과 나의 시간을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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