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영양분 같은 낯선 경험
특수학지만 특수하지않은 특수교육
컴퓨터를 전공할 당시 이론과 실습을 위주로 공부를 했다. 이론은 실습을 위한 기초로 수학과 관련된 내용, 프로그램설계를 위한 과정 및 각 프로그램의 기초 이론 등이었다. 그리고 실습은 매 학기마다 2가지 정도 했는데 언어, 네트워크, 데이터베이스 등이 주를 이루었다. -사실 내가 이런 쪽에 관심이 더 많아 이 정도만 기억하는 것 같다.- 그만큼 컴퓨터를 전공할 때는 취업했을 때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실습이 중요했다. 다만, 이런 실습을 아무리 잘하더라도 현장에선 그다지 쓸모가 없고 일을 하면서 배웠던 것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어쨌든 컴퓨터를 전공할 당시 숙련도나 전문성의 차이는 있었으나 학교에서 배운 것과 현장의 내용은 큰 차이가 없었다.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난 뒤 처음 느꼈던 것은 재미보다 신선함이었다. 사범대에서 배우는 것이 예전 공대에서 배웠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개론을 비롯한 각 장애영역뿐만 아니라 교수방법론, 특수교육에서 빠질 수 없는 통합교육 등 다양한 이론 과목이 주를 이루었다. 각 장애영역도 성격이 달랐으나 구성은 비슷한 형태를 지녔다. 해당 장애의 역사를 시작으로 장애의 원인, 증상, 증상에 따른 공통된 교수방법과 각 교과목별 지도방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환교육의 순서로 배웠다. 그래서 장애의 특성만 잘 파악하고 있으면 교수 방법도 조금은 수월하게 익힐 수 있었다. 일부 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의 경우 '점자'와 '수어'라는 것을 더 해야 했지만 한 학기에 완벽하게 마스터하기란 어려웠다. 그러다 4학년이 되었을 때 교육실습을 한 달간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는 학교의 전반적인 일과 속에서 교육 및 생활지도에 대한 내용을 익히게 된다. 약 한 달 간이라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학생들에 대한 파악도 하기 전에 수업을 해야 했고 교육실습 4주 째는 연구수업까지 있었다. 이 연구수업이 끝나면 교육실습도 사실상 끝난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 교육실습생들은 홀가분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많은 것을 배우기보단 내가 '특수교육에 맞는가?'를 경험한 것에 더 큰 가치를 두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는 그랬다. 그래서 실제로 수업 몇 번 해보고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생활지도 하는 것 정도가 교육실습을 통해 배우는 주된 내용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실습을 끝내고 졸업을 한 뒤 임용고시를 치르고 나면 정규 교사든 기간제 교사든 아니면 임용 재수를 선택하는데 결국 시간이 흘러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특수교사가 되어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는 진짜 학교를 경험하게 되는데 교육실습 때와는 전혀 다른 경험들을 하게 된다. 우선 수업도 학교에 따라 한 주간 15~20 시수 정도하게 되며 담임 업무에 부서 업무까지 해야 한다. 거기다 각종 연수도 있고 상담에 서류 작업까지 하면 짧은 시간에 정말 많은 일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이 것은 특수교사뿐만 아니라 일반 교과 교사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하지만 특수교사들은 일반 교과 교사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하고 있다.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에 있을 때는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수업을 재구성해서 진행하면 됐다. 가끔 적대적인 학생이나 옳고 그름을 구별하지 못해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의 생활지도에 더 신경을 쓰기도 했지만 그 정도에서 더 이상 무리한 일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업무만 하면 되는 정도였다. -모든 학교가 이런 것이 아니라 더 힘든 일을 하는 곳도 있고 덜 힘들게 일하는 곳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운이 좋았던 케이스 일수도 있다.- 그러다 특수학교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첫 번째 특수학교가 중도의 지체장애 학교였다. 보통 학교라고 했을 때 가지는 이미지가 있다. 개인 사물함, 책상, 의자, 교사 책상, 칠판 등등... 하지만 처음 학교를 방문했을 때 놀란 것은 교실에 책상이 없고 큰 테이블이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테이블은 높낮이가 조절되는 책상이었다. 휠체어에 탄 학생들이 대부분이라서 개인 책상은 좁고 이용하기 불편해서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테이블을 책상으로 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침대였다. 교실마다 침대가 하나씩 있었는데 학생들이 하루 종일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침대에 누워서 쉬기도 하고 '뇌전증'이 발생했을 때 휴식을 취하기 위한 공간이기도 했다. 이렇듯 특수학교는 장애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학부 때에 배우지 않았고 생각도 못했던 것이 하나 더 있는데 학생들의 신변처리였다. 이것은 이론으로 배울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 특수학교에서 근무해야만 배우는 것 중 하나였다. 지체장애 학생들의 경우 신변처리에 어려움이 많아 기저귀를 차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학교엔 특수교육 실무사 선생님께서 있어서 대부분의 신변처리를 해주셨지만 부모가 성별이 다른 경우나 인권 문제로 인해 동성의 교사가 해주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도 남학생의 신변처리를 직접 했었다. 태어나서 기저귀를 처음 갈아봤는데 어떻게 하는지 배워야 했고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 학생들은 직접 보조를 해주기도 했다. 어느 누구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고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학교에선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였다. 식사지도도 그랬다. 일반학생들은 스스로 배식을 받고 식사를 한 뒤 반납까지 했지만 손발이 불편한 학생들은 식판을 받아서 밥과 반찬을 골고루 먹이고 치워줘야 했다. 한 번은 학교 부장님과 차를 마시다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애들 밥 먹일 때 어떤 마음으로 먹이나?"
나는 그 질문을 받고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잘 먹이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해주신 이야기가
"나는 애들 밥 먹일 때 내 동생한테 먹인다라는 마음으로 먹여. 그러면 대충 먹이거나 빨리 먹일 수가 없어"
그 이야기를 듣고 한 참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냥 밥 먹이는 나의 태도에 대해서...
이후로는 나도 동생에게 먹인다는 마음으로 먹였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지체장애 학교는 나에게 힘든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특수교사로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이 배울 수 있게 해 준 곳이라 생각한다.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나무 키우기로 비유하면 건강한 씨앗을 기름진 땅에 심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학교를 떠난 뒤 특수학교는 발달장애 특수학교에서만 근무를 했고 현재도 하고 있다. 여기서도 다양한 경험들이 많다. 학교에 있던 아이들은 책에서만 봤던 그 아이들이 아니었다. 일반학교도 그렇겠지만 똑똑한 아이, 착한 아이, 까칠한 아이 등등 다양한 학생들이 있었다. 예전엔 착한 아이만 있는 줄 알았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컴퓨터처럼 'input'이 있으면 그 결과값이 정확하게 나오는 'output'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혀 예상밖의 결과들이 나타났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처음엔 당혹감이 가득했다. 교재에서 배운 대로 하면 될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고... 금쪽이 같은 애들이 매년 나를 때리고 나는 맞고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선배교사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솔루션을 제공받는 느낌... 그러면서 나도 조금씩 단단해져 갔고 이제는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보내고 있다. 자세한 사건을 언급할 순 없지만 다양한 일들이 매년 일어난다. 그럴 때마다 불나방처럼 대처하기보다 시간적 여유를 두고 처리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보였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처럼 말이다. 학교라는 곳은 정해진 것이 없다. 매일이 새롭게 낯설지만 그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학부든 대학원이든 배운 지식을 토대로 현장의 지식들을 배워 나간다면 작은 씨앗은 싹을 틔우고 나중엔 건강하고 튼튼한 나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튼튼한 나무가 되기 위해서 더 노력하며 지내는 내일을 상상해 본다.