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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코로나-19로 인한 특수학교의 변화

특수하지만 특수하지 않은 특수교육

by 종우리

COVID-19...

중국에서 발생한 전염병은 전 세계로 퍼지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서울에 거주하는 나 같은 경우엔 2020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체감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2월 전에는 관련 기사에도 큰 관심이 없었고 마스크도 잘 안 쓰고 다녔으니 말이다. 그러다 2월이 시작될 무렵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겠다'는 위기감을 느꼈고 사회뿐만 아니라 학교에도 영향력이 엄청나게 일고 있었다. 다행히 당시 학사 일정이 2월 10일을 전후로 졸업식을 하고 봄방학이 있어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학생들은 학교에 안 나오지만 교사들은 마스크를 쓰고 각자 교실에서 생활을 해 나갔다. 그리고 3월이 시작되기 며칠 전 교육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가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3월 등교가 연기된 것이다. 처음엔 1주 연기를 하더니 상황이 안 좋아져 2주가 더 연기되었고 그렇게 4월 말까지 연기가 되었다. 당시 일부 과정은 6월 초까지 연기가 되었으니 꽤 오랜 시간 학교에 못 나온 것이다. 태어나서 초, 중, 고등학교를 12년간 다녔고 대학을 약 6년을 다니면서 전염병으로 인해 학교를 못 나간 경우는 처음이었다. 학부모도 학생도 당황스러웠겠지만 교사들들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겪어 보지 못한 경험이 주는 패닉은 이후 학교 문화를 많이 바꿔 놓은 것 같았다. 우선 학생들은 학교를 못 오니 집에서 비대면으로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여기서 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일반학교 학생들은 집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컴퓨터만 있다면 대체로 수업 듣는 것에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특수학교는 달랐다. 컴퓨터가 없어도 부모님 스마트폰이 있으니 그걸로 대체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실시간 비대면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특수학교 학생들은 문맹도 많다. 장애 정도가 경한 학생들은 곧잘 글을 읽고 쓸 수 있지만 중증의 학생들은 글을 읽고 쓰는데 어려움이 많다. 그러다 보니 컴퓨터를 스스로 한 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또한, 비대면으로 수업을 하는 동안 옆에서 누군가는 도움을 줘야 하는데 과연 부모님이 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부모님들 중에서 맞벌이를 하시는 경우나 일이 있으신 경우는 학생 혼자 지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런 상황에서 실시간 수업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특수학급 학생들의 경우 컴퓨터도 잘 다루고 자기들끼리 알려주고 배우고 하면서 수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중증의 특수학교는 상황이 달랐다. 결국 실시간으로 수업을 하는 것은 어렵고 대신 인터넷 플랫폼 하나를 선택한 뒤 수업자료를 업로드하면 시간이 될 때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자료를 준비하면서도 이것이 맞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들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실시간도 어렵고 방문도 어려우니 그나마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아닐까라고 합리화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장애학생들에 대한 고려가 깊지 않다 보니 이런 문제들이 생긴 것 같다. 특수교육 전문가 분들과 교육청에서 노력을 많이 해주셔서 다양한 자료를 공유할 수 있었다. 또한, 연수를 통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비대면 교육이 가능함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분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덕분에 비대면에 대해 부정적인 것들로만 가득 찼던 생각이 많이 바뀌었으니 말이다.


수업은 비대면으로 진행하다 5월 말부터는 주 3일 등교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에 학교에 안 나오는 학생들도 꽤 있었고 학교 내에서도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학교에 와서도 자유롭게 다닐 수 없었으며 급식도 따로 먹었고 불편한 마스크는 생존을 위해 꼭 쓰고 있어야 했다. 자폐성장애를 가진 학생들 중 마스크 쓰는 것을 싫어하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벗으면 다시 씌워 주기를 무한 반복하는 선생님도 계셨다. 코로나-19 이전의 삶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이 경직되었고 위축되어 있었다. 외부활동도 없다 보니 오로지 교실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수업해야 했고 중간에 누군가 열이 나거나 자가진단키트에서 양성이라도 나오면 즉시 하교시키고 모두 검사를 받으러 보건소로 가야 했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항상 이상 여부를 챙겨야 하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해야 했다. 그나마 학교에서 보내는 이 시간이 학생들에겐 숨통을 틔울 수 있고 친구들을 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더 많은 것을 못해준 학생들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어떤 때는 나 스스로가 너무 힘들어 비대면이 그리울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 어려운 시간을 학생들은 잘 이겨 냈고 앤데믹 이후엔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양한 내외활동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교사의 삶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회의도 많았고 비공식적인 모임도 많았다. 특히 교사들 사이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것이 학교 간 '배구대회'였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 되면 교사는 근로자가 아니라 출근을 하지만 학교 내 교육공무직 분들은 쉬는 날을 보장해야 했다. 그렇다고 이 분들 없이 학교를 운영하기엔 어려움이 많아 보통 '자율휴업일'로 정하고 대신 교사들은 배구대회를 개최한다. 개인적으로 난 이 배구대회를 아주 싫어했다. 학교 구성원의 단합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승리에 대한 갈망... 이런 것들 때문에 권위적인 모습들도 너무 많이 보고 원하지도 않았는데 남자라는 이유로 배구팀에 소속이 되어 준비하는 내내 고생도 많이 해서 그런지 지금도 좋은 기억이 없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로 사람들이 모일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사라진 행사가 되었다. 이 행사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모임도 많이 사라졌다. 학교에서는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했고 2명 이상 모여 커피를 마시더라도 부담스러워 혼자 빨리 마시고 끝내는 경우도 많아졌다. 학교 내 회의나 외부출장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대면으로 해야 하는 경우도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비대면으로 진행하게 되었던 것 같다. 모두 개인의 안전을 최우선 시 하던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아무튼 이런 공, 사의 모임들이 없어지고 학교 내 교직문화도 많이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나타내는 것 같다. 회식이나 공식적인 모임들도 다 줄이고 비대면으로 하는가 하면 모임 자체를 꺼려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말이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팬데믹... 약 3년 넘게 경험하면서 힘든 것도 많았지만 좋았던 것도 분명 존재한다. 교사로서는 해볼 수 없는 재택근무라는 것도 해봤고 직장인 학교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정말 귀중한 존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수업이 결코 한 방향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향성을 가지고 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된 것 같다. 예전에는 교육과정과 교과서 내용이 중요했고 일방적인 지식전달이 최고라고 생각했었는데 교과서뿐만 아니라 매체나 직접 경험이 더 많아져도 충분히 좋은 수업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경험을 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이 기간은 직업을 떠나 혼자만의 시간이 많았던 기간이었다. 아내와 함께 보내면서 많은 이야기를 한 것과 주어진 시간을 어떤 식으로 활용하면 좋을까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졌다.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바쁜 일상 속에서도 하루가 아깝지 않게 살아갈 수 있도록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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